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제천영화제의 다른 이름 ‘음악감독 축제’
2006-08-17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8월9~14일)에 다녀왔다. 주말에 잠깐 들른 것이지만, 올해 행사에선 지난해 1회 때에 받지 못했던 새로운 인상을 하나 얻었다. 이 영화제는 ‘아시아 최초의 음악영화제’, ‘국내 최초의 휴양영화제’를 표방하고 있다. 새롭게 받은 인상은 전자와 관련된 것으로, ‘이 영화제가 처음으로 국내 영화음악 종사자들이 이끌어가는(이끌어가도록 할 수 있는) 행사구나’라는 일종의 발견이었다.

‘휴양 영화제’로서 이 영화제가 갖는 장점과 가능성은 변함없이 컸다. 덥디 더운 한 여름의 영화제가, 영화만 줄창 보라고 한다면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잠시 짬을 내, 드넓은 청풍호를 옆에 낀 채 호반도로를 달리고, 정방사에 올라가 호수와 산들이 그림처럼 어울린 풍경도 보고, 내려오는 길에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 나물밥, 더덕 구이에 동동주 한잔 하고 ….(^^) 몇가지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영화제 상영관이 있는 제천시와, 개·폐막식 등 각종 행사가 열리는 청풍호반이 많이 떨어져 있어 영화제의 활력이 제천시까지 전해지는 데에 장애가 된다. 자칫 제천 시민들이 볼 때 ‘너희들의 축제’로 비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올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이 영화제의 존폐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여하튼 영화제는 남게 돼 2회 행사를 열었고, 관객 수가 지난해 5만명에서 8만명으로, 좌석 점유율이 81%에서 85%로 눈에 띄는 성장을 보였다. 휴양 영화제로서의 장래를 낙관하게 하는 요인이다.

거기 더해 새로웠던 건, 지난 토요일(12일) 밤에 열린 ‘핫 서머 나잇 파티’의 풍경이었다. 이 행사는 파티라기보다 이 영화제가 앞으로 나갈 방향과 성격을 짐작케 하는 세레모니에 가까왔다. 올해 새로 집행위원장을 맡은, 〈정사〉 〈봄날은 간다〉 등의 조성우 음악 감독은,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의 이동준, 〈접속〉 〈올드 보이〉의 조영욱, 〈기막힌 사내들〉 〈범죄의 재구성〉의 한재권, 〈싱글즈〉 〈말죽거리 잔혹사〉의 김준석 등 내로라하는 음악감독들을 불러모았다. 올해 새로 시작한 ‘제천 영화음악 아카데미’와 관련해서였지만, 거기엔 90년대 이후 한국 영화음악사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영화음악 감독들의 이런 모임은 좀처럼 보기 드문 것으로, 아닌 게 아니라 박광수, 박찬욱, 임상수, 박기용, 정지우, 김태용 등등의 감독이 제천까지 내려와 이 행사에 참가했다. 모처럼 제천에서 쉬고 가자는 의도 못지 않게, 함께 작업했거나 작업할 음악 감독들에게 눈도장 찍자는 의도도 있는 듯했다. 이게 미워 보일 이유란 없다. 한국 영화 부흥에 영화 음악이 적지 않은 기여를 했지만, 감독이나 배우에 비해 음악 감독에겐 조명이 덜 간 것도 사실이다. 이들 전문가가 모여서 음악영화제를 이끈다면, 그 영화제가 여러모로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행사 뒤 술자리에서 조성우, 조영욱, 이동준 등이 “내년엔 이 영화제에 엔니오 모리코네를 초청하자” “그럴 돈이 있겠냐” “돈이 많이 들까” 등등의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흐뭇만 광경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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