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미야자키 고로 감독
2006-08-09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이혜정
“아버지는 쉽게 무너지실 분이 아니다”

“나도 들어보지 못한 그 말을 당신은 어디서 들은 것인가?” 기자간담회 장소에서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프로듀서이자 지브리 스튜디오의 현 사장인 스즈키 도시오가 일본에서의 평은 안 좋은 걸로 알고 있다는 한 한국 기자의 질문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면서 그렇게 다시 반문했다. 잠시 긴장이 흐른다. 그 순간, 프로듀서의 옆자리에 앉은 감독 미야자키 고로의 표정에 얼른 시선이 간다.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아무 경력도 없는 그가 저런 대쪽 같은 노장들과 어울려 첫 데뷔전을 치러낸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마도 그는 침착하고, 예의있고, 상황을 주시할 줄 아는 것 같다. 그게 명망있고 고집스러운 노인네들과 함께하는 그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게드전기…>의 감독 미야자키 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다. 그러나 서른아홉의 늦은 데뷔 감독은 가족사를 잠깐 말할 때를 제외하곤 “아버지”라는 호칭 대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호칭으로 일관했다. 거기에는 공인에 대한 존경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자신을 객관적인 관계로 구별지으려는 예의있는 차림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상에 대해서는 지브리 미술관의 관장이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소개를 부탁한다.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같은 분야를 선택할 경우 아버지를 넘어서기는 힘들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처럼 말도 안 되는 직업은 절대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웃음) 그래서 농학부에 들어가서 산림에 대한 걸 공부했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공원 및 도시 녹화작업에 관한 조경 일을 했다. 10년 정도 그 일을 했을 때쯤 스즈키 도시오가 지브리 미술관을 만드는 데 협력해달라는 제안을 해왔고, 재미있는 장소를 만든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참여하게 됐다. 3년 준비해서 오픈했고, 2001년 10월에 오픈한 뒤 3년 반 정도 미술관장직을 지냈다.

-<게드전기…>를 본 어머니의 평가는 어땠나? 아버지보다 낫다고 하던가.
=(웃음) 작품을 무리없이 끝마쳐서 잘됐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어머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도 칭찬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아들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이었을 거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는 것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처음에 반대했다고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나.
=두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는 내가 초보자였기 때문이다. 감독을 해본 적도 없고, 애니메이션을 해본 적도 없고. 두 번째는 아버지로서 자기 아들이 자신과 같은 험난한 길을 가는 걸 원치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 영화의 설정에 아주 큰 영향을 준 포스터도 직접 그려주셨다. 결국 이 기획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건 나였고, 경험은 없지만 어떤 작품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구상이 내게는 이미 있었다. 나는 이 영화의 원작인 <어스시의 마법사>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나 역시 좋아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어스시의 마법사>의 영향력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안에 후카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 캐릭터는 인간에게는 독이지만 지구를 정화한다는 다른 면도 갖고 있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존재한다는 그런 점이 <어스시의 마법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많은 작품을 통해서 이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주인공이 이름을 잃어버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그것 역시 <어스시의 마법사>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드전기…>를 보고나면 요즘의 지브리 작품과 달리 다소 예스러운 정취 같은 게 느껴진다.
=건축도 점점 더 화려해지는 장식이 많아지면 힘을 잃어가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건 애니메이션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점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6권의 원작 중 3번째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다고 들었지만, 원작과 비교해볼 때 많이 얽매인 것 같지는 않다. (기자 간담회장에서 미야자키 고로는 “내가 3부를 택한 건 그 시리즈가 현대세계와 통한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3부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균형이 무너짐이 인간에게서 시작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지금 인간들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3권은 남자 둘이 여행하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들은 여행하며 생과 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렌이 질문하면 게드가 대답하는 식으로. 그런데 그것에 정말 대답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얘기가 4권에 표현되고 있다. 3권을 선택했지만, 그 안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4권의 내용도 필요했던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슈나의 모험>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만화 <슈나의 모험>을 참고로 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슈나의 모험>은 한 소년이 여행을 떠나 중요한 사람을 만나 중요한 걸 얻게 되는 이야기다. 꼬치구이로 비교하자면, <슈나의 모험>이 꼬치이고, <어스시의 마법사>의 요소들이 구이로서 끼워 맞춰진 거다. 또는 <어스시의 마법사>가 제1 원작이라면, <슈나의 모험>은 제2 원작이다.

-캐릭터도 원작과는 약간씩 다른 것 같다.
=아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대 젊은이들과 공통된 점을 갖고 있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판타지에 흔히 등장하는 착하기만 하고, 모든 걸 잘하는 소년을 만드는 건 별로 설득력이 없을 거라는 판단을 했다. 게드에 대해서는… 3권과 4권에서 보면 게드는 마법을 잃고 나서 자신감도 잃는다. 그런데 거기에서 어떤 인간미를 느낄 수가 있다. 슈퍼히어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게드전기…>를 영화화하기 위해서 조심한 건 판타지이되 화려한 판타지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세계의 면모를 더 중심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앞으로도 인간미 넘치는 판타지를 그린 애니메이션을 추구할 생각인가.
=그렇다. 다음에 내가 다시 만든다고 하면 그런 작품이 될 것 같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 계획은 이 작품에 대한 평가에 따라 결정될 일이라는 뜻인가? (웃음)
=그거와는 상관없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으니까. 상황이 좋아야 할 거다. 왜냐하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음 작품이 2년 뒤에 개봉할 예정이니까, 나의 다음 작품은 하게 되더라도 적어도 4년 뒤가 되지 않겠나 싶다.

-아버님의 벽은 역시 높은가보다. (웃음)
=쉽게 무너지실 분이 아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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