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구하라, 마법이 사라져가는 세상을! <게드전기>
2006-07-17
글 : 김도훈

<게드전기>의 시작은 25년 전인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장편 데뷔작으로 어슐러 르 귄의 판타지 소설 <어스시의 마법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르 귄은 강경한 태도로 거절을 거듭했고, 미야자키는 이후 자신이 만든 모든 작품들에 <어스시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자그마한 각주들을 심어놓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르 귄은 지난 2002년 지브리 스튜디오로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해주는 것이 좋겠다.” 20여년 만에 떨어진 허락이었다.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는 모두 6권으로 이루어진 연대기다. 그중에서 3번째 책을 모태로 삼은 <게드전기>는 마법이 사라져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나선 대현자 게드의 여정을 다룬다. 어스시 세계의 가장 독특한 매력은 마법의 사용법이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참된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마법사가 되려는 자들은 세상 모든 사물의 진실한 언어와 이름을 익혀야만 한다. 미야자키가 <어스시의 마법사>에 매혹되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마법을 되찾는 소녀(<마녀배달부 키키>), 세상을 구원하는 소녀(<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소녀(<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들을 다룬 미야자키의 지난 작품들은 성장과 인생에 대한 풍요로운 서사라는 점에서 르 귄의 세계와 유려하게 겹친다. 흥미로운 것은 <게드전기>의 감독이 미야자키의 장남인 올해 37살의 미야자키 고로라는 사실이다. 미야자키는 지브리 박물관을 설계한 것 외에는 애니메이션 관련 경력이 하나도 없는 장남의 기용을 강경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야자키 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 아닌 미야자키 고로라는 감독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말로 결국 미야자키의 허락을 얻어냈다. 결국 <게드전기> 역시 미야자키라는 이름을 가진 한 감독이 자신만의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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