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짧고 굵은’ 개봉에 힘못쓴 <천하장사>
2006-09-15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며칠 전 〈천하장사 마돈나〉의 감독, 프로듀서와 술 마실 기회가 있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언론시사회 때부터 호평이 줄을 이었고, 개봉한 뒤 영화를 ‘본’ 일반 관객들도 대부분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영화였다. 그래서 ‘잘 된’ 영화를 개봉한 영화 관계자들과 술자리가 으레 그렇듯, 흥분과 호기 가득한 술자리가 될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뜻밖에 이해영, 이해준 두 감독과 프로듀서, 홍보 담당자들에게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더 큰 듯했다.

역시, 문제는 흥행이었다. 제작비 41억여원을 들인 이 영화의 경우 150만명 정도의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10일까지 전국 관객이 48만3000명에 그친 것이다. 바로 다음 주부터 〈라디오 스타〉 〈타짜〉 〈가문의 부활〉 등 대박 예상작들이 줄줄이 개봉하는 추석 시즌이 닥치기 때문에, 〈천하장사 마돈나〉가 스크린을 오래 붙잡고 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왜 이 좋은 영화를 보지 않느냐”고 관객을 탓할 노릇은 아니지만, 한국 영화 배급 방식의 다변화가 절실하다는 것만큼은 새삼 절감하게 된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지난 8월31일 전국 207개 스크린에서 대규모 개봉했고, 4~5주 정도 짧게 관객들을 만나는 것으로 스크린 상영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 개봉하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듯 ‘짧고 굵은’ 배급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 그러니까 스타급 배우를 기용하지 않은 비대중적인 소재의 ‘웰 메이드’ 영화는 ‘가늘고 긴’ 배급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게 훨씬 더 적합하다.

일단, 예산이 빠듯하기 마련인 이런 영화들한테는 한 벌당 200만원, 200개 스크린만 잡아도 4억원에 이르는 프린트 비용이 큰 부담이다. 어차피 상영 종료 뒤 폐기처분될 프린트에 큰돈을 쏟아붓느니, 프린트를 적게 떠서 길게 트는 게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소재나 배우가 낯선 영화들의 경우 관객들이 영화를 보겠다고 선뜻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백개 스크린을 잡아 동시에 펼친다고 해도 관객들이 한꺼번에 몰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반면 입소문을 잘 타기 마련인지라, 오래 상영하면 꾸준히 관객이 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김무령 프로듀서는 일본의 예를 들며 ‘짧고 굵은’ 배급 방식 일색인 한국 영화시장의 풍토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본의 경우, 〈천하장사 마돈나〉처럼 전국(지방) 관객을 끌어당길 수 있는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은 영화는 도시 중심, 소규모로 극장을 잡은 뒤, 관객들이 몰리기 시작하면 꾸준히 상영관을 늘리는 방식으로 장기 상영한다”는 것. 하지만 이 영화를 배급한 씨제이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한국 영화계는 제작비나 수입비 규모는 점점 커지는 반면 2차 판권 시장이 거의 죽어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관객이 들든 말든 일단 무리라도 해서 스크린을 잡은 뒤 단기간에 극장 수익을 내는 데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