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서와 미녀, 혹은 냇가에 몸을 담갔다 올라오는, 옷이라곤 몇 조각 걸쳐 입지 않은 야생의 여인. 그저그런 호프집에나 걸려 있음직한 그림 두점에 최근 겹치기 출연한 여배우가 있다. 싸구려 에로배우일 거라고? 천만에. 그녀는 샤넬 넘버5의 모델이고 <GQ> 등 유명 남성잡지의 커버모델이며 <맥심>이 뽑은 ‘핫100’ 리스트 1위를 점거한 슈퍼모델 에스텔라 워런이다. ‘슈퍼모델’은 예의 호프집 사진도 빛나게 만들고 그 속의 자신 역시 다시금 눈여겨보게 만든다. 올 늦여름 <혹성탈출>과 <드리븐> 두 영화로 연달아 우리를 찾은 모델 출신의 신인배우 에스텔라 워런은 그렇게 낯익으면서도 낯설게 영화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위험한 여정을 마친, 혹은 험한 길을 떠나는 남자에게 아름다운 여자는 때로 이정표가 되는 것일까. <드리븐>에서 경쟁관계인 두 남자 카레이서는 그녀, 소피아를 공히 사랑하고, <혹성탈출>의 그녀, 다이애나는 원숭이 분장을 한 헬레나 본햄 카터보다 사실 더 매력적이다. 낡은 호프집 액자 속 사진처럼 새로울 것 없는 풍경에 자기만의 생기를 불어넣는 그녀의 힘. 그건 너무나 단순하게도 아름다움 그 자체인 것 같다.
에스텔라 워런은 배우이기 이전 모델이었고 모델이기 이전 수중발레 선수였다.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인 그녀는, 5살 때부터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시작했는데, 17살에 돌연 물을 떠날 때에는 이미 캐나다 국가대표 시니어로서 세계대회의 동메달까지 목에 걸고 있었다. 1994∼96년 세해 연속 그녀는 캐나다 국내대회 챔피언이었다. 세 번째 챔피언이 되고나서 얼마 뒤, 고등학교 패션쇼 무대에 선 그녀를 한 폴라로이드카메라는 포착했고, 그녀의 사진은 뉴욕 모델에이전시로 보내졌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는 이탈리아 <보그>의 모델이 된 것이다. 워런은 곧 유명 광고의 모델이 되어 뉴욕 길거리의 회벽을 장식했고, 그러는 한편 급속도로 많은 인터넷 사이트들에 자신의 물기어린 누드를 전파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2001년, 그녀가 출연계약을 맺은 5편의 영화들이 제작연도 2001이라는 숫자를 달고 레이싱을 하는 중이다. ‘또 한명의 여자’라는 단역을 맡았던 <탱글드>와 패션모델의 세계를 그린 선댄스영화제 상영작 <퍼퓸> 등 ‘작은’ 영화 2편을 한 이후 그녀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작품인 <혹성탈출>과 <드리븐>에 출연해 할리우드에 본격적으로 입성했고 그녀가 수의사 연기를 하는, 캥거루가 나오는 코미디영화 <다운 앤 언더>가 제작중에 있다.
“내 신체적 장점을 이용할 수 있었죠.영화를 찍으며 저는 쉴새없이 뛰고 헤엄치고 말 달리고 점프했어요. 할리우드의 여배우가 그 수준의 액션을 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혹성탈출>의 ‘인간’ 여자 다이애나는 에스텔라 워런에게 어렵지 않은 역이었다. <드리븐>에서 워런은 직접 액션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전형적인 블론드와 탄탄하고 풍만한 몸매는 스포츠카의 스피드와 썩 어울리는 톤을 유지했다. <혹성탈출>과 <드리븐> 모두 그녀에게는 적역을 제공해준 영화인 셈이다. <혹성탈출>에서 침팬지와 연기한 데 이어 <다운 앤 언더>에서는 캥거루와 연기하는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워런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재미있어요. 그 영화에도 수영하는 장면이 있죠. 캥거루를 잡기 위해 폭포 속에 들어가 진흙을 바르고 사람 냄새를 없애요.” 아직도 올림픽을 그리워한다지만, 워런은 새로운 분야인 영화에서도 계속 몸에 맞는 ‘물’을 찾고 있는 듯하다. 살아온 나날들, 그동안 가꿔온 자기의 재능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의 자부심은 어느 영화에서나 ‘물’을 보면 선뜻 기꺼이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