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0월29일 사이타마 가와구치에서 태어난 가네시로 가즈키는 일본에서도 이제 단순히 성공한 재일동포 작가가 아니라 마이너리티 혹은 아웃사이더의 대변자로서 일본 대중문화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현해탄 너머의 그에게 서면인터뷰를 청하면서 촉박한 일정 탓에 조바심이 났지만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더 좀비스’의 멤버들처럼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기넘치고 진지한 마음이 담긴 답장을 보내왔다. 심지어 잘못 알려진 사실에는 자신의 소설을 쓰듯 각주를 달기도 했다. <씨네21>로 날아든 가네시로 가즈키의 답신을 공개한다.
-당신은 조선중학교 시절 지각 120일, 결석 60일을 기록했다. 게다가 파친코, 마작, 음주에도 능숙했던 조숙한 중학생으로 알려졌다. <레벌루션 No.3>나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더 좀비스’는 그러한 당신의 과거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내 작품에는 학창 시절에 겪은 에피소드와 추억이 진하게 묻어 있다. 실제로 중학교는 한인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는 ‘좀비 시리즈’(<레벌루션 No.3> <플라이, 대디, 플라이> <SPEED>)에 나오는 그런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여학교 축제에 몰래 들어갔던 일도 실제 경험이다. 싸움과 도박도 하고, 나쁜 짓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는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봤다. 중·고등학교 때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사춘기 남자아이들은 다 그렇지 않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화나 책에 매료된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전향으로 북조선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을 때 당혹감을 느끼지 않았나? 가까운 사람들의 비난이나 반대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민족계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과의 관계도 염려됐을 텐데 당시 당신이 느꼈던 감정은 무엇인가.
=국적을 바꾸는 것을 주저한 적도 있는데 실제로 바꿔보니 그게 그냥 ‘서류상의 문제’라는 걸 깨닫고 김이 빠졌다. 이런 일들이 내 세계관을 크게 바꿔놓았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예전보다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랄까. 여러분들도 한번 국적을 바꿔보기를 권한다. 재밌는 일이다.
-반년간 열심히 공부해서 게이오대 법대에 진학했다. 대단한 집중력이다. 인권변호사를 꿈꿨다던데 재학 중 법률이나 전공에 흥미를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법학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기보다는 소설 쓰는 데(이야기를 만드는 것)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법조계 진출에 대한 꿈을 접었다. 물론 법학공부를 계속했더라도 변호사가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글을 쓰는 대신, ‘하루 두권의 책과 두편의 비디오테이프를 소화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당시 어떤 책과 영화들을 주로 접했는지 궁금하다.
=(주: 정확히는 ‘하루 한권의 책과 두편의 비디오’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누군가에게 사사하거나,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배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 배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곤 했다. 하나의 장르만 고집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소설, 음악, 영화를 접했다.
-<레벌루션 No.3>의 소제목 <런, 보이스, 런>이나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팝송 제목을 연상시키는 리듬이 있다. 이런 리듬의 제목은 어린 시절부터 레코드와 CD를 즐겨 모으던 당신의 특정한 음악적 취향과 연관된 것인가? 그러한 제목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동기가 궁금하다. 보통 제목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제목짓는 걸 잘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항상 탈고한 뒤 제목을 붙이곤 했다. 지금까지 제목을 정해놓고 작업했던 건 <GO>뿐이다. ‘좀비 시리즈’는 1960∼70년에 걸쳐 있었던 일본 학생운동이나 세계적인 히피 무브먼트에 대한 패러디 차원에서 쓰기 시작한 작품이기 때문에 <런, 보이스, 런>이나 <플라이, 대디, 플라이> 같은 제목도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Burn, Baby, Burn>류의 슬로건을 따라한 것이다. 근데 일본에서는 독자들도 평론가들도 이해하지 못하더라.
-누나를 괴롭히던 일본 학생을 때리는 바람에 일본 친구들과 등지는 일을 겪었다. 이후 도서관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들었다. 대학 입학 전이나 졸업 뒤에도 혼자 글쓰기를 준비하거나 체력을 단련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흔했던 것 같은데 당신은 혼자 있으면 어떤 느낌인가?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혼자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1∼2주일 정도는 말 한마디 안 하고도 잘 지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인간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독은 두려운 거니까. 하지만 내 직업과 고독은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라서 필연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나오키상을 수상한 <GO>는 2주 만에,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시나리오는 1주일 만에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구상은 오랫동안 했겠지만 그렇게 빠른 집필과정이나 방식을 소개해달라. 소설을 쓰는 시간대나 공간, 인물을 구축하는 방식이나 노하우가 궁금하다.
=(주: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일주일 만에 완성한 것은 아닙니다.) 재밌는 아이템을 발견하면(그것이 신문기사건 TV뉴스건 실생활에서 발견됐건 뭐든 상관없다) 그 단편적인 것으로 장편의 스토리를 구성하고, 머릿속으로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본다. 마지막까지 다 완성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릿속의 영화를 문장으로 옮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과정을 ‘노벨라이즈’라고 부르고 있다. 참고로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베드타운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갈 때 그 동네 버스를 탔는데 거리 풍경이나 버스 안의 분위기가 너무 무기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서 문득 이런 무기력한 동네를 전속력으로 뛰어다니는 샐러리맨을 등장시키면 재밌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거기서 스토리를 발전시켰다. 짧은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시키는 비결은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다른 일은 전혀 안 하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기 때문이다. 잠은커녕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작업하기 때문에 이른 시간 안에 끝내지 않으면 몸이 망가진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작업을 빨리 끝낼 수밖에 없다. 인물이나 구성에 관한 노하우는 가르쳐줄 수 없다. (웃음) 딱히 나만의 비결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내 안의 반사신경 같은 것이 이야기에 적합한 인물을 선택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문장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밥 먹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면 제대로 대답할 수 없지 않은가?
-대학 때 자전적인 경험이 많이 반영됐고 상당히 냉소적인 <연애소설>은 당신의 작품 중 도드라져 보인다. 주로 1인칭을 사용했던 전작과는 달리 3인칭 시점이 사용됐고, 사랑과 연관된 죽음을 파고드는 주제가 그러하다. 다른 작품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날카롭게 세계를 바라본다는 느낌이다. 전작들의 낙관주의나 통쾌함과는 다른 슬픔 혹은 비애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변화는 무엇에서 비롯되었나.
=대학 시절에 어떤 책을 읽다 우연히 ‘Man loses much, as he loves much’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사랑하면 할수록 많은 것을 잃는다’라는 뜻인데 당시 이 글귀에 큰 감명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 인생관(연애관)을 정확하게 대변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강한 사랑은 상대방(대상)을 망가뜨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또 한편으로는 ‘부숴버릴 만큼 뜨거운 사랑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너무 큰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끼리 진심으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두려움이나 딜레마’ 같은 걸 표현해보고자 <연애소설>을 쓰게 됐다. 낙관주의나 통쾌함이 충만한 작품과는 별개로, 앞으로는 그런 사람들의 두려움과 딜레마를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 참고로 영화감독 마틴 스코시즈가 비슷한 테마를 다루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최근작 <SPEED>는 시간상으로는 <레벌루션 No.3>의 외전 격이지만 내용으로는 <연애소설>의 ‘영원의 환’과 연결되는 느낌이다. 여자의 죽음을 다룬 소재나 미스터리 구조의 이야기 형식이 그러하다. 남자주인공, 특히 주로 소년을 다루던 당신이 여고생 카나코를 주요 인물로 내세운 점도 흥미롭다. 한국 독자들은 다른 전작들보다 훨씬 영화적이라고 평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점에서 변화를 주려고 했나.
=변화를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독자 중에 여성이 많기 때문에 그들이 재밌게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집필했다. 나는 스스로의 창조성이나 예술성을 표현하기 위해 작품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작업하는 엔터테인먼트형 작가라고 생각한다. 내 독자 중에 갓난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코리안 재패니즈(한국계 일본인)라고 강조했다. 유미리, 양석일, 현월 같은 선배 재일동포 작가들과 공감대나 연대감이 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들에게 동질감 혹은 이질감을 느낀다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설명해달라.
=최근 몇년 동안 ‘코리안 재패니즈’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존재라는 걸 자잘하게 분류하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재일동포’가 됐든 ‘코리안 재패니즈’가 됐든 그런 틀 안에 안주하게 되면 어느샌가 우리 안의 동물들처럼 그 안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나는 비좁은 곳을 싫어하기 때문에 ‘코리안 재패니즈’라는 명칭을 버리기로 했다. 앞으로는 어떤 수식어도 달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나니까. 내 진가는 내 모습이 결정해줄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칭하는 것이 아니라.
-순신을 비롯한 당신 소설의 주인공들은 민족주의 관점의 소수자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의 마이너리티로 보인다. 재일동포 순신과 오키나와 출신의 히로시, 혼혈인 아기날도의 출신지적 성분보다는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각자의 개성을 알아본다는 측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듯하다. 그런 마이너리티 개념의 핵심을 이루는 ‘더 좀비스’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답변이 가능할 것 같다. 제일 쉬운 답을 얘기하자면, 그건 내 가까이에 아기나 순신이나 히로시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고, 그들이 정말 개성적이고 즐거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들에 관해 이야기했을 따름이다. 가까이에 그 친구들 같은 사람들이 없다면, 그 사회(공동체)는 불행하고 정체됐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마이너리티 개념은 청춘물에 아주 적합해 보인다. 그래서 청춘물을 주로 쓰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만이 갖고 있는 청춘물에 대한 애착이 있나.
=스스로 청춘물이라는 장르를 의식하고 작업한 건 아니다. ‘무언가에 격렬히 저항하는 사람들’을 의식하고 집필하긴 했다. 생각해보면 ‘무언가에 격렬히 저항하는 인물’을 그려내자면 필연적으로 청춘물이 되는 게 아닐까?
-<GO>와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소중한 것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당신 소설은 대체로 시스템보다는 개인의 노력이나 결심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변화나 혁명은 개인에게서 오는 것일까.
=나는 ‘집단’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
-대학 졸업 뒤 소설 공모에 여러 번 낙방한 뒤 낙담하다가 팀 오브라이언의 단편 <살아 있는 죽음>을 읽고 다시 창작의욕을 불태웠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 작품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가? 작가인 당신을 고양시키는 지점은 무엇인가.
=(주: 이것은 아마도 팀 오브라이언의 <죽은 자를 살리는 이야기>(The Lives of the Dead)에 관한 것 같다…. 이를 전제로 답변했다.) 내가 말하기보다는 팀 오브라이언의 단편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를 읽는 편이 빠를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답한다면 작품의 일부분을 인용하겠다. 물론 이것도 그 작품을 읽어야 내 느낌을 이해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꼭 읽어야 한다. “이야기 속에서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
-당신 소설은 비극적이고 암울한 현실을 아이러니 혹은 유머를 통해 돌파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반대로 문체 면에서는 하드보일드나 추리소설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이제까지 당신이 글을 쓰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 혹은 사상가가 있다면 누구인가.
=너무 많아서 말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나는 누군가에게 영향받은 걸 깨닫는 순간부터 그 영향에서 되도록 벗어나려 하기 때문에 실제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자백할 의무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홉살 때 처음 작품을 접하고 충격을 받은 작품이 있다. 지금도 다시 읽을 때마다 감명을 받는데 제임스 M.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이다. 수십번 읽어도 감동을 준다.
-이제까지 <GO> <연애소설> <꽃> <플라이, 대디, 플라이>가 드라마와 영화로 영상화됐다. 영상화된 각각의 작품에 대해 어떤 느낌이었나? 본인이 직접 각본을 쓴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은 특히 차이가 많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만족스러운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는 전혀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영화화가 결정된 시점부터 너무 크게 기대하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머릿속에서 한번 영화를 만들어보고 그걸 문장으로 옮기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만든 영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불만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내가 각본을 맡더라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그런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스스로 감독을 해야 할 것 같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동기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언급했다. 그곳의 어떤 점이 그런 자극을 줬는지. ‘국경을 넘는 일이 인생의 테마’이기 때문에 일본을 뛰어넘어 다른 나라와 함께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플라이, 대디, 플라이> 외에도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는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아프리카에 가서 내 작품을 낭독해봤자 현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프리카에서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상영한다면 그들도 즐거워할 것이다. 영화(영상)의 힘은 언어보다도 쉽게 국경을 넘어설 수 있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현재는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만드는(원작이나 각본을 쓰는) 형태로 영화작업에 참가하고 있고, 그걸 통해서 국경을 넘어서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만약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면 단편집 <레벌루션 No.3>를 원작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레벌루션 No.3>에는 꼭 내가 찍고 싶은 신이 있다. 그 장면을 다른 감독이 연출해서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그림이 나온다면 영화에 실망하고 싫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감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한국에서 보내온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시나리오를 감수했다고 들었다. 영화가 최근 한국에서 개봉했는데 시나리오에 대한 원작자로서의 견해를 말한다면? 일본영화 <플라이, 대디, 플라이>와도 비교해달라. 순신(승석)의 역할이 일본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축소됐고,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배경이 사라진 대목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감수를 했다는 것에는 어폐가 있다. 그냥 읽고 느낌을 말했을 뿐이다. 시나리오는 재밌게 읽었다. 원작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원작의 보편적인 요소가 제대로 녹아들어가 있었으니까. 그저 빨리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다.
-순신은 학창 시절 당신의 모습이 반영된 캐릭터다. 하지만 마흔을 눈앞에 둔 현재의 당신은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 비유하면 순신에 가까운가? 스즈키에 가까운가.
=순신과 스즈키, 양쪽을 겸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두 캐릭터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소설과 영화(시나리오를 포함한) 중 어느 분야의 일에 더 매력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쓴 뒤에 소설과는 다른 시나리오 작법 때문에 고생했다고 했는데 그런 부분은 많이 익숙해진 건가.
=소설과 영화 모두 매력을 느낀다. 가까운 장래에 시나리오 작업도 할 생각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장르에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매력적인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