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괴물만 쫓는 영화판 이의 있습니다!
2006-08-03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1일 배우 이문식이 한 인터뷰에서 “〈괴물〉이 최다 스크린을 잡은 게 꼭 박수칠 만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 게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다. 일부 누리꾼들은 흥행 경쟁작 〈플라이 대디〉의 주인공인 이문식이 〈괴물〉의 성공을 질투하는 거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을 하기도 했지만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그의 말은 되새겨볼 만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융단폭격으로 수익률이 극히 저조했던 충무로에서 〈괴물〉의 흥행 성공은 가뭄의 비처럼 값지다. 또 민족주의를 동원하거나 조폭코미디처럼 뻔한 흥행공식에 끼워맞추지 않았으면서 오로지 재미와 완성도만으로 승부를 건 이 영화의 뚝심도 칭찬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620개 상영관 점유가 타당한 것인지에는 물음표를 찍고 싶다. 620개는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전국 스크린 수 1648개 중 3분의 1이 넘고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상업영화관만 치면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다. 물론 〈괴물〉의 제작·배급사도 할 말은 있다. 본래 올여름 경쟁작이었던 〈한반도〉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상영관 수를 잡으려던 제작사 청어람은 “전국 극장의 필름 프린트 요청이 쇄도해 그 수량을 모두 맞추면 700개 이상 스크린도 가능했지만 적정 규모를 맞추기 위해 620개 스크린 개봉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600개 이상 펼쳐놓아도 연일 매진사례를 거듭하며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 행진을 하고 있으니 이전에 몇몇 대작영화들의 관객수치 올리기를 위한 상영관 ‘강제 점거’와도 차원이 다르다.

문제는 〈괴물〉이나 상영관 620개라는 수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충무로와 극장가, 관객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심화되는 ‘흥행대작 추수주의’이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 점유율은 59.5%로 높지만 이 비율을 대부분 채운 건 한국영화 흥행신기록을 낸 〈왕의 남자〉와 600만명 이상 동원한 〈투사부일체〉다. 그 밖의 5편이 ‘그럭저럭’ 수익을 냈을 뿐 나머지 40편이 겨우 적자를 면했거나 마이너스 수익을 냈다. 300~400개의 상영관을 잡을 수 있는 규모의 흥행작들에게는 200만~300만명도 미적지근한 숫자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들은 20만~30만명에서 간판을 내리게 된다. 그러니 충무로에서는 “백억원짜리 대작영화나 20억원 미만의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면 투자를 못 받는다”라는 말이 떠돈다. 판을 까는 사람들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복합상영관에도 영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푸념보다 “한달에 한두 번 보는 영화인데 흥행작, 화제작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라는 몰아주기 옹호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후자가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여기에는 문화로서의 영화는 없고 상품으로서의 영화만 있을 뿐이다. 개개인의 서로 다른 기호나 다양함에 대한 호감이 없다면 영화를 한다는 게, 그리고 본다는 게 새마을 운동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그래서 극장을 도배한 〈괴물〉의 간판이 영화의 의미와는 무관하게 ‘1000만명 든 영화 한 편, 100만명 든 영화 열 편보다 낫다’는 식의 70년대 성장지상주의로 물드는 듯한 충무로의 풍경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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