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미운 오리 새끼의 화려한 변신, <센티넬>의 에바 롱고리아
2006-09-18
글 : 장미

잘록한 허리, 미끈한 초콜릿색 피부, 부드럽게 물결치는 검은 머리칼. 그녀의 매력은 무엇보다 강렬한 육체적 아름다움에 빚지고 있다. 미국 <ABC> 인기 TV시리즈 <위기의 주부들>이 탄생시킨 이 시대의 비너스, 에바 롱고리아. <맥심>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로 꼽았을 만큼 아찔한 그녀의 몸매는 시즌1이 끝날 때까지 시청률 1, 2위를 내달려온 이 시리즈의 인기에 크게 공헌했음이 분명하다. “대통령이 밤 9시에 잠들고 나면 나는 <위기의 주부들>을 본다. 나야말로 위기의 주부다.” 로라 부시가 백악관 만찬 중에 던진 발언으로도 유명한 <위기의 주부들>에서 그녀는 매콤한 스페인 요리 파에야처럼 뜨거운 여자, 가브리엘 솔라스로 등장한다. 부유한 남편 덕에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일 없는 전직 모델 가브리엘은 녹록지 않은 다른 세 여자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한가로운 삶을 누리는 주부다. 하지만 빈둥거리며 쇼핑과 요가를 즐기는 그녀라고, 주부의 위기에서 솜씨 좋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라는 강에 빠져 허우적대며 구명조끼를 찾고 있는 여자.” 내레이터 메리 앨리스 영의 설명처럼 그녀는 구태의연한 일상에 짓눌려 숨이 막힐 지경에 있다. 한 송이 장미꽃의 사랑스러움에도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버리고 싶지 않은 그녀는, 그리하여 17살의 정원사를 유혹해 거실 식탁에서, 욕조에서, 남편과 자신의 침실에서 겁없이 정사를 벌인다.

“이제 옷을 벗는 일은 그만두고 싶다.” 한숨 섞인 푸념에도 롱고리아의 바람은 당분간 이뤄지기 힘들 듯하다. <위기의 주부들>의 오프닝에서 그녀의 손에 들린 선악과가 가장 달콤해 보이는 것이 섹시한 육체의 미덕 때문임을 어느 누가 모를까. 하지만 ‘까맣고 못생긴 아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별명 “프리타 피”(prieta fea)를 달고 커왔다는 옛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른바 섹스 심벌로 칭송받는 현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하기는 힘들다.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언니들과 비교했을 때 까무잡잡한 피부와 어두운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를 지닌 나는 매우 이상해 보였다. 나는 가족 중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내가 입양됐다고 믿었다.” 어여쁜 네명의 언니들 속에서 한껏 움츠러들었던 그녀의 삶은 이후 <미운 오리 새끼>의 해피엔딩처럼 황홀하게 피어났다. 오리 새끼가 우아한 백조로 거듭나듯 그녀 역시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며 남자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는 미모의 소유자로 갑작스레 변신했기 때문이다. “주목받는 것이 행복했지만 한편으론 친구들과 언니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장 멋진 남자아이와 데이트를 하며 거들먹거리기도 했다.” 신체운동학과에 진학해 메이저 스포츠팀의 트레이너가 되길 꿈꾸던 예쁘지만 평범했던 소녀는 이후 탤런트 콘테스트에 입상하며 진로를 바꾼다. 그리고 드라마 <제너럴 호스피털> <비벌리힐즈의 아이들> 등에 얼굴을 비쳤던 8년간의 연기자 생활을 거쳐 마침내 예상치 못했던 행운의 주인공로 급부상했다. “축복받았다고 느끼고 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 같다.”

성공의 기쁨이 지극했던 만큼 길고 짙은 그림자가 롱고리아의 배우 생활에 그늘을 드리웠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오직 <위기의 주부들>로 인식하기 전에 영화에 출연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TV 속 캐릭터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졌다.” 쏟아지는 시나리오 속에서 <센티넬>을 선택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미국 대통령 암살 계획을 둘러싼 두뇌 싸움을 그린 이 스릴러물에서 그녀는 4개 언어에 능숙한 비밀요원 질 마린이 돼 나타난다. 가브리엘이라면 질색했을 컴퓨터나 총싸움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 여인은 남자들의 기싸움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가브리엘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센티널>은 스스로 “할리우드의 귀족”이라 명명한 마이클 더글러스는 물론 키퍼 서덜런드, 킴 베이싱어와 나란히 등장할 좋은 기회가 아니던가. 쟁쟁한 스크린 선배들 속에서 마냥 미숙한 신참으로 보였든 아니든, 질 마린처럼 씩씩한 롱고리아는 자신의 새로운 도전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에 일어난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예전에 <스팽글리쉬> 오디션장에서 에바 멘데스와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우리는 배역을 따내지 못했다. 그 뒤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내가 <스팽글리쉬>에 캐스팅됐다면 나는 <Mr. 히치: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를 하지 못했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스팽글리쉬>에 출연했다면 나 역시 <위기의 주부들>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거다.” 롱고리아의 가능성은 그녀가 소개한 짧은 일화 속에 숨어 있다. “대단한 낙관론자”라는 단언처럼 단점을 장점으로 뒤바꾸는 낙관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에바 롱고리아는 그저 그런 섹시한 여자에서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진제공 이십세기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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