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이나영, 청바지 벗고 ‘어른’ 되려 노력했어요
2006-09-15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 김태형 (한겨레 기자)
영화 속 ‘정장 입고 구두 신기’는 처음, 평소 말투 바꾸려 연기지도 받기도

영화 속에서 이나영은 대체로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기성 사회에 발을 들여 놓지 않은 채, 호기심 반 의심 반의 눈으로 그 곳을 관찰하는 이처럼 보였다. 14일 개봉하는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이나영은 조금 다르다. 청바지 대신 정장을 입는다. 직업도 교수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에 제일 나이 든 캐릭터예요. 연기하면서 구두를 처음 신었어요. 정장도 처음이고. 청바지를 피해가자는 게 콘셉트였어요.” 그가 연기한 유정은, 기성 사회에서 교수라는 그럴 듯한 직함도 얻었지만 뭣 때문인지 대인관계나 생활이 온전치가 않다. 그 사연을 끝부분에서 밝히는 이 영화의 유정 캐릭터는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낼지언정 어디까지나 어른스러워 보여야 한다.

“평소 말투를 피해야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연기 지도를 받으러 갔어요. 조금이라도 애처럼 나오면, 귀엽거나 투정거리는 말투가 나오면 관객의 감정이입이 안 될 것 같았어요.” 이영애, 이정재 등의 연기 지도를 했던 한양대 최형인 교수를 찾아가 지도도 받았지만 촬영하면서 대사할 때 편하게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말투가 나오면 감독이 ‘유정스럽게’라고 하시고. 그 말이 촬영장의 관용어가 됐어요.”

변화를 주려면 이유를 알아야 할 터. 더욱이 이나영은 주도면밀한 스타일이다. “원작소설도 그렇고, 시나리오를 너무 좋아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까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유정이 너무 투덜이 같기도 하고. 글은 설명이 되지만, 저는 연기만 가지고 관객의 감정 이입을 시켜야 하니까 남들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나는 알아야 하잖아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 상처 있어’하고 드러내는 식이니까. 감독에게 그랬죠. 이거 너무 투덜이 같지 않아요?”

혼란스런 게 또 있었다. 강동원이 연기한 사형수 윤수와의 감정이 멜로적인 건지, 동지감인지도 모호했다. “저나 윤수씨(강동원), 둘 다 이해가 안 가서 먼저 제안했어요. 이렇게 둘이 말해봤자 소용 없다. 감독님 불러내자.”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이나영과 강동원 넷이 시나리오 리딩 합숙 훈련도 했다. 또 이나영은 원래 외제로 설정됐던 유정의 자동차, 옷 등 모든 걸 국산으로 바꾸자고 했고, 그렇게 됐다. “처음엔 유정이 화려한 스타일로 설정됐는데, 감당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러고 나선 촬영에 들어가니까 정리가 되어 가기 시작했고, 촬영 현장은 영화 제목처럼 ‘행복한 시간’으로 화기애애했다고 이나영은 전했다.

그럼 이나영의 연기 세계가 어른의 그것으로 들어온 걸까? 아직은 일러 보인다. 어릴 적 상처로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유정의 캐릭터를 딱히 어른스럽다고 하기도 그렇다. 흔히 ‘중성적’이라는 말을 듣는 그가 이 영화에서 더 여성스러워 보이지도 않는다. “여성스러운 게 뭐죠? 애교 같은 거? 그런 것에 아직 재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요즘 영화에 여자 캐릭터가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해요. 저야 뭐, 어떤 역을 맡아도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요. 일단 목소리 톤이 낮아서.”

이나영은 사람 이름을 잘 못 부른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강동원을 ‘윤수씨’라고 불렀다. 당사자를 불러야 할 땐 ‘저기요’라고 한단다. “〈후아유〉 찍을 땐 조승우씨가 그랬어요. 제 이름이 저깁니까?” 원래 책 읽고 비디오 보는 걸 즐기는 그는 이 영화 촬영 뒤부터 잘 안 그런다고 했다. 비디오를 봐도 블록버스터를 찾게 된다는 것이었다. 사형수를 다룬 이번 영화가 확실히 무거웠던 모양이다. “(다음 영화는) 이렇게 후벼 파는 건 피하고 싶어요. 유쾌하거나 〈킬빌〉처럼 몸이 힘든 걸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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