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수박 서리와 함께한 어느 여름 날, <여름이야기> 촬영현장
2006-08-16
글 : 이영진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스탭들이 밀짚모자와 수건부터 나눠준다. 미처 모자를 준비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인데다 가만 서 있어도 끓어오르는 날씨라 취재진 모두들 사양하지 않고 넙죽 받아든다. 머리에 쓰고, 목에 두르니, 농활 패션 일색이다. <여름이야기> 촬영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경북 예천군 예천읍 용문면 선동. 대형버스는 들어가지 못하는 외진 곳이다.

미니버스로 갈아탄 뒤 도착한 촬영장엔, 그러나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있다. ‘뵨사마’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120여명의 일본 팬들이다. 박명순 제작실장은 “병헌씨가 머무는 호텔에 문의전화가 빗발친다. 생일 때는 촬영이 없는데도 새벽 1시까지 진을 치고 있더라”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취재진을 맞는다. ‘컷’ 하는 소리와 함께 잠깐 모니터를 둘러보던 이병헌이 멀리서 응원을 보내던 일본 팬들에게 다가서자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평일에도 예고없이 찾아오는 일본 팬들이 평균 20명이 넘는다. 때론 더운 날씨에 안쓰럽다며 점심을 같이 먹기도 한다지만, 오늘은 너무 많아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대신한다.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일본 SPO사가 400만달러에 사들인 <여름이야기>는 <품행제로>로 데뷔한 조근식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름”을 찾아가는 여정을 따르는 영화다. 이병헌이 맡은 윤석영은 대학 시절 수내리라는 마을에 농활을 갔다가 서정인(수애)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인물.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서 시대가 강요한 고통 또한 함께 배어나온다. <품행제로>에서 80년대 악동들의 치기와 순진을 고스란히 재현했던 조근식 감독은 <여름이야기>에서도 과거로 회귀했다. “이번에도 주된 시간적 배경이 1969년인데, 자꾸 왜 끌리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영화 속 인물들은 영웅도 악당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평범한 인물들을 통해 그 시대가 자연스럽게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날 촬영은 석영과 정인이 수박 서리를 하다 소나기가 내리자 처마 밑으로 뛰어가 비를 피하는 장면. 앵글에 걸린다며 후퇴를 명한 탓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도통 알 수 없어 답답해하는데, 제작사인 KM컬쳐의 방추성 이사가 힌트를 준다. “<품행제로> 때보다는 한결 여유롭죠.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건 배우들에게 자유로운 애드리브를 허용한다는 건데, 지금도 그 분위기를 만드느라 정신없는 것 같아요.” 장마 때문에 촬영일정이 다소 밀린 <여름이야기>는 8월 말 촬영을 끝내고 11월에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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