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CJ중국영화제 개막작 <사라진 총>의 루추안 감독
2006-09-20
글 : 김수경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한국의 작은 영화들을 좋아한다”

“예술영화는 지아장커, 상업영화는 루추안.” 지난해 베이징에서 만났던 십수명의 중국영화 감독들은 차세대 중국영화를 이끌어갈 유망주를 묻자 대부분 이 두 사람을 지목했다. <사라진 총> <커커시리>로 중국 대중영화의 기대주로 부상한 루추안이 서울을 찾았다. <사라진 총>이 CJ중국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인 생활을 거쳐 베이징전영학원에 입학한 특이한 이력의 루추안은 두편의 영화에서 블랙코미디와 서부극을 정교하게 활용하는 장르적 재능을 선보였다. 할리우드와 대륙이 주목하는 1971년생 감독이 말하는 차기작과 중국영화의 미래에 귀기울여보자.

-<사라진 총>은 선배 감독 장원을 주연으로 했기 때문에 작업하면서 우여곡절이나 배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장원은 중국 최고의 남자 배우다. 한국 배우와 비교하면 최민식, 장동건과 비슷한 실력파다. 당시 그는 지하영화 <귀신이 산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장원은 <귀신이 산다>에 대한 당국의 자진삭제를 거부해 7년간 감독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최근 사면되어 신작 <해는 다시 떠오른다>를 연출했다). 그래서 2∼3년 동안 배우 활동이 없었던 터라 <사라진 총>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다. 그는 “나도 배우로서의 총을 잃어버렸다”라며 제작자 겸 배우로 흔쾌히 참여를 결정했다. 사실 장원을 처음 만났을 때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영화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감독인 내게 그가 먼저 연락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랐다. 와일드하고 거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서는 정장 차림으로 새침하게 앉아 있었다. (웃음) 헤어질 때 그가 메모지에 “나는 루추안 감독과 영화를 찍고 싶다”라고 써줬다. 그걸 한상핑 총경비(<사라진 총>의 제작자)에게 보여줬더니 “네가 어디서 이런 걸 써와서 영화를 찍자고 하느냐”며 믿지 않더라. (웃음) 초심자였던 나는 장원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한편으론, 모든 감독들이 느끼겠지만 그런 명배우랑 영화를 촬영하면 어려움이 많다는 점도 배웠다. (웃음)

-<사라진 총>에는 중국전영집단공사 한상핑 총경비가 경찰국장으로 출연했다. 중국 영화계 최고위층인 그가 신인감독인 당신 영화에 출연한 것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을 듯하다.
=한상핑 총경비는 <사라진 총>의 제작사였던 중영집단공사(차이나필름) 대표였다. 한국에서도 그런지 모르지만 중국에는 현장 방문을 했다가 감독과 스탭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사장에게 연기를 권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출연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연기를 잘했다. 이틀 만에 촬영이 마무리될 만큼 진행이 순조로웠고 연기가 좋아서 분량도 늘어났다.

-2005년 9월쯤 신작 착수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아이들을 다룬 이야기라고 했는데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나.
=그 작품은 계획대로라면 지금 촬영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장답사를 마치고 로케이션도 결정했지만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할 부분이 늘어나서 미루었다. 다른 영화 <난징, 난징>의 시나리오 집필이 끝나서 그 작품을 먼저 촬영할 생각이다.

-<난징, 난징>은 주로 어디서 촬영할 생각인가? 난징에서 촬영이 가능한가.
=1930년대 난징대학살을 다룬 이야기라서 일단 옛 건물이 일부 남아 있는 난징에서 촬영한다. 나머지는 스튜디오를 지어서 촬영할 것 같다. 바다에서 육로로 이동하는 장면이 중요한데, 상하이와 항저우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역사적 배경이 겨울이라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

-<난징, 난징>은 예민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다. <귀신이 온다>처럼 당신 영화 중에 가장 격렬한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난징, 난징>이라는 영화를 중·일 관계나 정치적 입장에서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저 영화감독으로 하고 싶은 작품을 창작할 뿐이다. 2차대전을 다룬 영화들 때문에 미국과 독일 사이가 나빠지지는 않았다. (웃음) 이런 영화가 정치적 공방으로 번진다면 그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작품 내적으로는 <난징, 난징>은 중·일의 잘잘못을 따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성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해 인간의 본질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그려내고 싶다. 중·일 어느 쪽 입장도 대변할 생각이 없다.

-당신은 본인이 6세대와 다르고 극장에서 상영가능한 주류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6세대 감독들도 극장 상영에 나선 현 중국 영화계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6세대 선배들은 개인적으로는 모두 존경하는 분들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예술성이나 의도를 중시하는 영화를 찍고 싶어했다. 주류든 비주류든 그들은 개인이 드러나는 영화를 찍기 때문에 나와는 조금 다르다. 영화에 대한 이상이 다르다고나 할까. 처음 영화를 찍고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전우들과 함께 군대 노천극장에서 모기에게 뜯겨가며 재미없고 시시한 중국영화를 보면서 그 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웃음) 군대를 벗어나면 전우들에게 좋은 극장에서 내가 만든 재밌는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게다가 당시 중국에는 할리우드영화가 초강세였기 때문에 관객이 즐길 만한 국산영화를 꼭 만들고 싶었다. 앞으로도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컬럼비아를 비롯해 중국에 있는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구창웨이, 펑샤오강, 당신을 주목한다고 했다. <난징, 난징>도 합작을 고려하고 있나.
=컬럼비아는 내 영화 두편에 모두 투자했다. 컬럼비아가 없었다면 루추안도 없었다. <난징, 난징>도 미국에서 컬럼비아에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현재 우리는 미국이 아니라 일본 회사이기 때문에 난징대학살을 다룬 이번 영화에는 투자하기 힘들 것 같다”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작은 나무에 내 자신을 비유하고 싶다. 나무가 자라려면 누군가 물을 주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생력으로 커야 한다. 이제 더이상 물을 받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자라날 시기라고 생각한다. <난징, 난징>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작품이다. 나는 난징에서 대학 4년, 군대 2년을 보냈다. 신기한 건 아무도 이 사건을 영화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영화를 만든 뒤에는 프랑스나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에게 관심도 받고 그들과의 합작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당신은 과거 중국 영화계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 등급을 분류하는 일이라고 했다. 구창웨이를 비롯한 다른 감독들도 등급별 분류가 곧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현재 전망은 어떠한가.
=어떤 진전도 없다. 영화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나 이런 문제를 방해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다. 중국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웃음) 그들은 중앙정부에 고자질하는 편지를 보내기 때문에 영화국이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하지만 <커커시리> <공작> <상하이드림> 같은 영화는 과거였다면 심의에 통과하지 못했을 작품들이다. 그들이 상영된 사실만 봐도 변화는 분명 생겨나고 있다. 중국 정부도 개방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중국영화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당신은 한국영화를 많이 보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본 인상적인 작품이 있나? 중국에서 촬영했던 한국영화들은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연출자 입장에서 중국 로케이션이나 합작에 대해 조언한다면.
=그렇다. 나는 한국영화 마니아이며 50∼60편 정도 소장하고 있다. 특히 대작보다는 작은 영화를 좋아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하고 어제 내 영화를 보고 간 김기덕 감독 영화도 즐겨본다. 최근에는 <태풍>을 봤다. 한국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균형이 잘 맞는 것 같다. 한국의 작은 영화들은 유독 삶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듯하다. 보통 합작영화라면 대작영화를 떠올린다. 그러나 스케일로만 사고하지 말고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작은 영화도 고민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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