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군 투덜양]
투덜양, <돈많은 친구들>의 패션과 우정을 즐기는 아론을 발견하다
2006-08-18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당신을 21세기형 투사로 임명하오

<돈많은 친구들>은 좀 이상한 영화다. 이 영화의 캐릭터에는 관객이 기대하는 ‘정의’가 없다. 돈없고 애인없는 올리비아라면 성격이 아주 좋거나 독특한 삶의 기준 같은 게 있어야 할 텐데 대체 머리가 뭐가 들었나 싶을 정도로 한심한 그녀다. 반면 200만달러를 선뜻 기부하는 프래니라면 남편이 바람이라도 나야 정의사회구현이 될 텐데 그녀는 성생활조차 네 친구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 사는 데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게 단지 영화라면 욕이나 한마디하고 끝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더하니 씁쓸해질 뿐이다.

더 이상한 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네명의 여자들이 아니라 그중 한명의 남편이라는 데 있다. 영화의 주인공(히어로)이란 주변 인물들의 편견이나 상식을 가장한 관습의 폭력과 싸우며 세상을 정직하게 보는 유일한 드라마 속 인물이라는 사전적 기준에서 본다면 말이다. 바로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제인의 남편 아론이다. 아론은 영화의 드러나지 않는 희생양이다. 크리스틴과 프래니는 친구들 모임이 끝나면 어김없이 남편에게 “아론이 게이임에 틀림없다”고 소곤거린다. ‘그래서 뭐?’가 아니다. 게이라서 비정상이며 재수없게도 비정상과 함께 사는 제인은 얼마나 불행한가, 라는 게 이 짧은 문장의 진짜 의미다.

아론이 게이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옷차림에 심혈을 기울이고 히스테릭한 아내에게조차 상냥한 태도는 그에게 게이 혐의를 지운다. 그는 취향이 비슷한 남자를 만나 ‘사귄다’. 함께 수다를 떨고 음식을 해먹으며 가끔은 아내들을 동반해 이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친구였기 때문에 그냥 친구일 뿐 감정적 교감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네 여자에 비해 두 남자의 우정은 살갑고 따뜻하다.

또 올리비아를 바라보는 세 친구와 두 친구 남편의 시선이 “불쌍하고 한심한 년”에 갇혀 있는 데 반해 아론은 그렇지 않다. 자리 하나당 1천달러짜리 자선파티에서 나눠주는 고급 목욕용품을 다른 사람들은 적선하듯이 올리비아에게 주지만 아론은 자기 걸 챙긴다. 그가 원하는 건 1천달러짜리 자리가 주는 품위와 허세가 아니라 향기좋은 비누인 것이다. 또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정확히 본다. 불쌍하고 한심한 올리비아가 데려온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는 볼 것도 없이 똑같은 거지꼴일 것이라고 다른 친구들은 쉽게 단정하지만 아론은 그가 입은 옷의 고급 촉감을 알아차리고 진지하게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많은 돈을 자랑하며 살기는 쉽다(음, 물론 그 역시 어렵다 --;;). 하지만 사회적 통념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즐기며 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철망보다 튼튼한 사회적 통념을 뚫고 자기가 원하는 패션과 우정을 즐기는 아론은 21세기형 투사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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