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스케키>의 신애라
2006-08-23
글 : 장미
사진 : 오계옥
인생 다시 살아보라고 하면 30대를 선택할 거다

“참 고운 여자”라는 말이 저절로 입속을 맴돌았다. 소파에 몸을 기댄 까무잡잡한 피부의 신애라는 드라마 속 친숙한 이미지와 무척 다른 모습이었다. 차인표의 아내. 여덟살난 아들 정민이와 지난해 12월 입양한 딸 예은이의 엄마. 사실 많은 기사들이 그녀의 매력이나 연기력보다 아내 그리고 엄마라는 꼬리표를 더 부각하곤 했다. 1989년 MBC 특채 탤런트로 데뷔, 2005년 3월 드라마 <불량주부>에서 남편 대신 돈벌이에 나선 ‘최미나’로 출연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신애라. 사실 17여편의 드라마를 거친 그녀의 경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 그녀가 아빠없이 자란 소년의 유년을 그린 여인광 감독의 데뷔작 <아이스케키>로 처음 영화에 도전했다. 충무로에 첫걸음을 디딘 여배우의 자의식은 얼마나 충만할까. 17년차 배우의 공고한 직업관을 캐내겠다는 각오로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그것이 오산임을 곧 깨달았다. 연기 역시 삶의 일부임을 일러주던 그녀의 똑 부러지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데뷔한지 17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가끔씩 지난 일들을 되새기기도 하는지.
=벌써 17년이나 지났나 싶어 놀라기도 하지만 추억에 사로잡힐 일은 별로 없었다. 지금까지 엄청 많은 수의 작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년에 2~3편도 안 했던 것 같은데. 모두 합쳐 17편 정도 했나 모르겠다.

-영화 출연은 <아이스케키>가 처음이다. 개봉을 앞둔 소감이 어떤가.
=좋은 영화, 따뜻한 영화에 출연해 기분이 좋다. 아이들이 연기를 잘해 대본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짠하더라.

-그전에도 영화 제의를 많이 받았나.
=그런 제안이 한창 들어왔을 때는 결혼하기 전이었고 지금처럼 영화가 활성화된 시기가 아니었다. 당시 영화하면 드라마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앞선 듯 해 내 일처럼 느껴지지도 않았고. 영화가 발전했던 그 다음 시기에는 워낙 좋은 배우들이 많아서 나한테까지 기회가 안 왔던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껴 <아이스케키>의 출연을 결심하게 됐나.
=무엇보다 가족영화라는 데 끌렸다.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같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별로 없다. 앞으로 MK픽처스에서 <아이스케키> 같은 영화를 계속 만들 거라고 하던데 그런 의도도 좋았다.

-자신의 연기를 스크린을 통해 보니 느낌이 어땠나.
=드라마는 TV로 방영되니까 화면 크기가 한정돼 있는데 스크린은 화면이 너무 커서 굉장히 생소했다. 사투리 연기나 시대극 역시 이번에 처음 해봤다.

-<아이스케키>의 배경이 전라도 여수라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해야 했다.
=사투리로 글을 쓰고 그걸 직접 구연하는 전라도 사투리 구연대회라는 게 있더라. 사투리를 워낙 모르던 터라 거기서 우승한 작품들만 모아놓은 교본을 읽으면서 배웠다. 완전 토종 사투리여서 번역이 필요할 정도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러다보니 전라도 사투리의 맛이 좀 살아난 것 같다.

-이번에 맡은 영래 엄마는 어떤 캐릭터인가.
=59년에 애를 낳은 싱글맘 유부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옛날에 혼자 애를 낳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러니까 항상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는데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거칠고 드세진 여자다. 과하고 격하지만 그만큼 아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엄마. 희생하는 엄마. 그런 캐릭터로 잡고 연기했다.

-2004년 6년간 투병생활을 한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그런 뉴스를 접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아이스케키>에서 어머니 역할로 나온 것을 보니까 가슴 찡한 게 있더라.
=내가 69년에 태어났으니까 <아이스케키>의 배경인 60년대 말이면 엄마가 한창이었을 때다. 촬영장이나 세트 같은 델 가면 엄마가 젊은 시절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보내셨겠구나, 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서울 분이신데다 학교 선생님이셔서 상황은 좀 달랐겠지만.

-<아이스케키>와 <한반도>의 개봉 시기가 비슷하다. 남편인 차인표가 <한반도>에 출연했는데 그것 때문에 고민하진 않았나.
=오히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무슨 뜻인가.
=물론, 개봉 시기라는 건 중요하다. 영화(의 흥행 성적)에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지만 요즘은 좋은 작품이라면 많이들 보시니까. 올 여름엔 영화 딱 한편만 골라봐야지, 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크게 염두에 안 뒀다.

-차인표도 <아이스케키>를 봤을 듯 한데…. 영화나 연기에 대해 뭐라고 평하던가.
=좋은 영화라 그러더라. <아이스케키>의 시나리오도 인표 씨가 딱 좋아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요즘 안 좋은 얘긴 인터넷을 통해 너무 쉽게 들을 수 있고 그래서 집안에선 서로에 대해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얘길 잘 안하는 편이다. 오히려 잘했다고 북돋워주려고 한다. <한반도> 보고도 좋았다고 말해줬다.

-영래 역을 맡은 박지빈이 워낙 연기를 잘해 아역처럼 안 느껴졌을 것 같다.
=아이들이랑 호흡을 맞추다보면 신경써주고 챙겨줘야 할 부분이 많은데 지빈이는 알아서 잘해 편했다.

-엄마가 영화 속에서 다른 아이의 엄마로 나오는 것을 아들 정민이가 싫어하진 않았나.
=정민이가 지빈이 형, 지빈이 형 하면서 지빈이 얘길 많이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내가 또 나가려고 하니 “엄마는 지빈이 형이랑만 하루 종일 있어?” 그러더라.

-지난 12월 여자아이를 입양했고 이름을 예은이라고 지었다고 들었다. 지금 생후 몇 개월인가.
=8개월 넘어 9개월째 정도.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먹는 걸 좋아하고 통통해서 프랑크소시지같이 귀엽다. (웃음)

-아무래도 여자애라 키우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예은이는 주위 사람들이 서운해할 정도로 딱 엄마만 좋아했다. 그런데 내 발자국 소리만 나도 기겁을 하고 쫓아오던 애가 이틀 전부터는 나를 무시하는 거다. 예은아, 하고 부르면 날 한번 보고 나서 고개를 슥 돌려버리는 식으로. 아무도 안 믿을 거야. 8개월짜리가 삐친다니. (웃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희한하다.

-개인적으로 신애라, 하면 가정적인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진 않았나.
=나는 지금이 좋다. 물론 언제 봐도 좋고 아무리 스캔들이 터져도 용서가 되는, 그런 배우나 가수들도 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선 직업이나 연기보다 가족이 더 우위에 있고 그것에 만족한다.

-2005년 상반기 드라마 <불량주부>에서 최미나로 출연해 굉장한 인기를 누렸다.
=오랜만에 드라마를 했는데 운좋게 인기있는 작품을 하게 돼 감사할 따름이다. 시놉시스부터 워낙 재미있었고 더 재밌는 요소들이 많았는데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발랄한 한편 전투적이기도 한 최미나라는 캐릭터와는 공통점이 많을 것 같다.
=글쎄 뭐, 그런 부분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반반이다.

-<불량주부> 이후 1년가량 지나 <아이스케키>를 들고 돌아왔다. 다음 작품으로 무얼 할까 고심하고 있었던 건가.
=젊을 땐 나이 들면 할 역할이 없겠다 싶었는데 우리나라도 많이 바뀌어서 30대가 할 역할이 맡아졌다. 들어오는 건 계속 있었지만 딱히 내 역할이다 할 만한 건 없어서 쉬고 있었다.

-지금까지 출연한 드라마 중 특히 기억나는 몇 작품을 꼽아달라.
=먼저 <사랑이 뭐길래>. 같이 하던 선배들이 평생 이런 작품 만나기 쉽지 않다고 하셨는데 그땐 이해를 못했다. 지금은 인기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사랑이 뭐길래> 같은 작품은 참 쉽지 않겠다, 대작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스케일이 크고 투자를 많이 해서 대작이 아니라 김수현 작가도 그렇고, 촬영장 분위기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참 좋은 작품이었다. 그 다음으론 <사랑을 그대 품안에>. 아무래도 남편을 만나게 됐으니까.

-이걸 하면 잘할 것 같고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싶은 역할이 있나.
=완전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 막 욕도 하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지닌 캐릭터. (웃음)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연기란 무엇이다, 짧게 정의한다면.
=연기란 인생인 것 같다. 빨리빨리 지나가니까. 붙잡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연기다.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69년생이다. 혹시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자괴감을 느껴본 적은 없나.
=어른들이 30대 여자가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더라. 서른살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나는 서른다섯살까지 애 키우는 아줌마였다. 하지만 서른다섯살 이후부터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운동도 하고 나 자신을 돌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40살에 가까워지려니 30대가 아름답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다. 젊은 친구들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나에게 인생 다시 살아보라고 하면 30대를 선택할 거다.

-조금 의외의 대답이다.
=30대가 되면 인생이 뭔지 조금 알게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노하우가 좀 생긴다. 노력에 따라서 외모도 아주 아름다워지는 나이고. 40대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땐 40대로 돌아가고 싶어요,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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