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광기에 대한 신비한 탐구, <아귀레, 신의 분노>
2006-08-10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EBS 8월12일(토) 밤 11시

<아귀레, 신의 분노>

베르너 헤어초크의 1972년작 <아귀레, 신의 분노>는 광적이다. 페루산맥을 내려오는 탐험대를 익스트림 롱숏으로 담은 영화의 도입부나 뗏목 위를 뛰어다니는 원숭이 떼들과 아귀레의 최후를 패닝 숏으로 마무리한 마지막. 거칠게 말해 미치지 않고서야 찍을 수 없는 장면들 아닌가. 이와 같은 헤어초크의 광기뿐만 아니라, 그의 페르소나인 클라우스 킨스키의 광기에 진저리가 날 정도다. 실제로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도중, 헤어초크와 클라우스 킨스키 사이에는 팽팽한 대립구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감독은 자신이 주연배우를 총으로 위협했다고 고백하고 배우는 촬영장에서 총을 가진 자는 자기뿐이었다고 주장한다. 분명한 건 둘의 대단한 인연이 <아귀레, 신의 분노>라는 이 이상한 영화의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이다(헤어초크는 이후에 클라우스 킨스키와의 관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나의 친애하는 적>을 완성한 바 있다).

영화는 1560년대를 배경으로 황금의 땅인 엘도라도를 찾아가는 스페인 원정대의 탐험기로 시작된다. 군사들은 원주민 노예들을 이끌고 거친 산맥을 넘고 험악한 날씨를 뚫고 뗏목에 몸을 싣는다. 그 과정에서 부대장 아귀레는 귀환을 명령하는 대장 우루수아를 처형하고 군사들과 노예들을 폭압적으로 지휘한다. 그의 눈빛은 날이 갈수록 광기로 번뜩인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화살에 일행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고, 뗏목 위에 살아남은 자들은 서서히 미쳐간다. 그럴수록 실체없는 엘도라도에 대한 아귀레의 집착은 커져만 간다. 결국 그는 뗏목 위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지만, 영화는 그 마지막 순간, 정지된 듯한 시공간 속에 그를 가두고 있는 듯하다.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과 실패한 영웅, 종교적인 음악과 극단적 상황에서 은밀히 암시되는 현실의 은유 등 이 영화는 단연, 헤어초크만의 색채를 지닌다. 뉴저먼 시네마의 일부 감독들이 정치적 주제에 몰두할 때, 그는 좀더 낯설고 불가사의한 것을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파멸에 대한 낭만과 알 수 없는 신비한 본질에 대한 갈구로 채워진다.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도 아귀레의 파괴적 욕망을 다루는 헤어초크의 시선은 명확하지 않다. 그것은 결국 자기 파멸하고 마는 제국주의자의 망상에 대한 비판인가, 아니면 이 원초적인 자연은 ‘인간’ 아귀레의 광기 혹은 비극을 낭만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배경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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