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코미디, 안온한 나의 정원, <브리짓 존스의 일기> 휴 그랜트
2001-09-12
글 : 김혜리

만약 ‘난처함’이라는 감정에 이목구비가 있다면 그건 바로 휴 그랜트(41)의 마스크일 것이다. “어쩌면”, “혹시”, “믿을 수 없는” 따위의 단어로 점철된 말투, 그렇게 완곡한 화법으로도 끝내 못 꺼낸 이야기를 모스 부호로 타전이라도 할 듯 분주히 깜박이는 눈꺼풀, 손가락 빗질로 가라앉을 틈이 없는 그의 구제불능 곱슬머리가 스크린을 어수선하게 할 때 우리는 괜스레 덩달아 난처해진다. 심지어 휴 그랜트가 영화 속에서 유난히 자주 입는 밝은 색상 와이셔츠들마저, 뭔가가 쏟아지거나 이상한 곳에서 단추가 풀려 ‘곤란한’ 그의 운명을 악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시인 바이런을 꼭 닮은 홍안의 미청년으로 머무는 동안, 시대극의 성곽 안을 소요하는 동안 휴 그랜트의 서투름은 곧 사랑스러움 혹은 퇴폐적인 매력이었다. <모리스>(1987), <비터 문>(1992), <베니스행 야간열차>(1993),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에서 그는 모욕과 시행착오를 병적으로 겁내는 귀공자, 성 정체성이 모호한 딜레탕트로서 거의 완벽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노팅힐>(1999)에 이르면 그의 서투름은, 실패와 결핍을 삶의 정상적 조건으로 받아들이게 된 30대 남자의 쓸쓸하고도 침착한 표정으로 숙성된다.

<노팅힐>에서 남성판 브리짓 존스라고 할 만한 윌리엄 역을 맡았던 휴 그랜트는 <네 번의 결혼식…>과 <노팅힐>의 작가인 리처드 커티스가 시나리오를 쓴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브리짓에게 근사한 와인과 섹스를 선사하는 대신 양다리 걸치기로 가슴을 찢어놓는 ‘여성의 공적’ 다니엘 클리버를 연기한다. 야비한 바람둥이가 된 휴 그랜트는 연적을 모함하고 “나 사랑해?” 하는 난감한 베갯머리 질문을 “조용히 안 하면 한번 더 한다!”라는 재치(?)로 제압한다. “할 수 있다면 성격을 뜯어고쳐 당신에게 다가가 키스하고 싶습니다”라고 남의 일처럼 중얼거리는 <노팅힐>의 윌리엄에게 반했던 관객에겐 배신이 될 만한 캐릭터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진짜 휴 그랜트”라는 것이 본인과 주변의 반응. “내가 <네 번의 결혼식…>과 <노팅힐>의 좋은 녀석일 거라는 사람들의 짐작은 작가인 리처드 커티스를 포함해 날 아는 모든 이를 웃게 만든다”고 그랜트는 득의양양해한다.

하지만 휴 그랜트와 가장 닮았다는 다니엘 클리버 안에도 <네 번의 결혼식…>과 <노팅힐> <미키 블루 아이즈>의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현실주의자가 숨쉬고 있다. 연애에 멍들어본 여자 관객이라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많이 좋다”는 마크 다아시의 달콤한 고백보다는 “만일 당신과 잘 안 된다면, 나는 누구하고도 잘 안 되는 남자일 거야”라는 다니엘의 초라하지만 현실적인 ‘협상안’에 마음이 동할지 모른다.

“그는 대단하다. 그랜트의 재능은 그 가벼움 때문에 간과되기 쉬운 종류의 재능이다”라는 콜린 퍼스의 말처럼 휴 그랜트에게 가장 편안한 정원은 코미디고, 그중에서도 가장 안락한 벤치는 ‘휴 그랜트 3부작’이라고도 불리는 영국 영화사상 가장 성공적인 로맨틱코미디를 만들어낸 리처드 커티스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휴 그랜트는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경력 관리 솜씨로 정평이 나 있다. 6년 전 매춘 스캔들을 필두로 할리우드 진출 초반에도 몸살을 앓았고 스릴러를 시도했다가 찬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내 커리어의 모델은 런던의 시내버스다. 네 시간 기다려도 한대도 안 오다가 스무대가 동시에 몰려오는 식이다.” 우디 앨런의 <스몰 타임 크룩스>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의 신작은 닉 혼비 원작의 <한 소년에 관하여>. 뒤늦게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는 소년 같은 남자로 분한다. 적어도 그에게 친숙한 정원에 머무르는 한 휴 그랜트가 기다리는 ‘버스’의 배차 간격은 개선될 것이 분명하다.

<미키 블루 아이즈> 항상 갱영화 출연제의가 없어서 마음의 상처가 컸다. 내가 스크린에서 내뿜는 자연스러운 악의를 생각해보라! 마틴 스코시즈가 왜 내게 전화를 걸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마흔살 생일. 어찌어찌 하다보니 파티를 조직하기에는 너무 늦은 날짜더라. 결국 가슴속에 분노가 많은 대여섯명의 다른 마흔살 동갑내기들과 우울하게 술집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흩어졌다.

일류 디자이너들이 자기 옷을 입어달라고 접근하는 일이 많은가. 일류 디자이너들이 접근을 많이 하긴 한다. 제발 자기네 옷을 입지 말아달라고.

진정한 사랑이란 획득 가능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다. 흔치 않은 새지만, 나는 그 새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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