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01년, 늦가을의 화창한 오후였다. 일 때문에 지방에 갔던 필자는 중간에 시간이 떠버려 영화라도 보면서 시간을 때워야 했는데, 그 ‘영화라도’에 선정된 영화가 다름 아닌 <조폭 마누라>였다. 당시 지리적 사정권 내에 있던 유일한 극장은 재래식 시장의 한가운데서 용케 철거를 면하고 있던 낡은 재개봉관뿐이었는데, <조폭 마누라>는 그곳에 걸려 있던 유일한 프로였다. 게다가 당시 <조폭 마누라>는 행복과 웃음이 만발하며 아름다운 인정이 팔당댐 수문 개방시처럼 넘쳐나는 화목한 가정 즐거운 직장 건전한 사회의 수호를 위해 불철주야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 마지않는 각종 언론에 집약적 십자포화를 맞고 있었던지라 개인적으로는 그 열화와 같은 반응의 비결을 연구해보고 싶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구려터졌기에.
그리하여 남들 다 본 뒤늦은 타이밍에 관람하게 된 <조폭 마누라>. 두 마리의 황금빛 쌍봉황 사이에 적힌 ‘축 발전’ 세 글자가 금빛으로 번쩍이던 대형 거울을 뒤로한 채 극장문을 나서며, 필자는 강렬하게 느꼈다. 아마도 이 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그리고 그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아, 매년 가을이면 항상 필자는 떠올리곤 한다. 방과후의 학교 복도 같은 극장홀의 콘크리트 바닥이 내던 어둑한 광택, 인근 양복점 사장님의 존함 그리고 전화번호가 아로새겨져 있었던 거대 어항, 그 안에서 노닐던 아기 팔뚝만한 잉어들, 넓적한 양은 재떨이가 놓여 있던 플라스틱 탁자, 무명의 로컬 서예인이 흰색 유광 페인트로 적어넣은 ‘가37’, ‘다19’ 등의 좌석번호와 그것이 적힌 나무 등받이판, 그런 것들을. 그리고 그 절절한 80년대적 정취와 그대로 맞아떨어졌던 <조폭 마누라>의 정취를.
물론 극장을 나섬과 동시에 줄거리는 거의 잊어버렸지만, 그때의 서늘한 공기의 감촉과 오래된 재개봉관 풍경은, 관객의 의표를 찌르던 최민수 형님의 충격적 엔딩과 혼연일체가 되어 필자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렇게 <조폭 마누라>는 필자에게 대표적인 가을영화로 남았다.
이제 다시 가을이 시작됐다. 각종 연애영화들이 봄의 시작을 알리듯, 각종 짝퉁 <링>들이 여름의 시작을 알리듯,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용 코미디영화들이 가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여러 언론에서, 왕년의 <조폭 마누라>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들을 흠씬 도륙낼 것이다. 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들이 올 초 <투사부일체>가 그랬던 것처럼 크게 상처받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영화들이 언론에 ‘좋은’ 영화라 불리는 영화가 될 필요는 없는 거니까. 그리고 그 ‘좋지 않은’ 영화들이, 어떤 관객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거니까.
모두가 별 다섯인 세상은 얼마나 지루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