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이런 우스개가 있었다. 배에서 사람이 한명 떨어져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승객 중 한명이 용감하게 바다로 뛰어들어 그 사람을 구했다. 이 영웅적인 행동을 한 승객에게 사람들이 몰려갔다. 그랬더니 그 승객 입에서 나온 말. “누가 나를 (배 밖으로) 밀었어요.”
지난 6일 개봉한 <캐리비언의 해적: 망자의 함>이 국내외에서 큰 흥행을 거두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개봉 첫주 흥행수입 최고치인 <스파이더맨>의 1억1480만 달러를 깨고 1억32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아직 최종 흥행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최소한 1라운드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 잭 스패로우는, 스파이더맨이나 최근 개봉한 <수퍼맨 리턴즈>의 수퍼맨 같은 영웅들을 제치고 최고의 스타로 올라섰다. 그런데 이 캐릭터는 도무지 남을 위해 자신을 헌신할 생각을 하지 않는 이다. 명색이 해적이지만 매일 술 마시고 맨 정신에서도 비틀대고, 싸움이 벌어질 때 불리하다 싶으면 혼자 도망가는 모습은 해적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하다. 어쩌다 남을 구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때는 정말로 남이 그의 등을 떠밀었을 때다.
잭 스패로우를 연기한 조니 뎁(43)은 비주류적인 이미지를 간직한 대표적인 스타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도 비주류이거나, 주류이더라도 어딘가 덜 떨어지거나 희한한 상상을 하는 인물들이었다. 흥행보다는 영화의 질을 기준으로 출연작을 골라온 탓에, 크레딧에 오른 그의 이름은 작품성을 담보하는 보증 수표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가 제작비 1억 달러 넘는 대작에 출연한 건 이 영화의 전편 <캐리비언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가 처음이다. 그게 단박에 대박을 터뜨리더니 2편은 흥행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조니 뎁은 이제 주류, 비주류를 떠나 대중들에게 최고의 스타가 되게 생겼다. 이쯤 되면 그가 얄미워보일 수도 있고, 비주류 지향성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이 별로 안 드는 건 그가 연기한 비주류적이고 방랑적인 잭 스패로우가, 이전 출연작들의 캐릭터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니 뎁은 1편을 찍기 전에 스스로 18세기 해적에게서 20세기 록 그룹과 유사점을 발견했고, 이에 따라 잭 스패로우에게 롤링스톤즈의 베이시스트 키스 리처드의 이미지를 덧입혔다. 분장도 자기가 주문했고 의상도 직접 골라왔다고 한다. 이게 잭 스패로우의 독특한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데 일조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럼 조니 뎁은 자기식의 캐릭터 각색이 대박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했을까.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는 “그런 캐릭터가 어떻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말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순진하다는 거다. 1편을 찍을 때 난 규모가 작은 영화인 줄 알고 편안한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 편집도 다 안 끝난 첫 예고편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게 이렇게 큰 영화였어?’” 꼭 앞에 우스개의 승객처럼 “누가 나를 밀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의도했던, 등 떠밀렸던 흥행이 싫을 이유는 없을 터. “사람들이 4편, 5편을 바라면 난 계속 잭을 연기하며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