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이야기>(1993), <눈먼 자들의 도시>(2008) 등의 각본을 쓰고 15편의 영화와 TV시리즈를 연출한 돈 매켈러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 <동조자>의 쇼러너로 활약했다. <리틀 드러머 걸> 제작 당시 혼자 모든 작업을 도맡았던 박찬욱 감독이 이번엔 힘든 길을 사서 가지 않고 10여년 전 무산된 한 프로젝트에서 공동 작업한 바 있는 매켈러에게 직접 공동 쇼러너로 함께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두 쇼러너는 “자연스럽고 또 공평한 역할 분담”을 통해 “작품 속 캡틴의 두 얼굴처럼 <동조자>의 두 얼굴로서 상보적인 소임을 다했”다. 2024년에 새삼스러운 지적이지만 <동조자>의 베트남인들은 전부 베트남어로 대화한다. 매켈러는 이 결정이 “나치들이 영국식 영어로 말하고, 선한 프로타고니스트가 미국식 영어로 말하는 할리우드의 관행”이 우스운 시대에 당연했다고 말한다. “스트리밍서비스가 전 세계로 확대되며 자막 읽기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동조자>의 주요 언어 선택에 불씨를 댕겼다. “심지어 전세계 시청자들은 자국의 언어도 이해하지 못해 자막 서비스를 이용한다. <HBO>가 ‘이건 베트남어야’라고 말하며 우리의 판단을 철회할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동조자>의 주인공 캡틴(호아 쉬안더)은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남베트남 장군의 휘하에 있지만 실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북베트남 출신 스파이다. <동조자>의 원작 소설은 신뢰할 수 없는 1인칭 서술자 캡틴이 의식의 흐름대로 풀어놓는 도덕적, 이념적 모호성을 탐구하는 재미와 그 과정에서 캡틴이 처한 자가당착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돈 매켈러는 “TV시리즈로의 각색을 핑계로 원작의 깊이를 단순화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고상한 목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유명한 소설을 각색할 때는 언제나 원작의 수준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시나리오 각색의 대원칙이다. 그래서 매켈러는 “소설만큼 이야기를 예상할 수 없게 만들어 시청자를 긴장하게 만들”고 또 “소설만큼 명석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고군분투했다. 캡틴을 포함한 <동조자> 속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이중성의 딜레마에 놓여 있다. 매켈러는 <동조자>가 어느 한 진영의 주장에 힘을 싣는 이야기가 아님을 역설했다. “끝내 내전까지 벌어졌지만 지금껏 이념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동조자>의 메시지다. 이 모순은 해결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명제를 인지하고 있다면, 그리고 분열은 또 다른 분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진리을 깨닫는다면 지금보다 발전된 논의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캡틴의 삶에 절대적이었던 4명의 백인 캐릭터(CIA 요원, 동양학 교수, 국회의원, 영화감독)를 연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할리우드 백인 톱스타의 1인4역은 “‘모든 비백인은 다 비슷하게 생겼어’라는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위트 있는 미러링”이기도 하지만 <동조자>가 전하려는 진영 논리의 다면성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캡틴의 여정은 좌파적 길을 걷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분한 네 캐릭터는 모두 우파적 가치를 표방한다. 하지만 둘은 일말의 유사성을 공유하고 심지어 각자가 나아가는 여정에 서로의 존재가 일부 의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