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얍∼!” 단단한 기합 소리와 함께 날선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의 사나운 몸짓이 서늘한 세트장의 공기를 후끈 달궈놓는다. 이곳은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자리한 <해바라기> 촬영현장. 오페라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나이트클럽의 화려한 경관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보다 시선을 뗄 수 없는 것은 땀방울을 흩뿌리며 종횡무진 상대를 제압하는 김래원이다. 몸이 채 풀리지 않은 듯 슬슬 허리를 돌리다가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테이블을 훌쩍 뛰어넘는 그의 동작에는 거침이 없다.
<해바라기>는 조직의 전설로 군림하던 남자 태식(김래원)이 10년간의 수감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뒤, 자신을 보듬어주는 한 가족을 만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으로 주목받았던 강석범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이날 촬영분은 태식이 자신을 보살펴주던 덕자(김해숙)와 희주(허이재)를 해친 조직을 홀로 찾아가 복수를 감행하는 장면. 전체 영화에서 유일하게 태식이 주먹을 휘두르는 부분이자 영화의 비극적 클라이맥스다. 잔뜩 상기된 표정의 김래원은 130평 규모의 세트장 곳곳을 숨가쁘게 누비고,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또 다른 액션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힘이 빠질 법도 하건만, 이어지는 동작에 오히려 자신감이 붙은 걸까. 김래원의 품새는 점점 더 노련해진다. “점심 안 먹었어? 봐주지 말고 제대로 해봐”라며 호통을 치던 신재명 무술감독도 이윽고 만족스러운 듯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강석범 감독은 “해바라기에는 동경, 사랑, 추억 등 많은 꽃말이 있지만, 각본을 쓰며 내가 생각한 것은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태양을 바라보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해바라기 같은 인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진하게 그리고 싶었다”며 작품을 설명했다. 현재 80% 정도 촬영을 마친 <해바라기>는 오는 11월 극장가를 찾을 예정이다.
“서정적이면서도 슬프지 않게”
<해바라기>의 음악감독 이욱현
“시나리오는 1년 반 전에 받았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해바라기>는 겉보기에는 누아르영화 같지만, 난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서정적이면서도 슬프지 않은 감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피아노 선율로 이루어진 소품들을 많이 만들었고, 따뜻한 느낌을 잘 표현하는 이루마씨에게 연주를 부탁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라 입대를 앞둔 상황에서 1주일 만에 13곡이나 연주해줬다. 음악감독들은 각자 작업하는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다. 편집본을 보면서 작곡하는 분들도 많지만, 난 시나리오를 토대로 작업을 시작해 감독, 배우와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현장에도 항상 나와서 호흡을 맞춘다. 사실 <해바라기>에서는 조폭 역할도 하나 맡았다. 유학 시절에 연극 공부를 했었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좀 있는 편이라 내가 음악 작업하는 작품에서는 계속해서 단역이라도 맡고 싶다. (웃음) 지금까지 코미디영화의 음악 작업을 주로 해왔는데, 앞으로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사람들을 울릴 수 있는 서정적인 영화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