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진구, 아버지 미워했던 마음도 <아이스케키>로 녹였어요
2006-08-22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영화 촬영기사 아버지 도움 없이 <올인> 이후 4년의 침체기 이겨내

<아이스케키> 주연 맡은 진구

24일 개봉하는 〈아이스케키〉(여인광 감독, 엠케이픽처스 제작)는 아빠 없이 자란 열살 시골 소년이 서울 산다는 아빠를 만나러 가기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에 나서면서 보는 세상을 그린 영화다. 커다란 ‘께끼통’을 맨 소년의 마른 어깨와 억척스럽게 밀수 화장품을 파는 엄마, 가난하지만 순박한 이웃들, 꼬질꼬질하면서도 착한 아이들이 직조해내는 60년대 말의 풍경이 많이 본 듯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힌다.

영화에서 께끼통을 든 영래(박지빈)를 안타깝게 쳐다보는 사람은 둘이다. 아빠의 부재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해줄 수 없는 엄마(신애라)가 한 사람이라면, 어린 영래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자신을 들여다보는 아이스케키 공장 직원 인백(진구)이 또 한 사람이다. “빨갱이 자식”이라는 족쇄만 남긴 채 떠나버린 아버지 때문에 위험한 밀수 심부름까지 맡아야 하는 과묵한 인백이 가슴에 품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은 단팥빵처럼 포근한 이 영화에 아릿한 고통을 심어넣는다.

인백이 영래에게서 자신을 봤듯이 배우 진구(26)도 인백에게서 자신을 봤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오랫동안 떨어져 살면서 아버지를 미워했어요. 또 시나리오를 보며 엄마가 홀로 아이 키우면서 겪는 심리적 고충이 찡하게 다가왔죠. 그래서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도 내가 나오는 장면보다 신애라씨가 지빈이를 때리거나 쓰다듬는 장면을 보면서 그렇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비열한 거리〉에서 조폭 중간보스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가 ‘의외의’ 차기작을 골랐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들에게 그는 ‘의외로’ 정답 같은 대답을 들려준다.

〈비열한 거리〉의 종수와 이 영화의 인백은 180도 다른 인물이지만 말이 없고 책임감 강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여운을 남긴다. “아직 연기 폭이 좁기 때문에 배역이 크든 작든 내가 그 안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겠다는 감이 오는 역을 선택하게 된다”는 게 진구의 부연설명이다. “살아본 적은 없지만 60년대 배경은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지금도 영화의 무대인 전남 여수에 가면 비슷한 말투를 쓰는 사람들이 있고, 또 어디에나 여전히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냥 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다가갔죠.”

영화 촬영기사였던 아버지(진영호) 덕에 어린 시절 남들이 못 가는 시사회에도 가보고 영화를 접할 일이 많았던 그는 10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 “아버지 영향이 분명 있었죠. 그렇지만 아버지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그 판에서 절대 못 버틴다고 반대를 심하게 하셨어요. 〈올 인〉의 이병헌 선배 어린 시절로 데뷔는 수월하게 했지만 그 다음부터 4년 동안 정말이지 바닥이 안 보이는 오디션 탈락의 연속이었는데 아버지 도움 없이 버틴 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진구는 또래 배우들과 달리 “선 굵은 연기가 편하고, 밝거나 가벼운 캐릭터는 아직 어색하다”며 “선 굵은 연기에서 가볍고 귀여운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이병헌 선배가 가장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그래서 막 촬영을 마친 〈사랑 따윈 필요없어〉에서 주인공 김주혁과 어울리는 철없는 호스트바 접대부 역은 그에게 새로운 모험이다. “남들은 뭐라고 해도 나 스스로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아직 있는데 이런 걸 없애가면서 연기 폭을 넓혀가고 싶어요. 언젠가 배우 진구를 규정하는 하나의 문장이 ‘어떤 역할에도 어울리는 배우다’가 된다면 배우로 성공했다고 나 스스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 강창광 <한겨레> 기자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