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노동자, 하층민과 정치문제를 주로 다루던 켄 로치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사이에 외국으로 눈을 돌린 작품을 몇편 발표했다. 그중 ‘아메리카 여성 연작’인 <칼라송>(1996)과 <빵과 장미>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꿈꾸며 선진국 땅에 도착한 두 여성의 모습을 빌려 아메리카 대륙의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다. <칼라송>이 미국과 남미 정치관계의 실상을 우회해 보여줬다면, <빵과 장미>는 미국 노동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보고서다. <빵과 장미>에는 불법 이주자로서 LA의 거대 빌딩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멕시코 여성이 백인 직업 노동운동가와 만난 뒤 불합리한 현실에 눈뜨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꾀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빵과 장미’라는 제목은 20세기 초반, 빵과 함께 장미를 요구했던 여성 이주 노동자들의 구호(사진)에서 따왔는데, 영화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저임금, 노동 착취, 폭력과 협박, 해고의 위기와 공포 속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삶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요소 외에 삶을 아름답게 해줄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둘러대지 않고 이야기한다. 때때로 감독이 아닌 영화 속 인물의 위치로 들어가곤 하는 로치는 자칫 영화를 희생해서라도 그들의 삶을 구하겠다고 할 판이다. 종종 드러나는 직설적인 화법과 지나친 낙관이 영화의 단점이 될지는 몰라도 <빵과 장미>가 결국엔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지지를 받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DVD의 소박한 외양은 영화와 닮았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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