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벨파고
2001-09-11

■ Story

루브르박물관 창고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집트의 석관이 발견된다. 이집트의 관례와는 달리 이름이 지워진 채 발견된 석관의 주인을 밝히기 위해 전문가인 글렌다(줄리 크리스티)가 초빙된다. 며칠 뒤 루브르박물관 건너편 건물에 살고 있는 리사(소피 마르소)는 연인 마틴(프레데릭 디팡달)과 함께 지하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박물관 내로 들어가게 된다. 미라를 검사하는 연구실로 들어간 리사는 석관을 열었다가 깨어나 활동중이던 악령 벨파고에게 육체를 점령당한다. 그날부터 리사는 매일 밤 루브르박물관으로 향하고, 박물관에서는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과거에 박물관의 경비를 맡았던 벨락(미셸 세로)은 벨파고의 짓임을 알아차리고 다시 경비반장으로 취임한다.

■ Review

<벨파고>는 1965년 프랑스에서 방영된 TV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당시 <벨파고>는 프랑스 초기의 TV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조사를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수십년이 지나 영화로 만들어진 <벨파고>는 스케일이 커지고 세련된 특수효과가 들어갔지만, 아쉽게도 21세기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는 못한다. 악령의 형체는 물론이고 악행이나 목적까지도 지극히 단순하고 초라하다. 과거의 향수를 달래는 데는 적격일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벨락과 글렌다의 ‘로맨스 그레이’나 프레데릭 디팡달의 친근한 연기 등 사소한 볼거리로 그럭저럭 끌고 가지만, 서스펜스도 없고 액션도 없다. 프랑스의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어정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느슨함과는 별개로, <벨파고>의 외적인 호소력은 대단하다. 최초로 영화촬영을 허락한 루브르미술관의 곳곳을 한껏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다.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비치는 갤러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배경으로 <모나리자>를 비롯한 수많은 회화와 그리스 조각 등이 깔리고 타니스 피라미드와 아누비스상 등 이집트관의 모든 것과 함께 루브르박물관의 내외관이 두루 화면을 장식한다. 잡다한 상식도 제공된다. 원제 ‘벨페고르’는 페고르의 신을 뜻하는 ‘바알 페고르’를 프랑스식으로 읽은 것이다. 고대국가 모아브에서 섬기던 ‘땅의 신’인데, 히브리전통에서는 뿔달린 악마로 변형되었다. 유럽문화와 예술에서는 익숙한 ‘악의 존재’. 새로운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이나 벨파고의 혼을 사후세계로 보내주기 위하여 죽음의 의식을 갖는 모습 등에서 이집트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얼추 읽을 수 있다.

김봉석 lotu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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