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감독은 학창 시절 남들 앞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죽도록 싫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 갈라치면 그는 속으로 줄곧 번민했다. “나는 지금 여기 왜 있는 것일까? 그냥 일어서는 게 옳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계속 앉아 있는 난 도대체 뭘까?” 하지만 그러다가 돌아가며 노래라도 부르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그는 고뇌를 멈추고 화장실로 가서 노래할 곡의 제일 높은 음을 연습해 만전을 기한 다음 자리로 돌아왔다. 대학에서 연극을 하고 영화감독이 되면서 많이 변하긴 했지만 지금도 이재용 감독은 완곡어법의 추종자다. 대놓고 거절을 못하다보니, 심지어 어떤 제의를 사양하러 나갔다가 종국에는 후속 회의를 주재하는 입장이 되어 어리둥절한 채 귀가하는 일도 있다.
<정사> <순애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침착하게 균형의 지점을 찾아가는 영화였다. 그들은 일견 명명백백해 보이는 영화였지만, 여민 옷자락 속으로 손을 미끄러뜨리면 은밀한 충동과 상상이 만져졌다. 관객에게 필수적으로 전달할 이야기와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를 이재용 감독은 정중히 가렸다. 디스플레이는 그의 취미가 아니었다. 인생의 가장 노골적인 시기를 노골적인 시선으로 그린 인터넷 만화 <다세포 소녀>, 금기는 물론 정치적 올바름마저 폴짝 뛰어넘어버린 원작을 이재용 감독이 영화화한다는 소식은 그래서 놀라웠다. 워킹 타이틀로부터 <오만과 편견> 연출을 의뢰받았다는 연전의 뉴스보다 몇배 더.
그러나 이재용은 만든 영화보다 만들지 못한 영화, 만들고 싶은 영화에 관한 이야깃거리가 많은 감독이기도 하다. <한 도시 이야기>에서 엿보듯, 그의 아이디어들은 종종 비디오아트의 그것을 방불케 한다. “이것도 영화가 될 수 있을까?”라는 도발적 상상은 그가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버텨주는 ‘소금 같은 생각’이라고 이재용 감독은 말한다. 나아가 그는 끝내 태어나지 못한 영화들조차 ‘나의 영화’라고 규정한다. <다세포 소녀> 시사를 이틀 앞두고 인터뷰에 응한 이재용 감독은 “한번쯤 무책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웃는다. 유의할 대목은 그가 무책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해보고 싶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 ‘괴작’에 ‘출생의 비밀’ 같은 것은 없다. 이재용 감독은 “신이여, 이 영화를 정녕 제가?”라고 묻는 대신 흔쾌히 닮은 발가락들을 가리켰다.
-이재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중에는 알려진 인물이 유난히 많다. <다세포 소녀>에 출연한 배우 이재용을 비롯해 아나운서, 사진작가, 재벌 3세 등등.
=환경부 장관도 있다. 아나운서 이재용도 <다세포 소녀>에 출연시키려고 섭외했는데 MBC 아나운서는 외부 일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서 포기했다.
-<다세포 소녀> 제작 초기에는 이감독이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이감독과 당신은 어떤 관계인가.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
=<정사> <순애보> <스캔들…>의 이재용이 아닌 다른 감독이 만든 영화로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다세포 소녀>는 매력적인 기획이었지만 “지금 내가 이 영화를 하기 적절한 시기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사실 ‘이감독’은 작심한 가명이라고 하긴 너무 단순하지 않나? 뭐, 바로 첫날부터 ‘<정사>와 <스캔들…>의 이감독’이라고 보도됐다. 그래도 출발점에서 나로서는 그래야 마음 편한 점이 있었다. 얼굴만 모래에 파묻으면 타조가 아닌 꿩으로 혹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랄까.
-그러니까 이감독이라는 호칭은 본인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제스처로서 용도 외에 실제 효과는 거의 없는 셈이다. 자기 안의 여러 취향들을 칸막이 쳐서 편히 발산해보자는 뜻이었을까.
=비유하자면 이감독은 채팅의 대화명 같은 거다. 익명성 아래에서 본질은 아니라도 역시 내 실체의 일부인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번쯤 ‘감쪽같이’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그렇게 될 리 없다는 예감도 동시에 있었다. 어떤 두려움이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단지 주제와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영화의 결과에 대해서. 미국 감독들이 ‘알란 스미시’라는 가명을 크레딧에 올리듯 영화가 정 맘에 안 들면 그렇게 끝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제작보고회에서 조카나 어머니가 영화를 보면 민망할 것 같았다고 밝혔다. 거꾸로 그만큼 조카나 어머니와 돈독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우리 집은 농담, 더구나 성적인 농담은 거의 안 하고 사는 편이다. 가족끼리 모이면 안부 확인 외에는 별로 대화의 진전이 없다. 지지고 볶고 싸우지도 않지만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다세포 소녀>의 세계에 속하는 농담은 내게 어디까지나 사적 영역이지 가족과 나누는 영역이 아닌 거다.
-<정사>나 <스캔들…>도 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야한 영화로 분류되지 않나. <다세포 소녀>보다 더 정색한 성적인 코드가 있는데 그 영화들을 할 때는 가족에게 민망하지 않았나.
=물론 식구들이 “너 무슨 영화 하냐”고 물을 때 “<정사>…”라고 답하기가 편하진 않았다. (웃음) 그냥 “이미숙, 이정재 나오는 영화”라고 말할 뿐 “이게 불륜인데요. 사랑이기도 하면서…” 하는 구구한 설명은 회피하는 쪽이다. 그래도 <정사>라 하면 “사랑 이야기면서 에로틱한 영화겠지”, <스캔들…>이라 하면 “조선시대 러브스토리인데 좀 음란한 모양이다”라고 유추라도 할 수 있다. <다세포 소녀>는 제목부터 부모님께 어렵다. 단세포 소녀, 아니면 다대포 소녀로 알아듣기 십상이다. 그래도 보러 오시지 말라고 하면 무슨 떳떳지 못한 영화인가 하실 듯해 시사회에 초대했다. 나란히 앉아 영화 볼 생각을 하니 난감하기도 하다.
-<정사> <순애보> <스캔들…> 세편의 전작을 한 덩어리의 브랜드로 묶고 <다세포 소녀>를 그 바깥에 있는 예외적 작품으로 자리매김하는 시각에 감독 본인은 동의하는지.
=겉으로 탄탄한 이야기가 정해져 있는 <정사>와 <스캔들…>이 묶이는 부분이 있고, <다세포 소녀>는 큰 내러티브보다 각 장면 안의 이야기와 순간의 감정들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순애보>와 묶을 수 있다. 엇박자 농담과 주변에 관한 사변이 많이 깔린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넒은 의미에서 보면 모든 영화에는 감독의 유전자가 스며 있다.
-<다세포 소녀>는 최초 예정보다 개봉이 늦어졌다. 어느 인터넷 매체의 Q&A란을 보니 “완벽한 미장센을 추구하는 감독의 특성상 제작 일정이 뒤로 밀렸습니다”라고 써 있더라. 사실인가? 만들다보니 전작의 습관이 되돌아온 건가.
=한번 해보자고 결단하면서 대신 이 작품으로 너무 많은 시간은 끌지 말자, 본능에 충실하고 많이 재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다. 조금 조명이 후지고 흠이 드러나도 상관없이 찍는 영화 나름의 재미와 쾌감이 있겠다고 생각하며 출발했지만, 하다보니 그렇다고 독립영화나 영화학교 졸업 작품은 아니어서 그 안에서 조금은 잘했으면, 좀더 예뻤으면 싶었다.
-사실 그렇게 영화의 방향이 모호해질 때 제일 위험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데.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고 본다. 그저 이 영화의 태생적 운명대로 따라갔을 때 어떻게 되는지 결과를 한번 보자는 마음이었다.
-실제 촬영 진행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랐나.
=멈춰서 준비하지 말고 계속 조건에 적응하면서 찍어나가자는 원칙이었다. 내겐 꼼꼼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는 성격이 있는 반면 ‘퍼포먼스’를 즐기는 면도 있다. 주어진 한계 안에서 즉흥연주를 하는 동시에 피드백을 받고 최대치를 뽑아내는 데에 대단한 쾌감을 느낀다.
-아니, 그런 식의 작업을 경험한 적이 있긴 한가.
=대학에서 연극할 때 그랬고, 파티나 행사를 치를 경우 순간순간 적응한다. 하루 동안 700명의 작업을 조율한 <한 도시 이야기>도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몇초 안에 수많은 결정을 내리는, 그야말로 퍼포먼스였다. 그런데 <다세포 소녀>는 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니 즐거운 동시에 불안했다.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록되니까. 막상 저지르고 나니 편집이나 CG단계에서 수습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공을 많이 들였다.
-수습한다는 말을 들으니 <호모 비디오쿠스>를 공동연출한 변혁 감독님의 예전 인터뷰가 생각난다. 변혁 감독이 “나는 일을 저지르고 이재용 감독은 뒷수습하는 역할을 했다”고 표현했는데.
=예를 들어 칸영화제에 가면 변혁 감독은 팸플릿과 자료를 있는 대로 다 챙겨넣고 집에 돌아오면 그중 두세장만 건지고 다 버린다. 그러는 동안 나는 뭘 하냐면 옆에서 쫓아다니며 ‘결국 얘가 버리겠다’ 싶은 팸플릿을 연신 열심히 빼내서 없앤다. (웃음)
-학교 때 반에서도 <다세포 소녀> 같은 만화를 그려 보급한 친구들이 있었나.
=내가 그랬다. 음란한 쪽은 아니고 초등학교 때 패러디만화를 그려 아이들에게 팔았다. 지금 생각나는 작품으로는 <바보평강과 온달왕자>가 있다. (웃음) 평강을 사팔뜨기로 그린 기억이 난다. 불우이웃 돕기 한다고 팔아서 여자애들이 사줬는데 그중 누가 “오늘은 이재용이 만화를 그려 팔아서 몇장 샀다”고 일기를 쓰는 바람에 선생님한테 뺏기고 반성문 썼다. 그림을 잘 그렸다기보다 발상이 좋고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의도가 좋았던 것 같다. 나는 늘 모든 교과서에 낙서만 하고 사는 학생이었다. 중·고교 시절 토요일 수업은 이어폰 몰래 끼고 8시부터 12시까지 '아메리칸 톱 40’를 듣는 게 전부였다. 그러고보니 선생님 오기 전에 교단에 나가 야한 잡지를 경매한 친구가 있긴 했다. 지금은 행정고시 패스해 문화부에 있다.
-여러 캐릭터 중에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를 영화에서 크게 다룰 만큼 애착이 간 까닭이 있나.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중에 <가난한 아줌마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만화를 덮었을 때 제일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가난에 대한 기억이 있다는 점에서 감정이입이 쉽고 예쁜 캐릭터라 여러모로 여주인공에 손색이 없었다.
-<디지털 다세포소녀>가 15분 분량의 40부작으로 9명의 신인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원작 <다세포 소녀>를 보고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포맷이라 할 수 있다. 거꾸로 <다세포 소녀>를 만드는 입장에서 어떤 면에서 그럴 만하다고 스스로 납득했나. 이를테면 뮤지컬 시퀀스들이 장편영화라서 가능한 요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장편으로 전환하려면 원작의 에피소드를 엮어야 했는데 기존의 방식을 따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작품을 보고 즉각 떠올린 심상으로 채워보기로 했다. 흔히 보는 영화가 아닌 만큼 관객과 만날 만한 지점은 다양한 볼거리라고 생각해서 뜬금없이 괴물이나 춤과 노래가 나올 수도 있다고 여겼다. 센 에피소드에는 집착하지 않았다. 화장실 유머 영화로 이해되는 건 바라지 않는 바였다. 적당한 수위를 유지하는 대신 형식적으로 강렬하게 가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예컨대 춤을 추다 조명기에 걸려 넘어져도 “죄송합니다” 하고 도로 춤에 합류할 수 있는 영화를 상상하기까지 했다.
-완성된 영화에는 그렇게 매체의 환상을 깨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데.
=감독, 스탭, 배우, 관객까지 몇 박자가 맞아야 성공하는 문제인데 자신이 없었다. 또, 영화 자체가 상당한 규모의 상업영화가 됐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었다.
-원작과 다른 영화만의 설정을 이야기하자. 종교별로 학급을 나누었는데.
=본능적으로 집어넣은 부분이 많아 관객이 무엇을 읽어내느냐가 더 중요한 영화 같다. 따져보면 그 발상은 채플 참석을 거부하는 고등학생의 뉴스에서 따온 모티브가 있긴 했다.
-무쓸모 고등학교의 모든 과목 교사로 분한 이재용을 비롯해 배우들이 일인다역을 했다. 당신의 영화에는 늘 도플갱어가 있다. <정사>와 <순애보>의 우인(이정재)이 그랬고, 집 나간 우인의 누나는 <정사>의 서현(이미숙)과 겹쳐졌다. <순애보>의 다치바나 미사토와 김민희는 닮은꼴이고 쌍둥이도 단역으로 나온다. <스캔들…>은 모든 인물이 <위험한 관계>에 나오는 동시대 프랑스 귀족의 도플갱어로서 구상됐다.
=그렇다. 세상의 이면에 관심이 많고 보이는 현상만이 세계가 아니라는 점에 눈길이 간다. <순애보>에서는 <정사>의 이미숙과 송영창이 우인의 누나 부부로 나와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편집으로 사라진 분량도 있지만 <다세포 소녀>에서는 조폭으로 분한 배우가 교도소 간수로 재등장하고, 날라리 소녀가 순진녀로 다시 나온다. 어떤 인상을 가진 사람은 어떻다는 선입견은 거짓이라고 본다. <순애보>의 일본 청년 다케시는 아르바이트하는 게이요 대학생으로만 보이지만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하는 등 또 다른 두개의 삶을 갖고 있다. 나도 집에 가면 얌전한 아들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호들갑스러운 친구일 수 있고 멜로를 잘하는 감독일 것 같아도 일면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관념적인 방식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연애가 유예되거나 만남을 조작하는 경우도 많다. <정사>에서 사랑은 천천히 불붙고 <순애보>는 결말에 가서야 두 사람이 한 장소에 도달한다. <스캔들…>에서는 극중 조씨부인이 만남을 조작하고 진짜 연애는 매우 늦게 성사된다. <다세포 소녀>는 에피소드 나열 구조이다 보니 인물들의 관계를 조작한 ‘자국’이 보일 수밖에 없는 영화다.
=깊은 고민은 안 했다. (웃음) 거꾸로 괴물이 나오면 왜 안 되나, 둘이 사랑하다 잘못되면 왜 안 되나, 반문하면서 쓴 시나리오다.
-노래방 영상처럼 가사가 뜨는 뮤지컬 시퀀스와 이켠, 이용주의 캐스팅에서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를 상기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몇번 재미있게 보았지만 그 장면은 보지 못했다. 그런 스타일의 작품이 사랑받는 현상을 보고 영화로서 <다세포 소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게 된 면이 있다.
-문어체 대사를 쓰는가 하면, 인물들이 서로 ‘아무개 소녀’라고 지칭하는데.
=영화적으로 낯설게 만들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 그래서 배우들이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독백하고 환상을 실연하기도 한다. 나는 심각한 분위기가 조성되면 동화(同化)되는 것이 아니라 이화(異化)되는 타입이다. <스캔들…> DVD 코멘터리를 할 때도 화면 사이즈보다 크게 보여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시야를 넓히면 프레임 안 풍경은 우아하지만 위에서는 부채질하고 밑에서는 치마 떠받치고, 백조의 발장구다. (웃음) 주변에서 난색을 표해 실천은 못했지만 <다세포 소녀>는 영화 자체에 그런 의도가 있으므로 DVD에서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원작은 10대들이 순진하지 않다는 내용을 “다 알면서”식 태연자약한 매너로 보여준다. 교사와 학생의 구별도 의미가 없다. 반면 영화는 학생들을 모범생으로 만들려는 교장의 음모를 통해 학생과 교사의 대립구도를 세우고 아이들의 세계와 규범이 충돌하는 바깥세상을 전제했다.
=그러나 무조건 선악을 가르는 것은 재미없겠다고 생각했다. 교장 안에서 이무기가 나오지만 괴물이 권장하는 것은 선행이다. 아이들이 그를 물리치긴 해도 부작용으로 이무기가 승천하다. 엉망진창인 영화다. (웃음)
-오래전 인터뷰에서 존 워터스나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주류가 되면 흥미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세포 소녀>도 하나의 현상이긴 하지만 여전히 첨단이나 주류의 느낌은 아니다. 다양한 리그의 하나로 즐길 수 있으면 좋지만 이것이 주류가 되는 사회도 이상하다고 본다.
-반면 고전에 대한 동경도 강해 보인다. 10년 뒤에 봐도 촌스럽거나 예스럽지 않은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자주 피력했다.
=클래시컬한 작품에 대한 욕망과 극단까지 가보고 싶은 욕망이 함께 있다. 결과는 늘 중간쯤 되는 것을 만들지만. 그래서 매번 만족은 없다. 그러나 아닌 옷을 억지로 입기보다 자연스럽게 궁극에 닿길 원한다.
-공명정대하려는 강박관념이 강한 것 같다.
=홍상수 감독도 내가 과하게 밸런스가 맞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걸 내 장점으로 살리면 좋겠다. 영화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 나는 내 영화가 새롭고도 영원하길 바랐다. 그러나 어떤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막막했다. 1980년대를 막 빠져나온 그 무렵에는 “예술가라면 이래야 한다”는 관념이 많았다. 거기 반대하진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나는 은유나 지지는 할 수 있어도 선동하는 쪽은 못 된다는 걸 알았다. 예술가가 되기에는 삶에 그늘이 너무 없다는 자괴심도 있었다. 우리 집은 왜 이리 평범할까. 이혼한 사람 하나 없고 콩가루 집안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대단히 부유하지도 않고.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예술을 하면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선동자가 아니라면 은유하는 감독이 되면 그만이고, 질곡이 없다면 평범한 사람의 고뇌를 이야기해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자 평화로워졌다.
-<순애보>를 개봉할 무렵 “이 영화를 싫어하면 나란 사람도 싫어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다세포 소녀>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나.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순애보>는 나란 사람을 어느 정도 가까이하면 알 수 있는 부분을 담고 있지만 <다세포 소녀>는 굳이 내가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면을 담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