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Unite 93’은 911당시 피랍된 여객기중 유일하게 목표물이 아닌 벌판에 추락한 비행기의 편명이다. 영화는 911사건의 정치적 해석을 배제하고 오로지 재난에 맞딱뜨린 사람들의 행동에 주목한다. 재난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관제탑을 그린 전반부는 변죽만 울리는 것 처럼 느껴져 자칫 지루하고 짜증나지만, 이 ‘설명할 수 없음, 이해할 수 없음’이 당시 미국인들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한 방식이리라. 후반부엔 납치된 비행기 속 승객들의 공포와 테러범들에 의해 점거된 조종실을 탈취하는 과정을 박진감있게 잡아낸다.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현기증을 체감할 수 있다.) 그리고 백악관의 전투기 요격명령이 군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음을 아쉽게 자막으로 남긴다. 영화 속 승객들은 전원사망하였지만, 그밖의 시민들은 희생되지 않았다는 것을 ‘무훈의 의의’로 삼듯, 군의 요격을 통해 비행기를 격추시키더라도 시민들과 주요 기관은 살렸어야 한다는 아쉬움을 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는 삭제된 것이 아니다. ‘(승객들의 무용담이 전하듯) 죽으려면 혼자 죽어야 한다’가 이 영화의 주제이며, 따라서 ‘자살 폭탄 테러는 천하의 악’이라는 명제가 도출된다. 자살 폭탄테러에 관한 가장 나이브한 정치학이 아닐 수 없다. (오, 거룩한 단순함이여! )-황진미/영화평론가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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