[기획리포트]
<씨네21>이 뽑은 이달의 단편 4. <멋진 인생>
2006-07-11
글 : 김수경
사진 : 오계옥
관음을 통한 마초 이데올로기 비판

“마초라는 이데올로기는 배설보다는 관음을 통해 발현된다”고 단편영화 <멋진 인생>은 말한다. 매춘으로 살아가는 한 여자의 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를 담은 <멋진 인생>은 성 정치학과 자기 정체성의 여정을 상징과 환상을 통해 그려낸다. 여자는 몸을 팔아 돈을 벌고, 신체 부위별로 자기 몸에 깁스를 만들며 하루를 보낸다. 남자는 그녀에게 외출을 제안하지만, 그녀는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감금한다.

<멋진 인생>의 한영호 감독은 서울예술대학 영화과를 졸업하고 삼성SDI 홍보팀에서 3년간 일한 뒤 파리로 향했다. 파리 8대학 영화과에 재학했지만 그가 주로 시간을 보낸 곳은 학교가 아니라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미술관이었다. 기존 단편영화보다 훌륭한 모습을 드러내는 <멋진 인생>의 세트나 색감은 이러한 경험이 밑천으로 작용했을 터. 파리에서 6년을 지낸 그는 <다른 사회와의 만남>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에서 몰려든 배낭여행객에게 게이문화에 대해 질문하는 <다른 사회와의 만남>은 <멋진 인생>의 중심을 이루는 ‘시선’이라는 주제를 관통한다. <다른 사회와의 만남>에 패널로 등장했던 홍세화 선생은 당시 그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열명 중 한명 정도가 경제적인 안정을 확보한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렇다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관점에서 그 한 사람은 남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1968년생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한영호 감독은 <멋진 인생>을 통해 “그러한 기준을 남녀 성차에 적용하면 여자는 아홉, 남자는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구조적 불합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25분 분량의 <멋진 인생>은 매춘하는 여자라는 컨셉에서 시작됐다. 뒤이어 시나리오와 미술을 담당한 정경아 작가가 한 오피스텔에서 “이런 곳에서 그림이나 그리고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면서 주인공의 폐쇄된 공간을 설정했다. 제작에 불을 댕긴 사람은 영화 말미에 출연한 배우 명계남이었다. 그가 주인공 여자 역을 맡은 서영화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개복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망설이는 서영화를 한영호 감독이 삼고초려 끝에 설득하며 <멋진 인생>은 촬영에 나섰다. 일산 근처 빈 농가에 세트를 짓고 4일 밤낮으로 진행된 촬영은 한 감독의 생업인 광고영상을 만드는 스탭들이 도왔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여겼던 미술과 세트디자인에만 외부 인력이 합류했다. 관객에게 논란이 된 후반부 강간장면은 남자조감독이 대역을 맡아 고생했다. 700만원의 예산 탓에 HD로 제작한 <멋진 인생>을 한 감독은 아쉬워했다. “비디오는 아무래도 붉은색이 안 좋은 편이라 필름으로 찍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멋진 인생>을 만드는 동안 한 감독을 괴롭혔던 건 생업으로 인한 이질감이었다. 당시 주택금융공사 광고를 만들었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대출하라고 떠들면서 뒤돌아서면 <멋진 인생>의 감정을 잡아야 했던” 상황은 그에게 자주 괴리감을 안겼다. 그럼에도 한영호 감독은 경제적인 안정만 생긴다면 “온전히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영화적인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단편을 계속 찍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와 성에 유독 많은 관심을 보이는 그가 집필 중인 두편의 장편시나리오가 궁금하다.

2006 상상마당 단편영화 상시출품

아마추어 영화작가 발굴을 위해 KT&G가 마련한 ‘2006 상상마당 단편영화 상시출품’ 6월 우수작이 발표됐다. 6월 한달 동안 KT&G 상상마당 온라인 상영관(www.sangsangmadang.com)에 출품된 45편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 결과, 한영호 감독의 <멋진 인생>, 서보형 감독의 <George Tooker’s subway>, 백윤석 감독의 <내츄럴보이즈> 세 편이 우수작으로 뽑혔다. 이들에게는 창작지원금 100만원이 각각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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