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탕>의 각설탕은 주인공 말 천둥이가 먹는 간식이다. 사람과 말이 나누는 따뜻한 정이 영화 제목인 것이다. ‘말에게 속삭임’(Horse Whispering)이란 말이 따로 있을 정도로 말은 인간과 친밀한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섬세한 동물이다. <각설탕>은 <호스 위스퍼러>가 그리는 말과 인간의 교감, 그리고 <씨비스킷>에서 보여준 말과 인간이 함께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감동을 함께 주는 영화다.
시은(임수정)은 제주도 푸른 목장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시은에게 말보다 더 친한 친구는 없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말 천둥이에 대한 시은의 사랑은 너무나 애틋하다. 시은 역시 엄마 없이 자란 터라, 천둥이는 친구 이상의 가족 같은 각별한 존재로 다가온다. 달리는 일이라면 아무한테도 지고 싶지 않은 시은은 최고의 기수가 되고 싶은 꿈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천둥이가 다른 곳으로 팔려가면서 둘의 운명은 끝이 난다.
낙마 사고로 아내를 잃고 딸 시은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아버지(박은수)는 시은이 씩씩하고 명랑하게 자라주는 게 한없이 고맙다. 그러나 기수가 되고 싶다는 시은의 꿈은 전혀 달갑지 않다. 사랑하는 가족을 또 사고로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시은은 그러나 좌절을 모르는 아이.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도 꿈을 접을 줄 모른다. 아버지는 그토록 사랑하는 딸이 힘겹게 꿈을 키워가는 모습에 기특함을 느끼며 아무도 몰래 딸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기수의 꿈을 키우던 시은은 2년 뒤 천둥과 기적적으로 만나고 시은과 천둥은 기수와 경주마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한다. 여기까지 보면 <각설탕>은 상처입은 기수 조니 레드 폴라드(토비 맥과이어)와 그 못지않게 상처입고 자란 말 씨비스킷의 운명적인 인연을 그린 <씨비스킷>과 흡사하다. 다른 게 있다면 조니와 씨비스킷이 서로 어른이 되어 만난 반면에, 시은과 천둥은 거의 처음부터 운명을 함께한다는 것. 시은과 천둥은 가장 지고지순한 행복의 추억을 함께 지니며 자랐기에 헤어질 때의 아픔도 유독 크게 다가오고, 운명적인 재회의 기쁨도 더 크게 다가온다. 시은은 움직임만으로도 말의 상태를 알아내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인 윤 조교사(유오성)를 만나면서 자신의 꿈을 이룰 기회를 얻는다.
<각설탕>은 청정하고 순수한 영화다. 영화의 무대인 제주도의 탁 트인 조망과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목장 장면은 시은과 천둥이 나누는 우정만큼이나 깨끗하고 시원하다. 한라산 해발 650m 북제주군 천아오름에 위치한 6만평의 한남목장은 한라산 백록담 넓이에 달하는 넓이만큼이나 탁 트인 장관을 선사한다. 제주시청 앞 왕복 8차선 도로를 봉쇄한 가운데 촬영한 천둥과 시은의 재회 장면도 놓칠 수 없는 명장면이다. 천둥이 2년 만에 시은을 알아보고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이다.
이런 뭉클한 말과 인간의 교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임수정은 어린 천둥 역을 맡은 망아지가 태어나는 순간에 밤을 새워 함께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망아지가 태어나자마자 우유를 먹여주고 ‘천만돌파’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후 천둥과 함께 7개월간 제주도, 과천 일대를 누비며 눈빛만으로도 천둥이의 컨디션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또, 머리는 과감하게 짧게 쳤고 촬영에 앞서 3개월간 기본 자세를 익히기 위해 승마부터 경주까지를 배웠다. 몽키 타법(등자를 짧게 밟고 엉덩이를 가볍게 안장에서 떼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자세로 말 타는 방법) 등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 여자 기수 이애리, 이신영, 이금주 기수에게서 수시로 지도를 받았다. 나중에는 기수와 말의 언어인 ‘부조’까지 소화를 해 자신을 가르치는 프로 기수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임수정은 “천둥이가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 마음놓고 천둥이를 안고 울 수 있었다.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주인공, 천둥
과천과 부산, 제주를 오가며 6개월간의 캐스팅 끝에 신체조건, 표정연기, 성격 등에서 가장 발군인 말이 1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혔다. 군동작 없는 초고속 경주마 서러브레드(Thorough-bred)종으로,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밤색 털과 이마의 흰색 다이아몬드 문양이 매력적인 명마다. 서러브레드는 완전한 순수 혈통의 경주마로 영국에서 경주용으로 개량된 품종이다. 서러브레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8대에 걸쳐 계속 서러브레드종끼리의 교배를 통해 생산됐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제작진은 경주장면부터 감정연기까지 다양한 컷을 준비해야 했기에 천둥이와 똑같이 생긴 4마리의 말을 더 마련했다. 천둥의 연기지도로 마필 관리감독이 따라붙었고, 경주장면에는 김효섭 기수가 레이싱 디렉터로 참여했다. 현장에는 수의사를 비롯해 말 전용 분장담당자까지 항시 대기해 천둥을 톱스타처럼 떠받들었다. 천둥은 2년6개월 된 말로 경주 경험은 없었다. 경주마 육성 전문가를 초빙해 수영과 워킹머신으로 심폐기능과 체력강화 훈련을 했고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적응훈련을 받으면서 오늘의 천둥이 되었다. CG 없이 표현한 섬세한 감정연기가 그의 장기.
놓칠 수 없는 경주 장면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고, 초점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달리는 말을 쫓아갈 수 있을까. 객석에서 볼 때는 말의 거친 호흡이 박진감있게 느껴지겠지만 실제 경주장면을 찍는 일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경주장면은 <각설탕>만의 각별한 매력이다. 기수 세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 시은의 동료 마천복(박길수)이 낙마하는 장면은 실제 경주마가 질주하는 가운데 진행돼 자칫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촬영이었다. 촬영팀은 말이 전력질주할 때 지미집이 몇 미터까지 올 수 있는지 고민하고 테스트 촬영을 하면서 카메라 적응훈련을 했다. 배를 만드는 선박업체에 제작을 의뢰해 촬영용 특수장비를 완성했는데, 이 트레일러에 지미집과 카메라를 탑재한 뒤 스탭이 말을 따라잡으며 촬영할 수 있게 했다. 트레일러 바닥엔 모래를 고루 깔아 무게중심을 잡았고 시속 60킬로미터로 달려도 흔들리지 않게 설계했다.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경주장면도 눈에 띄는데 22명의 실제 기수와 34필의 경주마가 출전하여 시은과 천둥이의 가슴 벅찬 질주장면을 도왔다. 35만평의 과천 경마공원에서 관중으로 참여한 엑스트라만 1만명, 실제 경마경기가 있던 날 촬영에 참여한 6만명의 관중이 외치는 함성소리도 시은과 천둥의 경주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