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에 어떤 식으로든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정치적이고 윤리적이며, 미학적인 논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할리우드가 9·11을 다루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맹목적인 영웅주의와 성급한 흑백논리, 무책임한 호기심….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단골메뉴를 배제하고 진실만을 담아낸다는, 이른바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한 사람은 폴 그린그래스. 30여년 전 북아일랜드 시민 열세명이 영국군의 의해 사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을, 무표정하기에 더욱 뜨거운 다큐멘터리의 시선으로 스크린에 옮겨 <블러디 선데이>를 완성한 주인공이다.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은 채, 그날과 그 장소의 아수라장을 재현하는 데 그만한 적임자는 없을 것이다. 월드트레이드센터와 펜타곤을 가격한 다른 비행기와 달리 목표물로 향하던 중 추락한 여객기,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플라이트 93에서 벌어진 일에 집중한 영화 <플라이트 93>은 지난 4월28일 미국에서 개봉하여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9·11을 영화의 소재로 만드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여론을 잠재운 폴 그린그래스의 무기는 객관성, 혹은 소름끼치는 사실성. 영화는 승무원과 승객, 테러범이 비행기에 오르고, 상륙한 뒤 납치되어 결국 펜실베이니아 벌판에 곤두박질치기까지를 거의 실시간 그대로 묘사한다. 심지어 9·11에 관여했던 실제 인물이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하이재킹·안보 위협상황에 대처하는 지상과, 아무것도 모른 채 지옥을 맞이한 비행기 안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영화는 익히 알려진 결말로 치닫는다. 기내 전화기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에 급급했던 승객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테러범에 맞서 더욱 큰 비극을 막고 최후를 맞이한다. 단 한명의 영웅이나 완벽한 악당도 등장하지 않는 <플라이트 93>의 마지막 암전은 관객의 시선이 아닌 숨통을 자극한다. “사건에 휩쓸린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찬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은 관찰자에게 허용된 시점으로 카메라의 위치를 유지하며, 어마어마한 비극을 담는 자신만의 윤리를 완성했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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