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1970년대 이후 음모와 정치영화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오락으로서의 정치영화도 언젠가부터 스파이물로 변질되어 보여지는 게 고작이다. 지금은 정말 오락을 위한 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금의 국제정치와 권력관계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시리아나>의 가치는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법. <시리아나>는 현실 정치 상황을 제시하는 선을 넘지 않는다. 교통상황을 보여주되 교통정리까진 안 하겠다는 뜻일까. 조지 클루니가 인터뷰에서 “끝나지 않은 냉전 상황을 그리고 싶었지 다른 정치적 의도를 삽입하려던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사연도 그런 정황을 확인하게 만든다. 그러니 진짜 악당, 구체적인 악의 세력을 지목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20세기의 마약으로 불리는 석유가 세계관과 정치관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짚어보는 <시리아나>의 의미는 일단 아랍을 포함한 타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트래픽>의 각본을 써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스티븐 개건이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맡은 <시리아나>는 <트래픽>의 ‘석유 버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네다섯개 이상의 큰 몸뚱이가 춤을 추듯 뒤섞이고 복잡한 가지들이 교차하는 <시리아나>는 개별 이야기를 혼동하지 않고 잘 조합해서 보기 위해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드물게 지적인 할리우드의 한편이다. <시리아나>의 HD DVD가 미국에서 이미 발매되었기에 DVD의 화질에 은근한 기대를 품었는데, 일단 말끔한 영상이 전체적으로 우수하긴 하나 필름에 비해 너무 차갑고 색감이 풍부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소리가 다소 먹먹한 건 지적할 부분이다. 복잡한 스토리라인과 세계를 무대로 진행된 제작 과정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본편에 음성해설이 없어서 아쉽겠다. 개건이 <트패픽> DVD에서 친절하게 음성해설을 맡았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부록 또한 두장으로 발매된 특별판치고는 풍부한 편이 아니다. 이야기의 큰 축을 이끌어가는 두 주연배우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과의 대화(9분, 7분), 현실 인식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발언인 ‘세상을 변화시키기’(11분), 3개의 삭제장면(6분) 등이 부록으로 지원되는 가운데 ‘현실을 드라마로 엮기: 감독의 여정’(26분, 사진)이 가장 볼 만하다. <트래픽>의 자료를 찾는 도중 구상했다는 <시리아나>를 쓰기 위해 개건이 전직 CIA 요원이자 <악마는 없다>의 저자인 로버트 베이어의 도움을 받아 대륙을 넘나든 사연과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영화가 촬영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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