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크 하우스>의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와 샌드라 불럭을 4월10일 LA에서 만났다. 12년 만에 연기 호흡을 맞추는 것이라 해도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온 두 사람은 살가운 분위기로 인터뷰에 응했다. 두 사람이 그간 꾸려온 삶과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레이크 하우스>에서의 호흡에 대해 들어보았다.
연인으로 출연하기에 키아누 리브스와 샌드라 불럭은 쉽게 그림이 그려지는 커플은 아니다. 12년 전 <스피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라면 더더욱. 12년 전 <스피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함께 액션을 하는 장면이 마지막 키스신보다 더 강렬해서, 두 사람이 <레이크 하우스>의 원작 <시월애>의 두 주인공 이정재와 전지현처럼 멜로영화에 어울리는 ‘꽃 같은’ 느낌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은 옷차림에 말수가 적은 키아누 리브스와 막힘없이 활발한 성격에 시종일관 이야기를 늘어놓는 샌드라 불럭은 그러나,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호흡만큼은 오랜 친구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실감하게 했다. 64년생 동갑내기 두 배우들은 12년사이 각자 필모그래피를 충실히 쌓아왔다. 키아누 리브스는 <매트릭스> 시리즈로 불멸의 성공을 기록했고, 샌드라 불럭은 <미스 에이전트> <머더 바이 넘버> 등 제작자로서의 크레딧을 충실히 쌓아왔다.
<레이크 하우스>는 시간에 관한 동화이자 성인을 위한 순수한 사랑이야기다. 이메일 시대에 편지를 써서 교환하고, 조바심내는 대신 2년의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는 사랑. 사랑의 단꿈도 꾸어보고 사랑의 실패도 경험해본 성인들을 위한 이야기. “나는 영웅이 아니고 샌드라는 마법에 빠진 공주가 아니다. <레이크 하우스>는 자신을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줄 누군가를, 무언가를 찾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있으면 새로운 삶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남녀의 이야기다”라고 키아누 리브스는 말했다.
키아누 리브스
키아누 리브스와 관련된 뉴스들을 보면 지금의 그가 도인처럼 세상사에 초월한 모범적인 생활을 꾸려가는 이유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아이다호>에 함께 출연했던 리버 피닉스의 죽음이 촉발한 비극은 늘 키아누 리브스의 주변인들을 괴롭혔다. 지질학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헤로인 판매혐의로 10년형을 받아 2년간 복역했으며, 9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키아누 리브스의 여자친구 제니퍼 사임은 그의 아이를 유산했다. <매트릭스> 시리즈로 바쁘던 그와 달리 우울증으로 시달렸던 사임은 2001년 4월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이미 둘의 관계는 소원해진 뒤였지만 리브스는 그녀의 장례식 비용을 모두 지불했다. 2003년 7월에는 10년간 백혈병을 앓아온 여동생을 위해 LA의 개인저택을 병원으로 개조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그와 동시에 <매트릭스> 시리즈로 배우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 그는 다른 동료배우들처럼 연애 스캔들로 타블로이드지에 오르내리는 대신 ‘베푸는 배우’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촬영 당시 스턴트맨 열두명에게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선물했고, 특수효과팀과 의상디자이너들에게는 5천만달러의 거금을 기증했다. 돈과 성공은 축적하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듯. “나는 그저 멍청한 인간일 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동시에 “나는 미키 마우스다. 겉 껍데기 아래 어떤 인간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라고 스스로를 평하는 키아누 리브스는 그렇게 흐르는 강물처럼, 느릿하고 속을 알 수 없지만 꾸준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샌드라 불럭
“모든 사람들이 <스피드>(1994)에 출연하지 말라고 했다. ‘버스 영화’라는 이유로.” 주변에서 만류하는 영화로 큰 성공을 거머쥔 뒤에도 샌드라 불럭을 위해 멋진 역할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의 루시 역할도 원래는 데미 무어가 연기하기로 했던 배역을 받은 것이었다. 그녀는 액션영화와 로맨틱코미디에서 연달아 홈런을 친 뒤 제작자로 나선다. 1998년 제작한 <사랑이 다시 올 때>부터 샌드라 불럭은 제작과 주연을 동시에 하기 시작한다. 같은 해 직접 감독한 단편 <샌드위치 만들기>에서 역시 주연을 겸했다. <미스 에이전트> 시리즈의 성공은 제작자로서의 샌드라 불럭의 위치를 공고히 다져주었고, 최근에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크래쉬>와 트루먼 카포티 전기영화 <인퍼모스> 등에 출연하면서 직접 제작하지 않는 영화들에서도 꾸준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당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골라 일하라. 도전의식을 북돋우는, 당신보다 똑똑한 사람들과 일하라. 언제나 학생의 자세로 배우라. 선생이라는 생각으로 남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순간, 당신은 이미 패배한 것이다.” 샌드라 불럭이 스스로에게 되뇌는 성공의 격언은 배우로서나 제작자로서나 성공을 거듭하는 그녀의 비밀을 알려준다. 그렇게 불럭은, ‘아름다운 여배우’보다 ‘성공한 여배우’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