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밀라 요보비치의 SF액션 <울트라바이올렛> LA 정킷
2006-07-22
글 : 옥혜령 (LA 통신원)
섹시한 여전사 돌아오다

보랏빛 긴 머리를 휘날리며 화려한 발차기를 선보이는 여전사. 마음만 먹으면 머리색과 의상색까지 바꿀 수 있는 천하무적의 반정부 투사. <울트라바이올렛>의 바이올렛이다. 게다가 바이올렛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제5원소>의 전설적인 그녀, 밀라 요보비치다. 여전사들의 미인대회라도 있다면 팔색조 바이올렛이 검은 전투복 군단 속에 단연 돋보이겠다. 감정 표현이 죄가 되던 <이퀼리브리엄>의 미래세계가 너무 음울했다고 생각해서일까. 커트 위머 감독은 신작 <울트라바이올렛>에서 화려한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변종 뱀파이어족을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시켰다.

전작에 이어 함께 작업한 배우 거스 피츠너에 따르면, <울트라바이올렛>의 모든 것은 시나리오 집필은 물론, 세트의 한 부분, 의상의 디테일까지 직접 선택하고 결정한 위머 감독의 비전을 반영한다. <이퀼리브리엄>에서 선보인 스타일리시한 숏과 오직 그 자체가 즐거움이고자 하는 과장된 액션 시퀀스, 빅 브러더스가 지배하는 미래사회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전사라는 주제, 저예산으로 만들어낸 세련된 듯 부족한 특수효과, 어디서 본 듯한 기존 장르영화들 재인용하기 등 위머 감독의 B급 SF영화의 감성은 여전하다. 위머 감독은 공공연히 <울트라바이올렛>이 존 카사베츠의 1980년작 <글로리아>를 코믹북 스타일의 액션SF스릴러로 재해석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퀼리브리엄>과 그다지 멀지 않은 <울트라바이올렛>의 세계는 정통 코믹북의 세계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이 ‘미래세계’가 아무래도 낯설지 않다. 미니멀하고 초현실주의적인 빌딩들이 둘러싼 무균의 도시에서 ‘오우삼필’이 곳곳에서 감지되는 건 왜일까. <무간도> 시리즈의 프로덕션디자이너 제임스 추가 세트를 맡아서일까. 홍콩과 상하이에서 촬영한 탓일까. <매트릭스> 이후 어지간히 단련됐을 성싶은 객석의 기자들을 여전히 한숨 쉬게 만드는, 그러나 그 무협의 세계를 일찌감치 맛본 이들에게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을 물량 공세 액션신들 때문일까. 리듬체조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격투라기보다는 댄스’인 바이올렛의 액션 안무. 일년 동안 올림픽 선수 수준으로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요보비치의 노력은 제 몫을 한다. 스탭들의 말처럼 “그 누구보다도 히스테리컬하고, 유쾌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여배우”라는 요보비치의 쌍곤봉 액션은 그녀의 식대로 화려하다. 하지만 위머 감독의 자랑처럼 유일무이한 볼거리라고 하기엔 어쩐지 낯익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이 할리우드산 뱀파이어들의 도시도 쏟아지는 총알 세례 속에 쌍권총을 손에 들고 우아하게 몸을 날리던 주윤발식 댄스 액션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하다. 하기는 위머 감독의 비전에 따르면, 바이러스도 때로는 멋진 전사를 탄생시킨다. 위머 감독이 처음부터 그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말처럼 종횡무진하는 요보비치의 바이올렛을 따라가며 즐길 일이다. <제5원소>와 <레지던트 이블>에 이어 이 영화에서 요보비치는 늘씬한 몸매, 미니멀한 의상, 차가운 캐릭터를 지닌 여전사의 이미지를 확실히 굳힌다. 안젤리나 졸리의 라라 크로프트가 무채색 여신님 같은 전사라면, 밀라 요보비치의 바이올렛은 키치적으로 섹시하다. 오드리 헵번이 아니라 캐서린 헵번을 닮고 싶다는 밀라 요보비치를 LA의 정킷에서 만났다.


“서른살이 돼서 좋아요”

밀라 요보비치 인터뷰

으하하하…. 호쾌한 웃음소리가 먼저 테이블로 다가선다. 지금껏 만난 여배우 중에 이렇게 스스럼없는 웃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한 이가 있었던가. 한마디 한마디가 각기 다른 톤으로 오르내리는 그의 파워풀한 입담과 쭉쭉 뻗은 두팔이 잠시도 쉴새없이 그려내는 제스처를 활자로는 전달할 재간이 없다. 어느 기자의 표현대로라면 110%쯤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배우다.

-늘 하는 질문이지만 액션, SF 장르영화에 유독 자주 출연하는 이유가 있나.
=<미녀 삼총사>처럼 멋진 여자들이 남자들을 걷어차는 영화 보는 거 정말 좋아하죠. 진짜 쿨하잖아요. 그냥 좋죠 뭐. 무술도 좋고. 영화 촬영 없을 때 나도 늘 수련하니까.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이런 장르영화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냥 이런 영화 작업하는 거 좋아하고,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달리 더 괜찮은 다른 프로젝트가 없을 때면 할 뿐이죠. 난 배우니까 일해야지. 하하하.

-어떤 무술을 수련하세요. 벨트라도 딴 거 있어요.
=아뇨. 절대 전문적인 건 아니고, 가끔 트레이너랑 특별 강습도 하긴 하지만 주로 집에서 지금까지 배운 것들 가지고 일상생활에 맞게 스트레칭하는 정도죠. 최근에는 칼리 스틱스(Kali Sticks)를 해요. 전문 트레이너에게서 괜찮은 동작을 몇 가지 배웠거든요. 영화에서 6명의 남자를 차례로 원, 투, 스리, 탁탁탁, 눕히는 거 있잖아요. 발차기 같은 걸 거실에서 연습하진 않지만, 검술은 침실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요.

-당신의 독특한 외모 때문에 할리우드에서 다른 배우들보다 두배로 힘들지 않나요.
=아마 외모보다는 이름이 날 더 고생시켰을걸요? 하하하. 예쁘게 보이는 것보다 사람들이 내 이름 제대로 발음하게 만드는 게 더 어렵죠. 독특한 이름 때문에 미국인들은 나를 “오~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쟤는 외계인이나 슈퍼히어로를 연기해야겠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거 왜 있잖아요. 외지의 것들… 하하. 무서운 외계생물체! 내 이름이 만약에 멜리사였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이름을 바꾸거나 성을 안 쓰는 걸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왜 안 했겠어요. 어렸을 적에 이름 바꾸고 싶다고 하면, 유고슬라비안 바바리안인 우리 아버지는 그냥 “하지 마” 정도가 아니라 “그럼 내 자식 안 할 것이야”라고 무섭게 말하곤 했죠. 그럼 나는 “난 아버지 소유물이 아니에요” 하고 맞받아쳤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이름에 관해서는 말도 못 꺼내게 했으니까. 엄마랑 내 예명을 어떻게 지을까 의논하고 있을 때 들키기라도 하면, “뭐하는 짓들이야. 나 무시하는 거야”라고 소리지르는 분이셨어요.

-당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요? 자신이 외국인이라고 느끼나요.
=아주 어려서 러시아를 떠나서 거의 기억이 없어요. 몇 가지 기억은 있지만, 내가 자란 곳이라고 하면, 여기 LA를 생각하게 돼요. 이상한 게 뭔지 알아요? 나는 LA에서 자랐고, 셔먼 오크(LA교외 지역의 주택가) 악센트를 쓰는데, 내 이름은 ‘요보비치’예요. 그게 나를 외국인으로 만드는 거죠. 나는 말하자면 지극히 평범한 정상인인데, 내 이름이 나라는 사람과는 종종 맞지 않는 ‘외계인의 아우라’를 덧씌우는 거죠. 근데 내 패션 브랜드에 내 이름을 쓰고 보니까 그게 또 나름 들어맞아요. 사람들이 척 보고는 “오, 요보비치!” 하고 근사하게 감탄한다니까요. 원래 이쪽 업계에서는 복잡한 디자이너 외국 이름 잘 붙이잖아요. 내 패션 브랜드 런칭한 뒤로는 부쩍 내 이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이젠 난 세련된 물 건너온 유럽인 대접을 받는 거죠. 하하.

-영화에서 바이올렛이 보이는 모성에 공감하나요.
=난 원래 아이를 좋아해요. 아이를 갖고 싶지만, 언제쯤 될지는 알 수 없고요. 패션 브랜드를 시작한 것도 어쩌면 내 인생에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네요. 모델이나 배우라는 직업이 항상 떠도는 거라, 남자친구 두고 6개월쯤 다른 나라에 가야 하고 그렇잖아요. 결국 어떤 관계가 살아남을까, 뭐, 나는 파트타임 여자친구? 이런 문제에 대해 종종 생각해요. 결국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누굴까, 이런 문제가 큰 딜레마였죠. 내가 음악이나 모델 일이 아닌 패션계에 뛰어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 것 같아요. 내 얼굴만 가지고 사는 일에서 벗어나서, 서른 즈음에는 적어도 내가 가족과 지금껏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규칙적인 일상과 안정된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해요. 이제 시작한 지 몇년 안 됐지만 사업이 정말 잘돼서 내가 일보다는 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초현실적이라고들 하는데. 당신에게 연기는 무엇인가요.
=음, 그 질문에는 대답하기 힘드네요. 어려서부터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선택하고 말 겨를이 없었어요. 굳이 말하자면, 연기가 한 인간으로서 한정된 내 삶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하는 건 분명하죠. 연기생활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결국 나 자신은 그대로지만 내가 사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사실이에요.

-지난 겨울에 서른이 되었죠? 서른이 단지 숫자일 뿐인가요 아니면 심리적 위기를 맞이했나요.
=당연히 심리적 변화가 있죠. 하하하. 위기라고 할 건 없지만. 나는 서른인 게 좋아요. 물론 내가 16살 적에는 서른살 먹은 여자가 우습게 보였어요. 웬 할머니… 그러면서. 서른인 나를 그렇게 볼 16살짜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하하. 여권 사진을 보거나 할 때 그때의 풋풋함이 그립기도 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훨씬 안정되고 좋아요. 그때는 뭔가 불안정하고 혼란스럽고 세상에 대해 화가 나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이제는 더이상 ‘젊은 영계’로 보여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안 받아도 되니까 좋아요.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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