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얼짱소녀의 무궁무진한 호기심, <다세포소녀>의 김옥빈
2006-08-04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거짓말인가. 들어서자마자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 촬영 때문에 수면 부족을 호소하더니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펄펄 난다. 피곤하다는 투정은 그저 인사말이었나 보다. 사진기자에게 어떤 느낌을 원하느냐고 꼬치꼬치 따져묻고선 곧바로 몰입이다. 언제든 꺼내마실 수 있는 활력수라도 있는 걸까. 잠깐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눈을 붙이기는커녕 김옥빈은 끊임없이 흥얼거리고 몸을 놀린다. 그것도 과하게. 예쁘다는 사진기자의 말에 코믹만화 캐릭터처럼 두손을 앞에 모으고 ‘헉헉’하질 않나, 한때 다녔던 권투도장 관장님에 대한 에피소드까지 손짓 발짓 써가며 들려주질 않나. 그러다가도 카메라 들이대면 딴 사람처럼 갖가지 표정을 선보이니. 저 주체 못할 끼는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렇죠.” 요즘 인터넷에서 한참 뜨고 있는 <다세포소녀>의 ‘흔들녀’ 동영상도 “음악을 들으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이상한 체질 때문에 가능했다고. “다들 그래요. 멀리서 저를 보면 언제나 흐물흐물하고 있다고. 원래 무대 보면 냅다 위로 뛰어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요.” 데뷔작 <여고괴담4: 목소리>(이하 <목소리>)에서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는 귀신 영언으로만 기억한다면 그의 이런 모습이 뜻밖일 것이다. “<목소리>는 무섭고 슬픈 영화잖아요. 현장에서 딴생각은 못했죠. 첫 영화이기도 하고 또 감정이 깨질까봐. 그런데 이번엔 촬영하면서 수시로 스탭들과 농담을 나눴다니까요. 밝은 영화 하면서 저도 모르게 더 밝아졌죠.”

촬영을 끝낸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도 <다세포소녀>가 달아준 꼬리뼈는 여전하다. “<캔디> 보셨어요? 일라이자가 괴롭히면 캔디 눈이 십자가 모양이 되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하잖아요. 극중 가난소녀도 그래요. 과장된 한숨, 과장된 하늘 보기가 특기죠.” 과장된 감정 표현을 위해 촬영 전 각종 만화들을 닥치는 대로 봤는데 그때 만화 속 장면을 따라한 것이 이제는 아예 습관이 됐단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세포소녀> 제작진은 애초 가난소녀 역을 신입급이 아닌 기존 여배우에게 맡길 생각이었으나 다들 광고 출연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유에서 거절했다. 김옥빈은 전혀 망설임이 없었을까. “제가 원래 호기심도 많고 도전정신도 심하게 강해요. 끌리면 내질러야 하니까.”

원조교제를 해야 한다며 학교에서 조퇴하는 ‘골 때리는’ 가난소녀를 너끈히 받아들인 데는 이재용 감독에 대한 신뢰도 컸다. “미장센은 알아주는 분이잖아요. 사실 원작을 보고 킥킥대면서도 저걸 어떻게 영화로 만들까 궁금하고 의심이 갔는데. 첫 만남에서 감독님이 조근조근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전 ‘아, 예, 예∼’하게 되고. 감독님의 머릿속 생각이 제 머리에 통째로 이식되는 것 같았어요.” 의상 피팅 때 모여든 개성 강한 스탭들을 보고서 <다세포소녀>의 못 말리는 군상이 떠올랐다는 김옥빈은 촬영에 들어가선 “혼자서 킥킥대느라 NG낸 적이 많았다”고 말한다. “야한 대사하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죠. 실제로 어느 고등학교가 그러겠어요. 문제는 민망한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표현해야 하는 거였죠.”

잘 알려져 있듯이 김옥빈은 얼짱 출신이다. 홈페이지 경연대회를 준비하다 우연히 클릭해서 알게 된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얼짱대회에 ‘장난으로’ 사진을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1등을 할 줄은 몰랐어요. 그 뒤로 매니지먼트사에 들어간 다음에도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고. 화려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면 모를까.” 그때까지만 해도 김옥빈은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하긴, 외모에 한참 관심 많을 나이에도 단발커트 머리를 하고 합기도, 태권도, 권투 등을 배우며 경찰행정학과에 지원하고 싶었던 그였다. “그런데 막상 이 세계에 발을 딛고 보니 멋지고 재주 많은 언니 오빠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난 한참 뒤떨어져 보이고. 이왕 시작한 거 질 수 없다 싶었어요.”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 일이 나랑 잘 맞는구나, 내가 행복해하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김옥빈은 언제나 조언을 아끼지 않는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런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최익환 감독님과 김뢰하 선배님이에요. 최 감독님은 지금도 통화하면서 도움을 청하죠. 최 감독님 소개로 김뢰하 선배님을 알게 됐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요, 하는 귀찮은 질문들을 할 때마다 언제나 친절하게 일러주세요. 이 정도라도 연기할 수 있는 건 두분 도움이 크죠.” 자신을 ‘어설픈 완벽주의자’라고 칭하는 김옥빈은 아직 현장에서 쏟아지는 시선들을 즐길 만한 여유는 없는 신인배우다. “연기할 때 수십명의 스탭들과의 합이 중요하잖아요. 저분의 요구도 받아야 하고, 또 저분의 요구도 받아야 하고. 그걸 하나라도 소화하지 못하면 합이 어그러지는 거잖아요. 부담이죠.”

그러나 김옥빈은 가진 것을 풀어내는 재미 말고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재미도 알고 있다. “가끔 감독님이 ‘좋았어, 오케이’ 해줄 때면 너무 좋아요. 아직 제가 부족한 게 집중력이에요. 감독님들이 그러는데 집중할 때와 집중 안 할 때의 연기가 확 차이난대요. 들떠 있으면 집중을 못하는데. 언젠가 그것도 메워지겠죠.” 목표가 분명해진 뒤로 김옥빈에겐 또 다른 불안이 생겼다. “<다세포소녀> 촬영 4, 5회차 남겨놓고 정말 죽을 것 같더라고요. 이거 끝나면 뭐 하나. 쉬지 않고 달리고 싶은데. 역마살 같은게 저한테 좀 있거든요. 달리지 않으면 불안한데.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안달복달하죠.” 한없이 선량해 보이다가도 어찌 보면 매섭기도 하고, 한없이 쾌활하다가도 때로는 음침하기까지 한 자신의 극단의 이미지가 매력이 아닐까 싶다는 그는 인터뷰 마지막에 “사람들이 주무를 때마다 한없이 변하는” 천의 얼굴을 갖고 싶다는 만만찮은 욕심을 꺼내놓는다. 지금 열정이 식지 않는다면 무모한 욕심은 아니다.

장소협찬 Lady Heather’s Room·의상협찬 에고이스트, 더블유닷, 삼지, 오브제, 엘록·액세서리 협찬 사라리, 바쵸바치by1982, 코카롤리·스타일리스트 김소영, 정은·헤어 메이크업 라 뷰티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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