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미처 다 읽을 수 없는 매력, <호텔 르완다>의 돈 치들
2006-09-14
글 : 이종도

건들거리는 헤르메스. 뺀질거리고 머리가 좋으며 키는 작아도 교실 앞자리보다는 뒷자리에 앉아 담배와 성인 잡지와 대마초를 솜씨 좋게 몰래 주고받을 것 같은 느낌. 돈 치들의 인상은 그런 것이다. 두터운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갑자기 힙합을 하거나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도 어울릴 얼굴이다. 그러나 이건 가벼운 오독이다. 돈 치들의 공식 홈페이지 첫머리엔 종족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다르푸르를 구하자’라고 되어 있다. 그의 얼굴은 쉽게 읽히지 않는 페이지이다. 다섯살부터 무대에서 연기하는 걸 즐겼고 재즈에 심취했으며 캔사스시티 초등학교시절부터 밴드에서 노래를 했다. 아동심리학자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는 격려했다. 두 방면 모두 장학금을 받았지만 연기를 택했고 칼아츠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부모님이 준 500달러가 다 떨어질 무렵 <햄버거 힐>부터 끊임없이 일거리가 들어왔다. 올 3월 마일즈 데비비스의 유가족은 소니에서 제작할 전기영화의 주인공으로 돈 치들을 지목했다. 너무 닮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돈 치들은 <몬티 파이튼>이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같은 똑똑한 코미디 연기를 하고 싶어한다. 데뷔 무렵 잠깐이지만 스탠드업 코미디언도 거쳤다. <부기 나이트>에서 빨간 카우보이 복장을 고집하는 포르노 배우일 때 그는 웃지 않는 진지한 개그맨이었다. <오션스 트웰브>에서 폭탄 전문가였을 때도 돈 치들은 진지한 얼굴로 웃겼다.

그의 얼굴에서 미처 다 읽지 못한 매력을 알고 싶어한 이들이 있다. 폴 해기스, 테리 조지, 스티븐 소더버그 같은 이들이다. 이야기와 성격에 관해 무엇보다 관심이 많은 감독들. <트래픽>에서 건들대면서도 열정적인 마약반 형사는 돈 치들이 진작 보여주고 싶었던 매력의 한 조각이었다. 테리 조지 감독은 <호텔 르완다>를 이끌 지배인으로 먼저 돈 치들을 떠올렸다. <호텔 르완다>의 실존 인물인 폴 루세사바기나가 자신과 1268명의 목숨을 구한 건 헤르메스적 지혜였다. <크래쉬>에서의 형사도 폴과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 똑똑하고 성실하며 그러면서도 은밀한 뒷거래도 받아들일 줄 아는 현실적인 지혜.

골치 아픈 현실과 파우스트적 거래를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서 인간적인 고뇌를 내동댕이치지 않는다는 데서 돈 치들의 매력이 생긴다. <크래쉬>라면 동생의 운동화가 나뒹구는 사고 현장에서, 마약에 찌들어 사는 엄마의 냉장고를 채우는 맏아들의 모습에서 그렇다. <호텔 르완다>는 말할 것도 없다. 시체가 수북하게 깔린 안개 길을 헤쳐나온 뒤 그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 터지는 가슴의 하중을 견디다 못해 셔츠의 단추를 모두 뜯어버리고 오열할 때 그가 내뱉는 딱딱하고 소박한 아프리카식 영어는 인류애를 향한 간절한 기도다. 그 영어는 <오션스 트웰브>를 찍으며 동료들이 쉬고 있을 때 ‘지랄맞게’ 배운 것이었다. “<호텔 르완다>는 시련을 겪고 악과 싸워 승리를 거두는 남자의 영화이며 스릴러이고 러브스토리다. 이 영화가 없다면 지금 콩고와 수단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돈 치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한 영화들이 올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착해 왔다. 예전 그를 보여준 영화들이 팝콘영화라면, <크래쉬>와 <호텔 르완다>는 진지한 인디영화다. 여기서 그의 얼굴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같지 않고, LA 경찰서나 르완다의 호텔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런 사람처럼 생겼다. 삐딱하면서도 똑똑한, 건들거리면서 할 말 다 하는 돈 치들은 팝콘영화 대부분이 끔찍하다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팝콘영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눅눅하고 엿 같은 팝콘영화가 싫은 거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현장에도 뛰어들었다. <호텔 르완다>를 찍은 다음해 종족간 학살이 벌어지는 수단으로 가서 피난민 캠프를 찾았다. <크래쉬>를 LA에서 찍다가 아프리카로 날아가서 <호텔 르완다>를 만들고 다시 돌아와 <크래쉬>를 마무리하고 암스테르담과 파리와 이탈리아로 날아가 <오션스 트웰브>를 찍는 강행군이 끝난 뒤였다. <호텔 르완다>를 찍으면서는 요하네스버그에 가족을 데려가 아이들을 학교에 입학시켰다. 쉴 틈 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면서 긴장은 어떻게 풀었을까? “마약이지.” (웃음) 돈 치들씨는 농담도 잘하지.

인디와 주류를 넘나들더니 제작과 감독으로도 발을 걸쳤다. <크래쉬>를 제작하며 제작비를 끌어오느라 고생했고,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로 만드는 <티쇼밍고 블루스>의 연출자로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 중이다. “어떻게 연출해야 할지 명확하게 정하지는 않았지만 세트장에서 감독이나 스탭이 어떻게 하는지 보면 어떻게 영화가 굴러가는지 알게 된다.” TV를 비롯, 크레딧을 달지 않은 <러시아워2>의 단역까지 56작품이나 발을 들여놓았으니 많이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 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를 하며 산다는 건 참 대단하군, 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연기하는 척했고 나중엔 그걸로 돈을 벌었고 많은 여자들과 자고 싶었다. (웃음)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건 기술이고,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왜 아니겠는가, 폴 루세사바기나씨.

사진제공 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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