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8월20일(일) 오후 1시50분
<시티 라이트>의 채플린은 제목 그대로 ‘시티 라이트’다. 그가 있으므로 가난하고 외로운 도시에서는 빛이 난다. 자신은 더없이 초라하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누구라도 빛난다. 떠돌이 채플린은 맞고 넘어지고 오해받고 웃음거리가 되면서 그렇게 타자를 구하고 빛낸다. 그래서 이 단순한 이야기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마음의 풍요라는 말이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며 그런 종류의 울림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이 영화는 채플린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보석 같은 작품이다. 채플린이 전하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그의 연기, 유리처럼 투명한 몇몇 장면들은 진정 반짝거린다.
가난한 떠돌이(채플린)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도시를 거닐다 거리에서 꽃을 파는 아리따운 소녀와 맞닥뜨린다. 그러나 소녀는 앞을 보지 못한다. 떠돌이는 동전을 털어 꽃을 산다. 떠돌이의 행색을 보지 못하는 소녀는 그를 부자로 착각한다. 떠돌이는 우연한 기회에 진짜 부자의 목숨을 구해주고 그와 친구가 된다. 하지만 부자는 술에 취했을 때만 떠돌이를 알아본다. 부자의 돈으로 소녀의 꽃을 사주던 떠돌이는 부자가 술에 취했을 때 얻어낸 돈으로 소녀의 수술비를 마련한다. 소녀는 수술을 받고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떠돌이는 여전히 떠돌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진 둘의 만남. 이 영화의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 대해 사람들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떠돌이를 알아본 소녀의 주저하는 눈빛과 왠지 이를 알아차린 듯한 떠돌이의 우는 미소는 차라리 비극적이다. 물론 소녀와 떠돌이의 표정을 각각 잡은 마지막 클로즈업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피엔딩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떠돌이의 가난한 로맨스가 그저 달콤함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의 사회비판적인 시선 때문이다. 술에 취한 백만장자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소녀를 도와주는 떠돌이의 모습은 조금 과장되게 말해, 의적 로빈후드를 연상시킨다.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해 링 위에 올라 몸을 던져야 하는 빈자와 날마다 술에 취해 파티를 벌이는 부자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교차시킨다. 게다가 가난을 벗어난 소녀가 여전히 가난한 자신의 구원자를 받아들일지에에 대한 물음도 던진다. 그럼에도 채플린은 삶을 끝장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남긴다. “내일도 새들이 지저귈 텐데요. 용기를 내세요.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