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청춘을 통과하는 어눌한 발걸음, <내 청춘에게 고함>
2006-08-02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내 청춘에게 고함>이 말하는 청춘의 의미

장마다. 많은 비가 여러 날에 걸쳐 오고 있다. 길지 않은 영화 세편이 장편영화 형식에 함께 걸려 있다. 옴니버스형 <내 청춘에게 고함>이다. 많은 수재를 낸 이번 장마 기간 중 이 영화를 CGV강변의 독립영화관에서 보았다. 비가 떨어지는데도 몇몇 사람들은 강으로 나 있는 옥상 위에서 황토가 뒤섞인 어두운 녹색의 강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밑으로는 전자제품을 거래하는 수많은 테크노마트들이 즐비하고, 극장 밖으로는 강이 펼쳐진 CGV강변은 오늘만큼은 매우 특별하고 미묘하다.

<내 청춘에게 고함>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폭주하는 7월, 한반도에 고하노라! 돌아온 슈퍼맨이 고함! 역시 돌아온 엑스맨이 고하건대… 등등의 고성이 난무한 가운데 이 영화는 청춘에게 고한단다. 청춘도 그렇고 고하는 것도 그렇고 제목 어투는 다소 고전적이다.

영화 전체를 흐르는 아슬아슬한 리듬

영화가 시작하면 정희(김혜나)가 소개된다. 옥상에서 하는 그녀의 행동은 성마르고 빠르다. 참을성없고 운율감도 없다. 옥탑방 남자친구의 방에 자물쇠가 걸려 있고, 그 자물쇠가 2번 정도의 시도에도 열리지 않자 벽돌을 들어 창을 깨버린다. 이렇게 관객은 전혀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불쾌한 행동을 하는 주인공을 불현듯 소개하는 것은 사실 비주류영화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불현듯 궁금했다. 그녀가 급하게 캔맥주를 따다가 손톱이 좀 부러진 듯 보이고, 연이어 벽돌을 던지고, 왜 좀더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옥상 밑으로 소리를 지르는 행동들이 캐릭터 연기의 일부인지 아니면 연기 리듬을 놓치고 3분의 1박자 빠르게 움직이는 것인지…. 이 아슬아슬함 혹은 긴장감은 영화 전체를 흐르는 리듬이기도 하다.

곧 밝혀지기를 사실 위와 같은 행동을 한 정희는 남자친구의 의향을 오해한 것이다. 그리고 남자친구는 깨진 유리창을 보곤 도둑이 들었다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이것이 오해든 이해든 정희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과 남자친구의 관계는 섹스에 기반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21살의 그녀는 자신이 새로 맡게 될 역할 ‘에비타’가 요구할 탱고와 그에 어울릴 정체성을 자신의 정희와 바꿀 참이다. 와중에 교회 성가대를 하는 정희의 참한 친언니가 오랫동안 보지 못한, 원망 대상인 아버지를 데리고 오자 그 신원개조 욕망은 잠시 과거와 마주한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괜찮은 상태의 집을 보여주고자 언니가 무리한 대출까지 해 구한 전셋집 중개인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후 정희는 정처없이 가방을 끌고 이곳저곳을 헤맨다. 중간에 가방을 버려 버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돌연 그녀가 파출소에서, 여관방에 불을 내고, 콘돔과 함께 발견되고(경찰은 성매매가 이뤄졌다고 추정한다), 또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항변할 때, 나는 이 비약의 함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는 남은 에피소드에서 이 돌발사건을 옴니버스영화 서사의 부분적 일관성을 위해 다시 도입하지만 그보다는 이것은 도시에 편재한 우연성 노출 장치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근우(이상우)의 이야기다. 직장에서는 비정규직 노동문제가 불거져 파업이 진행 중이지만 근우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본인도 해고 통지서를 받게 된다. 배우가 되려는 직장 선배(배윤범)는 연기 훈련을 한다며, 경찰로 가장하고 모텔을 급습해 불륜 남녀를 협박한다. 근우는 그 불륜 남녀, 한 커플의 대화를 도청하면서 분홍옷에 살구색 신발을 신은 여자(양은용)에게 사랑을 느낀다고 믿는다. 비정규직 문제와 파업, 불륜과 도청 등이 뒤섞인 가운데 분홍옷의 여자와 해고 통지를 받은 남자는 설왕설래한다.

세 번째는 초록이 눈부신 길을 걷는 군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결혼하고 서른이 넘어 군대에 들어와 제대를 열흘 앞두고 휴가를 맞은 인호 역의 배우는 김태우다. 그는 나른하고 시니컬하나 제대를 앞두고 작은 변화를 만들려고 하는 30대 남자 역을 대단히 신빙성있게 과장하지 않고 잘해낸다. 이 에피소드에 끼어드는 돌출사건들은 결혼한 상태로 군대에 들어온 상병 동료의 집을 인호가 우정 방문했다가, 그의 아내의 병원 출산을 돕는 등이다. 한편, 인호의 아내는 놀라게 해줄 요량으로 편지만 띄운 채 집에 돌아온 인호의 편지조차 뜯어보지 않은 상태로 우편함에 놓아두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호는 아내없는 집 안에 들어가 남자가 사용한 상태로 놓여져 있는 변기 뚜껑도 살펴보고, 걸려오는 전화도 의심한다. 그러면서도 친구도 만나고, 예의 친구 아내의 출산을 위해 급히 병원을 찾아가며, 게다가 원 나이트 스탠드도 한다. 여기서 인호에게 작동하는 흥미로운 심리적 기제는 자신의 원 나이트 스탠드 경험을 아내의 고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자신의 고백의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백이든 대화이든 전화 통화이든 이해나 소통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하나도 없다. 에피소드1에서 한강에 투신자살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한 뒤 정희는 그 한강 어디쯤에 자신의 휴대폰을 떨어뜨려버린다. 에피소드2에서 전화 수리공인 근우는 도청하다가 전화선을 끊어버린다. 에피소드3에서 군인인 관계로 휴대폰이 없는 인호가 여러 번 사용하는 공중전화는 대화 도중 끊어져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인호의 아내는 새로 찾은 남자친구와 함께 정읍으로 여행을 떠나고, 바로 그 열차 칸에 인호와 원 나이트 스탠드를 했던 여자가 함께 탄다. 좀 떨어져 앉아 있던 인호네는 아내와 그 동행의 바로 뒷자리로 옮겨 앉고 그것을 알아차린 아내는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동시대 청춘들의 코드들을 비켜가는 청춘

처음에 제목 <내 청춘에게 고함>이 고전적이라고 중얼거린 바 있는데 실제로 이 영화는 이상하리만큼 동시대 청춘들의 휴대폰 중심적이며 지향적인 소통과 단절을 피해간다. 정희가 휴대폰을 ‘자살’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근우는 직업상 전봇대에 매달려 비상용 전화로 도청을 하고 있으며, 군인 인호는 시종일관 공중전화나 집 전화를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비동시대적 소통 채널 속에서 정희는 철로에 귀를 대어 먼 기차의 소리를 들으려 하고 근우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의 고백을 도청하다 사랑에 빠진다. 인호는 한번도 아내와 통화하지 못한다. 반면 우연히 밤을 함께 보낸 여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집에서 받게 된다.

각각은 단편이나 전체로 보아서는 장편영화를 구성하게 되는 위 세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다른 에피소드의 인물과 맺고 있는 관계는 영화 속에서는 거의 없다. 뉴스를 통해서나 우연적 언급을 통해서만 이들이 동질적인 시간대와 공간을 살고 있고, 통과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예컨대 정희가 여관방에 화재를 낸 사건은 근우가 집착하는 분홍옷 여자에게 유부남이 모종의 말을 건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또 근우의 노래방 폭행사건은 희한한 뉴스거리가 되어 인호에게 전해진다. 휴대폰 소통을 피해나가는 영화적 장치와 더불어, 김보연의 잊혀지지 않는 진정한 사랑을 노래하는 <생각>은 지속되는 사랑의 관계가 없는 이 영화에 역설적인 반응을 촉발하는 음악이다. <생각>은 1979년에 나온 노래다. 70년대 청춘영화 <여고얄개>의 하이틴 스타 김보연의 1979년 노래를 2006년 청춘영화에서 듣는다는 것이 당혹스러우나 이 영화의 공공연한 우회, 즉 빛나는 청춘이 아닌 주변 청춘 혹은 청춘을 지나쳐버린, 늦된 청춘으로 보려는 시각에서 보자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공들인 장면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시작하는 첫 장면들이다. 처음 우리는 골목을 걸어가는 정희의 뒷모습을 보며, 두 번째는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근우를 보며, 세 번째는 전혀 군인 같지 않은 흐트러진 걸음의 인호를 본다.

처음 장편영화를 찍은 김영남 감독은 청춘이라는 미지의 경로를 어색하고 어눌하게 통과해가는 젊은이들을 비주류적 코드로 담아냈다. 이제 청춘영화를 막 통과한 그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