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부인이 될 여자와 영화를 본다. 소리로 들리는, 줄스 다신의 <리피피>. 주인공이 항상 행운에서 비켜나 운명처럼 비극을 맞는 프랑스산 범죄영화의 대표작이다. <매치 포인트>의 남자도 기어코 범죄를 저지르지만 용케도 그에겐 운이 따른다. 소포클레스의 말- ‘태어나지 않는 게 가장 큰 은혜다’- 이 인용되는 <매치 포인트>는 얼핏 염세주의를 표방하는 듯하다. ‘상류계층과 결혼하기 위한 보통 사람의 고군분투’라는 고전적 주제는 몇 세기를 넘어오면서도 그 결말이 항상 우울했다. 하지만 <매치 포인트>는 ‘행복이 꼭 즐거울 수는 없다’는 식의, 그저 그렇게 씁쓸한 코미디가 아니다. 죄를 지은 자 뒤에서 단죄나 구원이 아닌 행운을 노래하는 <매치 포인트>는 악을 정당화한 사샤 기트리의 후기작과 전복성이 넘치는 막스 브러더스의 희극에 근접한 영화다. 더불어 누군가가 도덕적 문제를 들고 나온다 하더라도 양가적 해석이 가능한 결론 앞에서 별다른 반박을 펴기란 힘들 것 같다. 영화에 네번 흘러나오는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은 사랑의 환희에 벅찬 남자의 노래임에도 종종 슬픔의 감정을 표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매치 포인트>의 쉽사리 정의하기 힘든 슬픔과 행복감이 <남 몰래 흐르는 눈물>과 더없이 어울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디 앨런의 새로운 블랙코미디를 위해 선택된 영국이란 나라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DVD 영상은 스크린과 비교해 붉은 색감이 다소 과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무난하다. 메이킹 필름이 부록(9분, 사진)으로 지원되긴 하나 홍보용 영상에 가깝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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