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대담] <라디오스타>로 다시 뭉친 안성기·박중훈
2006-09-11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사진 : 김봉규 (한겨레 기자)

<왕의 남자>로 1240만명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라디오 스타>(28일 개봉)가 지난 7일 시사회를 통해 언론에 공개됐다. 영화는 80년대 후반 가수왕에 뽑힌 톱스타 최곤(박중훈)과 그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시점의 이야기이다. 최곤은 몰락해 카페를 전전하는 신세가 됐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강원도 영월의 라디오 프로그램 디제이로 가게 된다. 늘 그의 곁에 있어온 민수도 따라 가서 동고동락하며 프로그램을 인기 정상에 올려 놓지만, 막상 그 시점에서 둘 사이에 불화가 생긴다. 20년 가까이 함께 하며 정상의 기쁨과 바닥의 슬픔을 같이 맛 본 두 남자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선 다른 큰 욕심을 내지 않지만, 영월이라는 소도시의 소박함과 그곳 자연의 관대함, 록이라는 장르가 지닌 향수의 감성이 어우러지면서 영화의 폭이 넓어진다. 웃고 가슴 뻐근해 하는 사이에 울분과 회환, 잘 나가는 인생과 못 나가는 인생의 구별 같은 것들이 눈 녹듯 녹아내리게 한다. 영월처럼, 영화는 소박하지만 포용력이 크다.

영화를 빛나게 하는 건, 무엇보다 안성기(54)와 박중훈(40)이라는 두 배우이다. 영화 속 최곤과 민수처럼, 둘은 20년을 선후배이자 친구로 일주일에 세번 이상씩 만나며 배우 생활을 함께 나눴다. 또 최곤처럼 안성기는 80년대 초중반, 박중훈은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남자 배우 1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뒤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안성기는 주연을 고집하길 포기하고 ‘남우조연상’을 기꺼이 받는 길로 나가는 동안, 박중훈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찰리의 진실>)에도 출연했고 충무로에서 주연을 지키고 있지만 흥행작이 나온 지 오래 됐다. 그런 두 배우의 모습이 몇 차례 영화 속 인물과 겹쳐 보이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관객 곁으로 내려와 앉는다.

지난 7일 시사회의 무대 인사에서 박중훈이 “저나 안성기 선배나 오랫동안 누워 있었거든요”라고 하자 안성기가 “나는 그래도 서 있었어”라고 우스개를 했다. 하루 뒤인 8일 <한겨레>와 만났을 때, 박중훈은 “저는 가운데에 누워 있었고, 형님은 주변에서 서 계셨다”고 ‘정리’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88년 <칠수와 만수>부터 시작해 <투캅스>(93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99년)까지 둘이 함께 출연한 영화들은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둘이 함께 출연한 네번째 영화 <라디오 스타>도 각종 매체의 반응이 뜨겁다. ‘주변에 서 있던’ 안성기가 가운데로 들어오고 ‘가운데 누워 있던’ 박중훈은 일어서게 되는 영화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고목나무에 꽃 피워야죠?”

안성기=<라디오 스타>는 나나 중훈이나 직전 출연작과 너무 붙어 있었어. <강적>과 <한반도> 모두 나온 게 최근이잖아. 그래서 우려스럽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둘이 함께 나오니까 관객들이 관점을 달리 해서 봐주는 것 같아. 7년전 안성기와 박중훈이 함께 나왔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가서 ‘어, 둘이 오랜만에 하네’하는 식으로. 우리가 너무 가까워서 그런 이미지가 이 영화에는 맞을까 우려도 했는데 좋게 봐주는 것 같고. 둘의 화학반응이 크긴 큰가봐.

박중훈=처음 시놉시스에는 가수만 등장하고 매니저는 없었죠. 안 선배 없이 회의를 하면서 여기에 매니저를 두자는 얘기가 나왔고, 그 비중이 처음엔 단역이다가 조연 정도로 가자, 그러다가 누가 좋겠냐, 내가 안 선배가 어떻겠냐 제의를 했고 다들 좋겠다 그랬죠. 그러면서 둘의 이야기로 가자, 이렇게 됐고 그 과정에서 내가 제작자도 아닌데 안 선배에게 뒤띔을 해 드렸지.

안=바로 좋다고 했어. 내가 워낙에 버디 무비를 좋아해. 거기에 이야기 구조도 아주 재미나게 돼 있고. 중훈씨와 같이 작품 한다는 게 굉장히 즐거울 것 같고. 무엇보다 우리한테 너무 맞을 거다 싶은 게, 20년을 같이 생활한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또 최곤처럼 바닥까지 치진 않았지만 둘 다 번쩍 하는 시기를 거쳤던 데 대한 감성을 갖고 있고.

박=(자리를 옮겨 앉으며)그런데 이 자리 조명이 너무 세다.

안=이 사람이 이런 게 많아요. 영화 속에서 최곤이 “난 허리가 안 좋아서 아무 침대에서나 자면 안 되는데” 하잖아.(웃음) 최곤이 ‘헉, 헉’ 하면서 침 뱉는 것도 중훈이 생활이고. 그 외에도 우리 실제 모습에서 나온 에피소드가 많아요. 최곤이 사람 패서 경찰서 가서 조사받을 때 민수가 옆에서 ‘제가 때린 걸로 믿고 싶습니다’ 그러잖아. ‘믿고 싶다’는 게 실제는 중훈이 말투이고.

박=실제로 제가 과거에 사고를 쳐서 조사 받을 때 ‘제가 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거든요.(웃음)

안=아들이 이 영화 편집본을 보고는 평소 아버지 모습이 제일 많이 나온 영화라고 하더라고. 나도 평소의 말투와 표현 방식이 많이 들어갔거든. 영화에선 최곤이 말수가 적고 민수가 계속 설레발을 떠니까 둘이 바뀐 것 아니냐고 하던데 실제론 나도 설레발이 많거든. 중훈이도 실제론 생각에 빠져 시무룩하게 있는 시간이 많고.

20년 동고동락 주인공들 우리와 비슷

박=영화에서 최곤이 가수왕 된 88년엔 제가 청춘 스타였거든요. 최곤처럼 아이들이 나를 쫓아다니고. 또 최곤이 성격이 까칠하잖아. 그때 나도 그랬거든. 성격도 뭘 잘 못 참는데다 청춘스타가 일종의 권력자니까 참을 필요도 못 느낀 거고. 지금은 반성 많이 하죠. 영화 속 최곤도 계속 성질 내지만 회한이 많을 거야. 그런 내면의 일치가 있어요. <황산벌> 이후로 내 히트작이 없는 것도 그렇고.

안=누워 있었지.(웃음)

박=형님은 누운 적은 없고 비틀거렸다고만 하는데 심하게 누워 계셨지. 아니 서 계셨는데 주변부에 서 계셨지.(웃음) 난 누울지라도 주변부는 싫다, 그랬던 거고. 영화가 인간을 얘기하는 거지만, 제가 영화를 통해 배우기도 하거든요. 이 영화 찍으면서 스스로에게 보내는 반성이 많았어요. 안 선배와 이준익 감독과 작품 얘기보다 사는 얘기를 더 많이 했던 것 같고. 그래도 아직 변치 않는 건 훌륭한 배우의 꿈이죠. 저는 방법론에서 할리우드에서도 성공하는 꿈이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진 않았어요.

안=거기선 실제 나이를 크게 안 따지고, 또 넌 젊어 보여서 20대도 연기할 수 있으니까 가능해. 난 주름 때문에 그런가. 내 나이대로 보더라고.

박=형님은 어리게 보기 힘든 게 아무리 모르는 척해도 눈빛이 세상을 알고 있는 눈빛이니까.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걸로 계속 가려고.(웃음)

청춘스타때 급한 성격 반성하죠

안=그동안 중훈이와 함께 출연한 영화가 세편인데 모두 잘 됐고, 그게 5년 단위로 나왔거든. 그런데 이 영화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7년만이야. 그 사이에 5년이 됐는데 왜 작품 하자는 사람이 없냐, 그런 말도 했고. 2년이 더 지나서 임자가 찾아왔지. 그래서 둘이 앞으로는 5년마다 하지 말고 10년에 두편 하자, 그러니까 이번엔 3년 안에 하나 하자 그러고 있어.

박=<투캅스> 후속편을 다시 해본다고 하면, 지금 경찰서장이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으니까 곧바로 찍어도 형님 나이가 경찰서장을 넘는데 몇년 뒤면 경찰청장 나이 아냐?(웃음)

“일어나 함께 걸어가야지”

안=그럼 숀 코넬리가 액션 연기 하냐?(웃음)

박=배우의 연기력이 느는 건 어느 단계에서 끝인 것 같아요. 그 뒤부턴 배우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안 선배가 이번에 한 연기는, 연기가 일정 수준에 오른 어떤 배우도 할 수 있는 난이도의 연기지만, 어느 배우도 그런 느낌을 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프로가 된 운동 선수들에게 중요한 게 동계훈련이라고 치면, 배우에게 동계훈련은 촬영 없을 때의 삶이거든요. 거기서 안 선배에게 많이 배웠고. <라디오 스타>가 잘 된다면 아! 결국 지금 연배에, 50대 중반에 다시 꽃을, 고목나무에 활짝 벚꽃을 피우시다니.

안=아직 젊은 나이지.(웃음)

박=이 영화가 잘 된다면 형님은 최전방 미드필드 하다가 수비수 하다가, 다시 스트라이커 역할을 하는 거죠. 저는 계속 스트라이커를 하는데 골이 안 들어가니까 공격형 미드필더 정도로 자리매김하고픈 생각이 있죠. 스트라이컨데 골 못 넣을 때는 부담이 엄청 나거든요.

안=난 약간 비껴있는 것도 좋아하고 그게 또 재밌어. 계속 가운데 있으면 삶이 힘들잖아. 가운데에 누워있다는 게 계속 리딩 액터로 가면서 버틴다는 말인데, 어서 일어나서 기력 찾아서 약간 빠져나와 같이 걸어가면 좋지 않겠니?

박=포지션을 바꿀 필요가 있어. 의도적으로 바꾸는 건 무리지만. 그런데 내가 많이 컸다. 대 안성기 선배를 두고 누워 계시다고 말하질 않나.

안=내가 많이 죽은 건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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