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적인 식민분리주의가 씨를 뿌린 르완다 내전을 다룬 영화 <호텔 르완다>엔 불행히도 서구제국주의의 시선과 종족간의 편견이 그대로 녹아 있다. 영화는 르완다 사태의 뿌리를 간과한 채 ‘야만적 가해자-후투’ 대 ‘문명적 피해자-투치’, 그리고 ‘그들(투치)을 지켜주는 외국인’이라는 식민분리주의 도식을 반복한다. 이 영화가 서구인들에게 보여짐으로써 ‘외면하고 방관한 죄’(박평식)의식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르완다인들에겐 오래된 후투족의 계급적 분노와 권력을 재탈환한 투치족의 복수심을 자극해 현 투치 정권이 부르짖는 종족간의 화해를 저해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영화 속 호텔의 안과 밖은 르완다 사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식민모국이 세운 4성급 호텔의 사장은 백인이고, 지배인 이하는 현지인이다. 그곳엔 유엔평화유지군과 외신기자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많다. 내국인으로는 5성 장군과 ‘투치 부자들’ 그리고 외국 남자와 사귀는 투치 아가씨가 있다. 이곳은 특별하다. 전세계 최빈국 중 하나요, 물 부족 국가인 르완다에서 외국 술, 담배, 음식이 넘쳐나고 수영장까지 있다. 르완다이면서 르완다가 아닌 그곳에서 유엔평화유지군이 외신기자들 앞에서 ‘평화’를 연설하지만, 바깥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지배인 폴의 집과 동네는 초호화 주택(가)이다. 그곳의 투치들이 폴의 집에 숨어들자, 폴은 후투 민병대에 뇌물을 공여하고 투치족을 이끌고 호텔로 들어온다. 유엔군이 지키고 있는 호텔로 투치족들이 더 도망쳐 들어오고, 적십자와 종교단체가 고아 난민들을 데리고 들어온다. 호텔은 돈으로 목숨을 사거나 도망친 투치족들이 외국군의 울타리 밑에서 보호를 받으며 살기등등한 후투족과 대치하다가 외국인들이 빠져나가자 위기를 맞는데, 이 상황은 르완다 사태의 압축모델이다.
1916년부터 벨기에는 르완다 왕정을 유지한 채 소수의 지배층-투치와 다수의 피지배층-후투로 나누어 통치한다. 벨기에는 투치에 권력과 기회를 독점시키고 종족 신분증을 발급하여 인종주의적 분리를 강화하다가, 1959년 후투족이 폭동을 일으키자 식민통치를 접는다. 1962년 수립된 후투족 정권은 토지와 교육 등 모든 자원이 투치에 독점된 상태에서 토지공개념 등 사회개혁을 시도하지만, 투치 기득권층의 비협조로 실패한다. 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주요 산업인 농업이 위축되고 IMF 통치를 받는 경제위기상황에서 우간다에 기지를 둔 투치반군(FPR)이 후투 정부군과 충돌하자, 르완다 내부에서는 후투족들의 결집이 강화되면서 내부 투치족에 반군의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93년 유엔의 중재로 정부와 반군간에 평화협정이 맺어졌으나 이행되지 못하고, 94년 대통령 암살로 후투민병대가 주동이 돼 후투 일반인까지 합세한 투치족 대학살이 일어난다.
후투 입장에서 보면 투치는 청산되지 못한 식민잔재, 매판세력이다. 그들은 경제력을 지니고 서구적 가치를 내면화한 채 서구인의 비호를 받고 있다. 중심에 있는 폴은 후투족이지만 처가가 투치족으로, 일찍이 연애를 위해 장관에게 폴크스바겐을 뇌물로 줄 정도로 유산계급이었고, 가치관 역시 극히 서구적이다. ‘시간은 돈!’, ‘스타일!’ 등 후기자본주의적 가치관은 물론 처자식을 제일로 삼는 가족주의까지 그대로 서구인인 그는, 자신이 의탁해야 할 곳이 어딘지도 잘 알고 있다. 첫째는 돈이고, 둘째는 외세. 급하면 뇌물을 쓰고, 더 급하면 본사 사장에게 전화하던 그는 결국 식민모국 벨기에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후투족의 입장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피에 주린 듯 살육과 강간을 즐기고, 정규군은 뇌물만 밝힌다. 이들의 대극에 서구인들이 있다. 선동을 일삼는 라디오의 대극에 진실을 전하려는 외신기자가, 칼을 든 후투 민병대의 대극에 구급약을 든 적십자 요원이, 부패한 5성 장군의 대극에 끝까지 남겠다는 유엔군 대령이 자리한다. 이 모든 것이 ‘야만적인 종족분쟁으로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더러운 아프리카인’들을 보는 서구인의 시선이자, 내전에서 승리한 투치반군의 시선이다. 100일 만에 100만명이나 목숨을 잃은 르완다 사태는 끔찍하다. 서방세계가 공히 인정하듯 ‘과소개입으로 인한 실패’가 맞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논의되는 ‘인도적 개입의 정당성’은 자칫 침략의 외피로 둔갑함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명분 중 하나가 88년 쿠르드족 학살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었음을 기억하자. ‘외면하고 방관하지 않기’가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