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목표는 영화였다.” <예의없는 것들>의 윤지혜는 말했다.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눈매, 오똑한 콧날은 차갑고 이국적인 느낌. 말투나 태도는 아주 털털하다. 고등학교 때 <어린 왕자>로 처음 무대에 오르고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영화를 향했다. 윤지혜는 “영화연기를 배울 곳이 따로 없고, 연기를 제대로 배우는 공간은 무대라 생각해서 연극과에 갔다”고 한다. <델리카트슨 사람들> <성스러운 피>에 열광했던 대학생 윤지혜가 <여고괴담>에 탑승한 과정은 흥미롭다. <여고괴담>의 박기형 감독과 오기민 PD는 “오디션 없이 사진 한장만으로 윤지혜의 출연을 결정”한다. 본인도 “이미지로만 캐스팅됐다. 갑자기 불려간 탓에 연기력이 있을 리 없었다. 째려보며 분위기만 잡는 게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지 상상도 못했던” <여고괴담>의 정숙 역은 그녀를 단박에 호러퀸으로 각인시켰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여고괴담>의 후폭풍은 윤지혜의 배우인생을 한 방향으로 몰았다. 비슷한 공포영화의 출연 제안이 쏟아졌다. 그렇지 않으면 <청춘>의 하라, <물고기자리>의 희수처럼 성숙하고 강한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2001년 윤지혜는 한해를 쉰다. “조금 떠나 있어서 잠깐 잊혀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미지가 계속되면 내가 거기 갇히겠다 싶더라”고 한다.
1979년생 여배우 윤지혜를 괴롭힌 또 다른 편견은 ‘노출’. 그는 베드신을 “처음에는 한번 겪으면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성인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청춘> <가능한 변화들> <예의없는 것들>로 이어진 노출 연기에 대해 윤지혜는 “연기 자체만을 생각하는” 객관적인 태도다. CF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그런 방식으로 이미지를 관리할 단계는 아니다. CF 한 지도 오래됐지만 출연료가 비싸지도 않다”며 웃는다. 꽤 수위 높은 노출이 지속되는 <예의없는 것들>의 기자간담회 이후 선정적인 제목으로 기사가 쏟아져 속상하지만 정작 본인은 “사실 베드신은 이제 흥미롭지 않다”고 담담히 말한다.
3년 전쯤 연기를 계속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윤지혜는 “연기는 일단 해놓고 노는 것”이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후 <아일랜드>로 브라운관을 두드리고, 연극 <클로저>의 앨리스 역으로 호평을 얻는다. 연기파 손병호, 박희순, 김여진과 함께 무대와 연습실에서 몇달을 보낸 <클로저>는 그에게 좋은 단련이 됐다. 그리고 “6년이나 연기를 했지만 시사 전날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던” 첫 주연작 <예의없는 것들>이 그를 찾아왔다. “실신할 정도로 추운 날씨에 슬립만 입고 연기했던” <예의없는 것들>에서 윤지혜는 자기 캐릭터를 강조하기보다는 “킬라(신하균)를 바라보는 시선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차분한 연기를 펼친다. 대사가 없는 상대방을 향해 일방적으로 내지르며 시선을 챙겨야 하는 <예의없는 것들>의 마담은 까다로운 역이다. “애드리브는 없지만 불편한 대사는 끊임없이 바꿔가는” 꼼꼼함과 “<피아니스트>를 만든 미카엘 하네케의 정곡을 찌르는 예리함과 건조함”을 즐기는 정확성에 대한 애착은 많은 도움이 됐다.
임상수 감독은 그에게 “꼭 외국영화제에 함께 가서 알리고 싶은 마스크의 소유자”라 했다. 물론 “나는 네가 참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흥행이 안 돼”라고 놀렸지만. 처음 칭찬은 없던 이야기로 하자더니 뒷부분을 언급하고는 “그럼 ‘쌤쌤’이니까 괜찮다”라고 말한다. 아멜리 노통의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으며 “통쾌하고 신랄한 문체가 맘에 든다”는 6년차 배우 윤지혜는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 듯하다. “어떤 사람이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배우가 부지기수다. 너는 개성이 있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더라. 외모상의 결점이 화면상에서 스스로에게도 보일 때도 있지만 고치고 싶진 않다. 내 얼굴을 고쳐 내가 적응하는 일보다는 내 얼굴을 관객에게 적응시킬 생각이다. 그런데 관객이 ‘어! 저 눈’ 이러면서 끝까지 적응 안 하는 거 아냐?”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이 다부져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