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패션계를 바라보는 달콤, 살벌한 시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09-14
글 : 김도훈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지 샤넬을 입는지 혹은 구치를 입는지는 알 바 아니지만, 악마가 패션을 사랑한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명문대를 졸업한 소도시 출신의 앤드리아 삭스(앤 해서웨이)는 저널리스트의 꿈을 품고 뉴욕으로 향한다. 뉴욕은 비정한 도시. 그녀의 이력서를 받아주는 곳은 좀처럼 없다. 하지만 앤드리아는 아주 우연한 기회로 세계 최고의 패션지 <런웨이>에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원하는 기자직이 아니라 편집장의 말단 비서직이지만 앤드리아로서는 감지덕지다. 하지만 앤드리아는 패션계라는 지옥이 얼마나 인간을 황폐하게 만드는 장소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편집장 미란다 프리스틀리(메릴 스트립)는 말 한마디로 파리와 밀라노와 런던과 뉴욕의 패션 관계자들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는 패션계의 독재자로, 앤드리아의 1년을 완벽한 지옥 속으로 몰아넣는 데 모든 정열을 기울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2005년 출간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원작자 로렌 와이스버거는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비서로 일한 체험을 바탕으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출간했고, 책은 5개월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세상의 모든 할인판매점 소비자들을 열광시켰다. <섹스&시티>의 데이비드 프랭글이 연출한 영화 역시 원작의 성공을 그대로 이어받은 모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미국 개봉시 블록버스터 틈바구니에서도 1억2천만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고, 가벼운 코미디로서는 이례적인 호평을 얻었다. 패션계에 대한 알싸한 농담이 평론가와 관객을 꽤나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악마적인 미란다 프리스틀리를 연기한 메릴 스트립은 내년 오스카 후보로 강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롤링스톤>의 피터 트레버스는 “드디어 메릴 스트립이 코미디에서도 인정받을 때가 왔다”고 평가했고, <빌리지 보이스>의 짐 호버먼은 “메릴 스트립은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틸타 스윈튼 이후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가장 미묘하고 그리고 가장 웃긴 악당이다”라며 아낌없는 찬사를 퍼부었다. 물론, 프라다가 메릴 스트립의 의상들을 직접 협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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