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올미다> 올겨울 극장서 만나요!
2006-07-28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드라마 작가·감독·배우들 그대로 옮겨와 ‘살가운’ 촬영장

지루한 장맛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쨍한 햇빛이 쏟아진 22일 오후, 서울 낙산공원 근처의 주민 휴식터에 놀러나온 노인들의 한갓진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 영락없는 동네 할머니들의 마실 풍경이지만 그들의 대화가 예사롭지 않다. 한 할머니를 향해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나도 너만한 때가 있었는데, 어쩜 그리 탱탱하냐?”라고 ‘귀여워’하면, 칭찬받은 할머니(김영옥)는 주책없이 이까지 딱딱 부딪혀가며 자신의 ‘젊음’을 자랑한다. 그 옆의 다른 할머니(김혜옥)가 맹렬하게 질투심을 드러내면서 시비를 걸다 급기야 “내가 결혼 못했다고 지금까지 처년 줄 알아?” 소리를 꽥 지르니 앞에서 축구공 차던 꼬마들까지 벙 찐 표정으로 이들을 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노인들은 바로 지난해 종영한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개성 강한 자매들로 지금은 같은 제목의 영화를 찍고 있는 중이다.

지난 6월 촬영을 시작한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청년필름·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 공동제작)에는 미자와 친구들, 할머니 세자매, 부록과 우현까지 드라마의 캐릭터들이 같은 배우의 연기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지난 6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한영숙씨를 대신해 서승현씨가 새롭게 들어왔을 뿐이다.

1년 동안 일일드라마를 찍으면서 같이 살다시피 했으니 다시 만난 영화촬영장에는 여느 촬영장에서 느끼기 힘든 여유와 살가움이 있다. 그래서인지 동네 아주머니들이 스스럼없이 배우들을 아는 척하고 같이 수다를 떨다가 종종 엑스트라로 즉석 캐스팅되기도 한다.

작가와 감독까지 드라마에서 영화로 고스란히 옮겨온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굳이 나누자면 드라마의 초기 버전과 같은 정서다. 백수나 다름없는 ‘개점휴업’ 성우이며 애인도 없는 서른두살 미자가 집과 직장에서 골고루 구박을 당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프로듀서와 이루는 사랑의 큰 줄기 사이로 세 자매의 깜찍발랄 로맨스와 미자의 삼촌 우현의 좌충우돌 은행강도 도전기가 삽입된다. 드라마에서는 없었던 인물 박 피디가 새롭게 등장해 미자의 인생을 한층 더 꼬이게 만들며 미자의 상상들이 판타지처럼 적극적으로 구현되면서 드라마와 차별되는 영화적 재미를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여느 때처럼 본인 촬영분이 없는 이날도 촬영장을 찾은 미자역의 예지원은 “의기소침한 초기 미자로 돌아가라는 게 감독님의 유일한 주문인데 친한 동료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있다 보면 저절로 목소리가 밝아져 ‘그 얼굴 미자 아니에요’라는 지적을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자와 전세계 노처녀들의 아이콘이 된 브리짓 존스와의 차이점을 “미자에게는 비슷한 성격의 식구들이 있어서 그 소심함이나 엉뚱함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미자의 일터인 여의도와 서울의 오래된 동네에서 지금까지 반 이상 촬영을 마친 이 영화는 8월 초 촬영을 끝내고 올겨울 개봉할 예정이다.

“드라마서 ‘영화’ 추려내기 참 까다로웠죠”

<올·미·다> 김석윤 감독

드라마에 이어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까지 연출하게 된 김석윤 감독은 1992년 한국방송 예능국에 공채 입사한 현직 피디다. 영화사가 한국방송 자회사인 KBS미디어와 계약을 맺은 탓에, 감독 개런티 대신 한국방송으로부터 피디 월급을 받고 일하는 ‘파견직’ 감독인 셈이다.

이 영화를 하기 전에 시트콤 〈멋진 친구들〉 〈달려라 울엄마〉 등을 연출한 그는 “영화와 텔레비전 매체의 기술적인 차이를 따라가는 것보다 시나리오 작업이 훨씬 힘들었다”고 말했다. “1년 동안 이어져온 드라마여서 이야기의 큰 방향만도 열 갈래가 넘는데 이 가운데 ‘영화적’인 걸 추려내는 게 가장 까다로웠고, 그 과정에서 일부 캐릭터의 비중이 줄어든 게 무척 미안하다”는 그는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맞춰 ‘주눅들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나리오의 가닥이 잡히면서 주인공 미자도 초반의 일거리 없는 백수로, 지 피디도 까칠한 초반 성격으로 되돌아갔다”고 설명했다.

텔레비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영화로 옮긴 배우들의 한결같은 토로처럼 감독인 그도 촬영 초반에는 ‘기다림의 미학’에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다스리는 데 꽤나 고생을 했다고. “처음에는 조명 맞추는 몇시간 기다리는 데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는 그는 지금도 감독 의자에 좀처럼 앉지 않는다.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탓에 캐릭터를 변용할 수 있는 폭이 좁은 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빨리 진행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하는 그는 데뷔감독답지 않게 그날그날의 촬영계획을 거의 100% 지켜나가 제작사와 스태프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제작사에서 35회차로 잡았던 촬영을 29회차로 줄인 것도 감독이다. “영화의 흥행이 잘돼도 영화보다는 방송을 더 하고 싶다”는 그는 “매체가 무엇이든 소소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고 특히 노인들의 이야기는 놓치지 않고 좀 더 공들여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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