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군 투덜양]
투덜양, 해독불가한 <아파트>의 미스터리를 허탈해하다
2006-07-28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제발, 이야기가 말은 되게 해다오!

이제 공포영화를 보고 무섭지 않다고 투덜거린다면 <개그콘서트>의 복학생 대접을 받을 것이다. 투덜거리는 내 뒤로 한국 공포영화 고정출연의 긴 생머리 소녀가 나타나 어색하게 가발을 쓸어올리며 “무서울 줄 알았냐?” 썰렁한 개그라도 할 것 같다. 하여 <아파트>가 무섭지 않았다고 투덜거릴 생각은 없다. 나도 나름 공정한 잣대를 가진 관객이다. 그럼에도 <아파트>가 실망스러웠던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분신사바>를 끝내고 안병기 감독은 더이상 머리 풀어헤친 원혼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했던 탓에 사다코의 동생을 만날 일이 이제 없겠다고 기대한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이야기의 미스터리 때문이다.

<아파트>는 <소름>처럼 당장에라도 귀신이 뛰쳐나올 것만 같은 낡은 아파트가 아니라 새로 지은 현대적인 아파트가 배경이다. 모던한 건 아파트뿐 아니라 주인공 세진의 직업도 그녀의 집 인테리어도, 그녀의 분위기도 그렇다. 모던한 공포를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일 테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딱 한 가지 모던하지 않은 건 바로 공포를 만드는 장치다. 시끄러운 굉음에 의존해 놀라게 하기라는 낡은 수법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한다고 치자. 이 모던한 공간에 가당치 않은 긴 생머리 소녀귀신의 예의 관절꺾기 등장은 무엇인가. 이건 약속 위반인데다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 아닌가. 이 소녀가 나왔을 때 하마터면 스크린을 향해 소리지를 뻔했다. 바로 <소림축구>에서 주성치가 조미에게 했던 대사, “너네 별로, 아니 너네 시골 별장으로 돌아가”라고 말이다. 덧붙여 “돌아가기 싫으면 웨이브 파마라도 하고 오란 말이다”라고 말이다.

또 하나, 이 영화의 미스터리는 미스터리 드라마를 전개하는 방식이 그야말로 미스터리하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아파트>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했다면 이 말도 이해할 것이다. 이를테면 은둔형 외톨이의 존재가 대표적이다. 괜히 열내는 형사에게 붙잡힌 외톨이 소년은 이 집에 끌려와 혼자 방에서 지냈다는데 왜 끌려왔는지 그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왜 생머리 언니 가발에 흰 원피스를 빌려 입었는지 도무지 알 길 없이 장애만 보여주다가 갑자기 자살한다. 추론하건대 그를 끌고 온 건 현대사회의 병적 징후를 공포영화에 등장시키려는 감독일 것이고, 가발에 복장도착은 공포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할 수 없이 한 선택일 것이다. 결국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다는 말이다.

재미없는 공포영화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미스터리 드라마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미스터리하게, 즉 해독불가능하게 이어간다는 것이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파트> 출연 귀신을 비롯한 ‘미스터리(?) 드라마’의 긴 생머리 언니들에게 80년대 어린이 영양제 광고 스타일로 요청하고 싶다. 무섭지 않아도 좋다. 말 되게만 이야기를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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