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예측 불가능성을 좋아한다
영화 <지옥갑자원> <크로마티고교> 등을 통해 엽기적인 상상력을 보여줬던 일본의 야마구치 유다이 감독이 신작 <미트볼머신>을 들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된 <미트볼머신>은 인간에 기생하는 생물체 네크로보그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괴기스러운 이미지가 그의 전작 못지않다는 인상을 준다. 7월16일, 올해로 세 번째 부천을 찾은 야마구치 감독을 부천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번 만남에는 <미트볼머신>의 주연배우 다카하시 잇세이도 함께했다.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야마구치 유다이=이번 작품은 야마모토 주니치와 공동 연출을 했다. 8년 전에 야마모토가 만든 같은 제목의 60분짜리 중편이 원작이다. 당시에 내가 조금 도와줬었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그래서 리메이크 이야기가 오갔고, 장편으로 만들자고 합의했다.
-네크로보그라는 생물체의 설정은 어떻게 했나.
야마구치 유다이=미국의 히어로들은 주로 의상을 입지만 일본의 히어로는 몸 전체가 변형된다. 물론 네크로보그를 히어로라고 할 순 없지만, 몸이 완전히 변하는 모습을 반영하고 싶었다.
-네크로보그가 눈을 공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설정으로 등장한다.
야마구치 유다이=눈에는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외계인들의 눈동자는 파랗지 않나.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인 사치코는 두눈을 모두 공격받아 인간적인 면을 모두 잃어버린다. 하지만 남자주인공인 요지는 한쪽 눈만 공격받았기 때문에 네크로보그로 변해도 끝까지 저항할 수 있다.
-네크로보그 코스튬의 무게는 어느 정도인가.
야마구치 유다이=10kg 정도 된다.
-코스튬의 무게를 견디고 연기를 하는 게 힘들진 않았나.
다카하시 잇세이=사실 별로 무겁진 않았다. 하지만 무겁게 보였다면 다행이다. 다만 그걸 입었을 때 더워서 고생했던 것 같긴 하다. 또 팔을 움직이는 게 불편해서 상대방을 때리면서도 내가 더 아팠다.
-영화를 처음 제의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꽤 이상한 영화라고 받아들였을 수도 있을 텐데.
다카하시 잇세이=야마구치 감독과는 예전에 함께 드라마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캐릭터가 괴상하게 보일 순 있지만, 인간다운 면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어떤 역할이든 결국 중요한 건 인간적인 심리를 어떻게 살려내는가인 것 같다.
-CG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야마구치 유다이=사람들이 이제는 CG에 대해 질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 매력인 것 같다.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을 좋아한다. 물론 뉴질랜드의 웨타처럼 완벽하게 CG를 구사한다면, 그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설픈 CG는 역시 안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물론 예산이 100배 정도 많아진다면, CG를 해볼 마음은 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