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무사착륙’에만 신경쓴 9·11 영화들
2006-09-08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9·11 사태 5주년을 맞아 이 사건의 현장을 직접 재현해 보여주는 미국 영화 두 편이 잇따라 한국에서 개봉한다. 〈블러디 선데이〉의 감독 폴 그린그래스가 메가폰을 잡은 〈플라이트93〉이 오는 8일 개봉하며, 올리버 스톤 감독이 연출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10월 중순에 개봉한다.

알다시피 9·11은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이후의 세계정세를 바꿔놓았으며, 지금도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뜨거운 감자’다. 이런 사건의 현장을 5년 만에 직접 대형 스크린으로 옮긴다는 게, 이른 일일까 늦은 일일까. 한국 같으면 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이 〈꽃잎〉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스크린을 타기까지 16년이 걸렸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4월 말 스크린에 걸린 〈플라이트93〉의 개봉을 앞두고 “너무 이르다”는 논란이 미국 안에서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개봉 뒤 시들해졌고, 8월 개봉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함께 두 영화는 미국에서 좋은 흥행성적을 거뒀다.

미국이 영화에 관대한 걸까, 아니면 영화가 빼어난 걸까. 〈플라이트93〉은 사건 당일 납치된 비행기 넉 대 가운데 마지막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93편 안에서 벌어진 일을,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안에서의 구조활동을 재현한다.

다큐멘터리처럼 연출한 〈플라이트93〉은 9·11에 대한 정치적 유추나 평가를 배제한다. 확인된 사실들을 기초로 얼개를 짜고 그 사이에는 상식적으로 유추가 가능한 만큼만 보태서 비행기 안에서 벌어진 일을 중계한다. 납치범에게 저항을 시도한 승객들을 크게 영웅화하지도 않고, 납치범들 역시 잔혹하게 그리지 않는다. 납치된 비행기들이 차례로 추락하는 상황에서 영화가 힘을 받는 순간은 승객들이 저항을 시도하면서부터다. 어쨌든 비행기는 납치됐고 이미 석 대가 추락해 숱한 사람이 죽은 만큼, 무고한 사람들이 더 죽는 건 막고 봐야 한다. 그 최소한의 명백한 휴머니티에 호소하면서 영화를 끌고 가는 걸 ‘미국적’이라고 욕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의심의 기제가 작동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사실에 기초했다고 하고, 과장 없어 보이는 연출도 개연성이 있지만 그래도 배우들의 표정과 말에 실린 감정은 연기이다. 이건 어쨌든 허구다. 그게 만들어내는 느낌들을 믿어도 되나 하는 의구심에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결국 죽을 걸 알면서 봐야 하는 이 무거운 영화는 한층 더 무겁게 다가왔다. 그런데 영화 끝나고 극장 나온 뒤 그 무거움이 오래가질 않았다. 영화의 입장 표명이 상식 선에서 그쳤는데, 일부러 그 이상의 발언을 자제하는데 뭘 간직할 수 있을까.

세미 다큐 형식의 이 영화는, 재난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미국인들의 위기의식의 이중성을 징후적으로 드러내는 〈우주전쟁〉처럼 징후적으로 읽을 것도 잘 찾아지지 않았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아직 못 봤지만 이 역시 정치적 논평을 배제하고 휴먼스토리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들 영화들은 일찍 온 것도, 늦게 온 것도 아니고 다만 발언을 최소화함으로써 위험부담 없이 안전하게 온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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