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를 만난 지 일주일이 됐다. 우리는 매일 밤새도록 섹스를 했다. 오늘 저녁에는 폭풍우가 내릴 거라고 한다.’ <베티 블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벌써 20년이 지났다. 장 자크 베넥스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걸작은 아니지만 영화사의 한 이정표를 세웠다. 주홍색 원피스, 노란 메르세데스, 지중해의 푸른 하늘과 같은 단색의 색조는 고다르 감독에게서 따왔고 MTV의 초기 분위기를 잘 새겨 놓았다. 독습자가 쓴 소설에 기초해, 두 이름없는 배우를 기용한 <베티 블루>는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며 완벽하게 당대를 잘 표현한 영화로 한획을 그었다.
1981년, 사회당의 미테랑이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렇지만 곧 꿈과 열정은 시들어버렸다. 사람들은 1980년대가 혁명의 시대가 되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오늘날까지도 그 때를 ‘돈이 재배한 시대’라 지칭한다. 미테랑 세대는 참여적인 영화의 탄생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환멸의 시(詩)를 만들어냈다. 그 흐름의 선두는 레오스 카락스, 뤽 베송 그리고 장 자크 베넥스 감독으로, 이 셋을 사람들은 ‘BBC’라고 지칭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작품은 결정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형상을 주변부 몽상가들의 득 속으로 녹여버리게 되는데, <베티 블루>의 연인인 조르그와 베티는 그 상징이기도 하다. 정치에 실망하고, 세계를 변화시키기를 포기한 주인공들은 도피와 사랑이라는 단 두 가지를 갈망할 뿐이다. 이런 영화들은 과도한 경쟁을 반복하게 된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드니 라방이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에 맞춰 춤추며 다양한 색깔의 울타리 앞을 뛰어다니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나쁜 피>다. 또 다른 세계 속으로 도주하거나 몸을 숨기는 것- 주인공들은 <베티 블루>의 사막 같은 메마른 시골 풍경, 판잣집이 즐비한 마을이나, 뤽 베송 감독의 <지하철>의 지하철 통로와 <그랑 블루>의 해저와 같은 곳에 나온다.
오늘날 ‘BBC’를, 그리고 <베티 블루>의 기념 DVD를 다시 보면, 그로부터 몇년 뒤 떠오르게 된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에 끼친 영향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는 <베티 블루>를 가물가물하게 떠올리는 게이판 리메이크라 할 수 있다. 김기덕 감독에게선 한층 더 뚜렷한 연관관계가 보인다. <악어>는 전적으로 <퐁네프의 연인>의 계열에 속하고, <파란 대문>의 해변가는 넓은 의미에서 <베티 블루>에서 차용한 것이다. <수취인불명>에서는 <퐁네프의 연인>과 <베티 블루>에서 보았던 눈을 다친 형상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베아트리스 달의 화산 같은 연기는 세계적인 영향을 끼쳤고,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의 브리지트 바르도 이래 볼 수 없었던 현상을 낳았다. 불타는 듯이 붉고 육감적인 입술, 오른쪽 어깨에 새긴 박쥐 문신, 깎지 않은 겨드랑이털 등… 그녀의 모든 것은 사람들이 흔히 ‘젊은 데뷔 여배우’에게서 기대하는 것에 대한 전적인 무관심을 나타냈다. 그녀는 욕망의 낯선 대상이었고, 데오데란트도 안 쓰고, 껌을 씹어대는 여배우였다. 이 역할은 전세계의 여배우들을 꿈꾸게 만들었고, 배우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게 했다. 1998년, 심은하는 <씨네21>에서 <베티 블루>의 베아트리스 달과 같은 역할을 기다린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베티와 견주어보면, 브리지트 존스나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우리 시대의 사이비 반항아들은 참한 아가씨들일 뿐이다! 베넥스 감독의 영화, 그 강렬한 푸른색의 점감하는 색조는 바랬지만, 베티는 영원히 청춘으로 남았고, 조르그가 해넘이의 금갈색 노을 속에서 그녀를 껴안고서 “생일 축하해, 내 사랑, 너의 스무살을 위하여!”라고 외친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