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픽사 스튜디오의 7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카> 시사회
2006-07-12
글 : 박혜명
띠띠빵빵 자동차가 전하는 느림의 미학

미국의 66번 국도는 동쪽과 서쪽을 잇는 길이다. 66번 국도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시작해 미주리, 캔자스, 오클라호마,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를 거쳐 종착지인 캘리포니아 LA까지 이어진다. 총길이는 3939km. 1926년 11월11일에 개통된 역사를 지닌 66번 국도는 미 전역을 연결하는 주간고속도로 체계(Interstate Highway System)가 생겨나기 전까지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나 다름없었다. 1985년 6월17일 주간고속도로 체계 시행과 함께 66번 국도는 미 도로 체계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66번 국도는 이제 ‘히스토릭 루트 66’이란 이름으로 지도 위에 옅게 남아 있다.

픽사 스튜디오의 7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카>의 이야기는 이 길을 찬찬히 더듬어 간다. 주인공은 실력 좋고 패기 충천한 레이싱카 라이트닝 맥퀸(오언 윌슨). 맥퀸은 피스톤컵 우승과 초대형 스폰서를 잡는 꿈에 부풀어 결승지인 LA로 가던 도중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는다. 그가 처박힌 곳은 66번 국도 외곽의 낡은 마을 ‘래디에이터 스프링스’(Radiator Springs)다. 맥퀸은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LA에 가고 싶지만 그 전에 자신이 망가뜨려놓은 마을 초입로 수리를 마쳐야 한다. 발목이 묶여버린 맥퀸은 마을의 어른 닥 허드슨(폴 뉴먼), 도시에서의 안정된 삶을 스스로 버리고 이곳에 온 샐리 카레라(보니 헌트), 낡은 트랙터 메이트(래리 더 케이블 가이) 등 주민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삶의 또 다른 방식을 배워간다.

현대인의 ‘빨리빨리’ 문화를 조롱

<토이 스토리2> 이후 6년 만에 감독 자리로 돌아온 픽사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수장 존 래세터는 “발전을 위한 발전, 무조건 새로운 것만이 전부가 아닌 좋은 옛것에 대한 향수를 담고 싶었다”고 <카>의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이에 따라 66번 국도는 느리고 여유로운 옛 삶의 모습, 맥퀸이 속했던 레이싱장은 빠른 목표 성취에 얽매인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레이싱장의 관중이나 66번 국도 주변 사막을 날아다니는 파리들까지 자동차 형색을 한 <카>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을 자동차에 빗대어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교훈적인 우화인 셈이다. 카우보이 장난감 우디나 몬스터 설리, 광대어 니모의 세계가 정상/비정상의 이분법, 상식과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인간세계와 긴장관계를 이룬 데 반해 <카>에서는 자동차들이 곧 인간을 대변하기 때문에 그러한 긴장관계도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래세터가 끌어들인 비유법이 픽사의 전작들에 비해 매우 단순명쾌해진 데 비해 이들의 기술적인 진보는 또 한번 우리의 예상을 앞질러가고 있다. 극의 서두와 말미를 장식하는 숨막히는 경주 시퀀스는 스토리보드에서부터 카메라 앵글과 편집,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프로덕션 전 과정에서 애니메이션이 이를 수 있는 경지를 한 단계 높인 성과로 두고두고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맥퀸이 마을 도로를 부술 때 콘크리트 길이 갈라지고 쪼개지는 모습이랄지 사막을 내달릴 때 뽀얗게 일어나는 모래 바람, 맥퀸과 샐리가 로맨틱한 드라이브를 즐길 때 펼쳐지는 아찔한 미 중부의 자연 풍광 등도 마찬가지다. <카>가 보여주는 시청각적 스펙터클은 “아무리 현실감을 주기 위한 기술이라도 최종 목표는 스토리를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인터뷰 자리에서 입을 모은 픽사 애니메이터들의 말이 지나친 겸손으로 여겨질 만큼 이제 그 자체로 의미있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들의 표면을 유심히 살피면 빛 반사는 물론 사물의 반영까지 나타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구형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카>는 또 다른 점에서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1951년형 허드슨 호넷, 1970년형 플리머스 슈퍼버드, 1949년형 포드 머큐리, 1959년식 시보레 임팔라 로-라이더 등 우아한 이름만으로도 빛이 나는 오래된 명차들이 66번 국도의 전성기를 깊이 간직한 마을 주민들로 등장한다. 자동차 앞유리에 눈동자를 박고 범퍼를 움직여 말을 하는 자동차 캐릭터들의 표정은 픽사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늘 그렇듯 생동감있고 사랑스럽다. 2004년 겨울 <인크레더블> 이후 1년 반 만인 픽사 스튜디오의 신작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아 어떤 진보와 변화를 보여주고 또 어떤 고유성을 유지해가려 하는지에 대한 더 많은 것들은, 7월20일이 되면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

존 래세터 감독 인터뷰

“주인공 이름은 자동차광 스티브 매퀸에서 따왔다”

-장난감, 곤충, 몬스터, 물고기, 슈퍼히어로에 이어 자동차를 소재로 삼았다.
=자동차는 미국인들에게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미국이 선로를 통해 서부를 개척할 당시만 해도 농부들은 농장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자동차가 생기면서 여자들까지도 마차없이, 그러니까 남자없이 외출이 가능해졌다. 그 점에서 자동차는 개인의 자유를 상징한다. 동시에 미국인들에게 자동차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어떤 사람의 실제를 보여주는 것이 집이라면, 자동차는 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모습이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싶은가에 따라 자동차가 결정된다.

-시사회장에서 본인이 자동차광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동차 부품 가게를 하셨다. 여름에 아르바이트로 자동차 딜러를 한 적도 있다. <카>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벅스 라이프>를 할 때였는데 당시만 해도 구체적인 스토리는 없었다. 조사를 시작하면서 미국 고속도로 발전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는데, 무조건 최단 코스로 만드는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작은 마을들이 많이 버려진 것을 알았다. 실제 그런 곳을 찾아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픽사의 전작들과 달리 인간세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 자동차들이 훨씬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게 더 흥미로울 것 같았다. 자동차의 욕구와 인간의 욕구를 연결해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6년 만에 연출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우선 내가 픽사 스튜디오 내에서 두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랬다. 나는 감독이기도 하지만 이 스튜디오의 설립자로서 다른 여러 감독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했고 크리에이티브 헤드라는 직책도 감당해야 했다. <토이 스토리2>를 끝낸 뒤 제작총괄하면서 꾸준히 <카>를 진행해왔다. <카>는 99년 12월에 작업을 시작해 6년 걸려 완성한 작품이다.

-자동차와 관련한 오마주들도 넣었다고 했다.
=주인공 이름인 맥퀸은 엄청난 자동차광으로 알려진 배우 스티브 매퀸에게서 따온 것이다. 우리 애니메이터 중에도 매퀸이란 사람이 있긴 하다. 닥 허드슨의 목소리를 연기한 폴 뉴먼도 자동차광이다(폴 뉴먼은 1995년 플로리다주 데이토너 비치에서 열린 프로레이싱 최연장자 우승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폴 뉴먼과 일할 수 있었던 건 우리로서 굉장히 특별한 기회였다. 자동차 경주에 관한 사실적인 설정이나 전문용어 등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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