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영웅의 망토를 걸친 순수청년, <수퍼맨 리턴즈>의 브랜든 라우스
2006-07-15
글 : 김혜리

슈퍼맨이 튕겨내는 것은 총탄만이 아니다. 그는 일체의 재해석을 거부하는 캐릭터다. 섣불리 변형하려고 덤벼들면 산산조각 나버린다. <수퍼맨 리턴즈>의 연출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말하자면 신상(神像)을 연기할 배우가 필요했다. 세월에 닳거나 과거에 물든 흔적은 아주 조그만 것이라도 만사를 그르칠 수 있었다. 조시 하트넷, 브랜든 프레이저, 애시튼 커처 같은 스타들이 그러한 사정 설명이 첨부된 거절 통보를 받았다. 심지어 슈퍼맨의 원형으로 간주되는 예수 역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연기한 짐 카비젤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조건은 단순해 보였다. 비교적 무명일 것, 아이콘이 된 초대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를 어떤 식으로든 닮을 것. 그러나 난제는 따로 있었다. 브라이언 싱어는 슈퍼맨이 될 배우에게 중요한 자산은 연기력보다 타고난 됨됨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누가 도와달래?”라고 반문하는 냉소적 이웃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미는 이상주의자처럼 보여야 했고, 만인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낙천주의자여야 했다.

전직 ‘럭키 스트라이크’ 볼링장 바텐더이며 <스몰빌>의 오디션에 낙방한 경험이 있고 고정 출연 경력이라곤 TV드라마 <원 라이프 투 리브>가 거의 유일한 배우 브랜든 라우스(27)는, 그리하여 할리우드의 역사 속에 불쑥 날아들게 되었다. 티끌도 어리지 않은 눈동자와 반듯한 턱, 장밋빛 뺨을 간직한 이 청년의 얼굴은 풋풋하면서도 예스럽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한 적도 없는 순수의 시대를 향해 향수를 느끼도록 만든다. 브랜든 라우스는 아이오와주 인구 6천명의 아담한 마을 출신이다. 사소한 새로움도 신기해하고 쉽사리 싫증내지 않는다는 브랜든 라우스의 성격은 아마 환경의 선물일 것이다. 그는 긴장하면 편두통을 앓는 버릇이 있다. 꼬마 시절 TV 속 슈퍼맨을 흉내내며 집안을 뛰어다닐 때 느꼈던 어지럼증은,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독대한 운명적인 날에도 엄습했다. 라우스는 클라크 켄트처럼 커피 테이블 앞에서 서투른 몸짓을 보였다. 한편 싱어 감독의 기억은 다음과 같다. “내가 캐릭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자 라우스는 ‘무슨 헛소리인지?’ 하는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 그때 나는 지금 차기 슈퍼맨과 함께 있음을 알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브랜든 라우스는 슈퍼맨보다 클라크를 연기하는 쪽이 편했다. “클라크가 로이스를 비롯한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허둥대는 것은 흥분 탓이다. 슈퍼맨일 때는 결코 누릴 수 없는 경험이라 너무 기쁜 나머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라고 그는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러나 영화는 라우스를 슈퍼맨으로 엄격히 양육했다. 슈퍼맨은 제왕처럼 당당하고 군더더기없이 움직여야 했다. 목부터 엉덩이까지 우아한 직선과 유선형 포지션을 잃지 않는 자세를 만들기 위해 밧줄 요가 훈련이 동원됐다. 신체 연기를 톡톡히 배운 라우스는 비행장면이 특수효과팀만의 일이 아님도 터득했다. “비행장면에서도 감정과 의도는 확고해야 한다. 날아오를 때마다 내가 지금 뭘 하는지, 누구를 구하려고 하는지, 감정과 이야기가 확고한 연기는 그냥 날아가서 멍한 시선을 던지는 것과 크게 다르다.” 브랜든 라우스의 슈퍼맨은 고결하고 다정하고 희생적이다. 심지어 먼저 상대를 공격하거나 보란 듯이 때려눕히지도 않는다. 다시 말하건대 여기서 중요한 것은 힘의 입증이 아니라 참된 강자의 포즈다. 브랜든 라우스는 ‘모델로서의 배우’가 갖는 위력의 좋은 사례다. 워너는 라우스와 속편 계약을 맺었다.

한 평자는 브랜든 라우스의 갑작스런 유명세를 가리켜 “<트루먼쇼>의 트루먼 버뱅크를 보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한편 라우스의 아버지는 “브랜든은 명성을 얻었다고 변할 아이가 아니다”라고 장담한다. 기자들이 이 벼락 스타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슈퍼맨 이미지가 젊은 당신에게 덫이 되지 않겠냐고 묻는다. 슈퍼맨이 그랬듯 5년쯤 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실제로 라우스는 영웅의 망토를 벗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우스는 느긋하다. 베가스영화제에서 상영될 독립영화에도 출연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할 뿐이다. 하긴 고대 조각가 앞에 모델로 나선 혈기왕성한 청년들도 자기가 신상 안에 갇힐 거라는 근심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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