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에는 형제 같은 영화 두편이 있다. 리처드 브룩스의 <냉혈한>(1967)이 살인사건과 여파에 관한 살인자쪽 기록이라면, 베넷 밀러의 <카포티>는 책의 보이지 않는 손인 작가 쪽 기록에 해당한다. <카포티>는 사건이 일어난 1959년 11월15일부터 살인자가 사형을 당할 즈음까지 트루먼 카포티의 행적을 뒤따른다. 그런데 <카포티, 캔자스에 가다> 정도의 그럴싸한 제목을 제쳐두고, 전기도 아닌 영화의 제목을 <카포티>로 정한 까닭이 궁금했다. 미국 DVD와 책으로 먼저 보고, 이어 극장에서, 다시 한국 DVD로 접한 다음 어렴풋이 짐작한 바는 이렇다. 작가와 감독은 카포티가 보낸 한 시기를 불러와 작가로서의 그에 관한 정설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인 콜드 블러드>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여러 재기 넘치는 글의 작가로, 뉴욕 사교계의 유명인사로, 손과 혀끝을 조심하지 못해 스스로 파멸했던 전설적인 인물로 흔히 알려진 카포티에게 1960년대의 6년은 작가로서 삶의 절정을 맞이한 시기다. 사건을 접하고 캔자스 현장에 갔을 때의 그는 목도리 브랜드에 연연하며 끼가 다분한 목소리로 쇼맨십을 감추지 못하는 글쟁이였다. 그러나 점차 드러나는 엄청난 사실 앞에서 거대한 진실을 내면으로 발견하는 작가로 화한 그의 목소리는 긴장과 공포로 떨리게 된다. 한 인간의 죽음이 연장될수록 마감되지 않는 원고, 어서 처형이 이루어져 책을 끝내고 싶다는 지독한 욕망. 그 아이러니한 현실 앞에서 그는 머리가 부서질 것 같은 고문과 고통을 껴안아야 했고, 그 결과 <인 콜드 블러드>라는 찬란한 저작이 탄생한다. 그러니 한 인간의 진실했던 순간에 그의 이름을 건다 하여 이상할 건 없겠다. 예술가의 시간을 예리하게 잘라낸 단면도라 할 <카포티>는 카포티가 어떻게 해서 작가로 완성되는지 목도한다. 관찰자로서 사건을 객관적으로 취재해야 하는 입장, 책을 쓰고 싶은 욕구, 세속적인 야심이 뒤섞인 카포티가 느꼈을 감정의 동요가 그대로 전해오는 영화다. 캔자스의 아름다운 인디언 서머보다 원작 마지막의 낯선 슬픔이 묻어나는 어둡고 촉촉한 영상은 DVD에 만족스럽게 재현됐다. 베넷 밀러 감독이 주연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촬영감독 애덤 키멜과 각각 진행한 음성해설을 두개 수록하고 있으며, 부록으로는 카포티에 관한 짧은 조명인 ‘트루먼 카포티: 응답받은 기도자’(7분, 사진), 각본, 인물분석과 캐스팅, 스타일, 미술, 촬영, 의상, 편집 등 주제별로 간략하게 다룬 메이킹 필름(17분, 19분)이 부록으로 제공된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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