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울머의 대표작 <우회>를 두고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영화학교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합격 점수를 받지 못할 정도로 불완전함으로 가득 찬 영화라고 썼다. 사실 <우회>는 극히 빈약한 제작비를 가지고 단 6일 만에 만들어진 영화였으니 그런 식의 평가와 맞닥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영화에 대한 에버트의 평가가 부정적이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영화가 가질 수밖에 없는 제한들을 파악하면서도 그것이 영화를 해하지 못함을 보았고 그래서 <우회>를 가리켜 “그 재료가 적절한 형식을 찾는 영화의 실례”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울머의 필모그래피에서 <우회>는 예외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절대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등재한 120여편의 영화들 가운데 상당수는 겨우 2만달러밖에 되지 않는 예산을 가지고 6일 안에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그리고 또 그것들 가운데 다수는 울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재능과 영화적 비전을 담고 있는 것들이었다. 열정 가득한 태도로 그를 인터뷰했던 피터 보그다노비치는(그는 “그 누구도 울머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적은 돈으로 뛰어난 영화를 만들지는 못했다”라고도 말한 이였다) 그처럼 영화 작업상의 제한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모험을 즐긴 울머의 실험 정신을 언급했다. 울머라는 이는 바로 그것의 힘을 얻어서, 어떤 때는 거의 기적을 행하듯 무(無)로부터 뛰어난 창조물들을 빚어내곤 했던 시네아스트였다.
다시 한번 보그다노비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울머를 가리켜 “영화 만들기의 올림포스산에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이라고 썼다. 클래식 피아니스트이면서도 추레한 클럽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우회>의 주인공 앨이 혹시 울머의 분신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이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화감독이 원래 무대 디자이너로서 독일에서 꽤 여유로운 영화제작에 몸담았다가 나중에 미국에서는 심지어는 Z급이라고 표현될 정도의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울머의 첫 장편영화가 되는 <일요일의 사람들>(1930)에는 나중에 잘 알려지게 될 인물들, 예컨대 로버트 시오드막(공동감독), 프레드 진네만(공동감독), 빌리 와일더(각본), 유진 슈프탄(촬영) 등이 참여했는데, 울머는 이들 동료들 모두가 할리우드에서 누렸던 ‘지위’에 가깝게 다가가지 못했다. 여하튼 독일에서 <골렘>(1920), <마지막 웃음>(1924), <기쁨 없는 거리>(1925) 등과 같은 영화들의 작업에 함께했던 울머는 미국의 그리 좋지 않은 작업 환경과 마주해서도 같은 시대의 다른 게르만 동료들이 보여주었던 시각적 표현의 능력을 상실하지 않았다. 그의 영화가 우선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드는 것은,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하면 중요한 디테일에 주목하도록 하는 빛과 그림자의 유희 그리고 탁월한 공간감각 때문일 것이다.
무대디자인을 담당했던 이전 직업과 잘 어울리게도, 울머는 공간을 ‘건축’하는 데에 특별한 감각과 재능을 가진 시네아스트로 먼저 기억된다. 그가 조력의 손길을 주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처럼 울머 역시 무엇보다도 공간을 통해 영화에 다가가고 영화에 대해 사고했던 사람이다. 어쩌면 <검은 고양이>에 나오는 포울직의 저택, 음산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며 사람들을 억눌러버릴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실제로 폭력의 기운을 내포하고 있는 그 공간은 울머의 원형적인 세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짙은 안개가 깔려 있거나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우회>의 옥외 공간이라고 해서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출구가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울머의 불안한 세계는 그 안에 있는 인물들에게 함정이 되거나 혹은 점차 무덤과 같은 곳처럼 변하게 될 공간이다. 이 불투명한 공간 안에서 울머의 인물들은 폭력과 배신으로 얼룩질 것으로 드러날 세계의 부자유스러운 감금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를 에워싼 세계를 통제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을 이해하지도 그래서 당연히 그것에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한다. 그들 앞에 있는 것은 불투명함이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자기 파괴이다.
<우회>의 주인공 앨을 예로 들어보자면,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뉴욕에서 LA까지 가고자 했던 그는 자기를 태워준 남자를 ‘실수로’ 죽게 만든다. 뒤에 만나게 되는 여자에게 한사코 자신의 행위는 실수였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볼 때 결코 그건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은, 예컨대 그가 찾아가고자 하는 애인과의 사랑까지도 짙은 안개 속에 갇혀 있다. 영화 전체를 이끌고 가는 앨의 내레이션은 실은 믿을 게 못 된다. 따라서 모든 동기와 심리는 모호하고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자기)파멸로 향한 길뿐이다. 영화평론가 뤽 물레의 표현을 빌리자면, 앨은 ‘신이 없는 시대를 사는 남자의 절대 고독’의 화신 같은 존재다. 울머의 영화들이란 그런 이들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파괴 본능, 모호하고 변형된 형태로 존재하는 죄의식, 운명(이라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의 힘 같은 문제를 탐구하는 어둡고 부조리한 ‘도덕극’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다.
영화학자 존 벨튼이 그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영화감독들 가운데 가장 어두운 비전을 가진 인물이라고 부른 울머는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가려 있던 불운한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울머는 그의 영화(<벌거벗은 새벽>)에서 장 르누아르나 막스 오퓔스를 떠올렸던 프랑수아 트뤼포나 자신의 영화 <탐정>(1985)을 존 카사베츠,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더불어 울머에게 바친 장 뤽 고다르, 혹은 울머에 대한 이제는 표본이 되어버린 글을 쓴 존 벨튼 등과 같은 이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울머에게서 보았던 영화의 ‘비밀’,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국내 관객에게도 보게 해줄 기회가 마련되었다.
에드거 울머 회고전 상영작 소개
검은 고양이 The Black Cat, 1934년, 흑백, 65분
출연 보리스 카를로프, 벨라 루고시, 데이비드 매너즈, 재클린 웰스
1930년대 호러영화의 스타인 보리스 카를로프와 벨라 루고시가 함께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주목할 만한 <검은 고양이>는 유니버설영화사에서 만들어진 호러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이면서 그 진가가 잘 발견되지 않았던 영화이다. 독일 무성영화들에서 영화 작업을 시작한 울머는 이것을 독일 표현주의 색채를 풍기는 미국영화, 다시 말해 미국산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로 만들고자 했고, 공간에 대한 울머의 탁월한 감각은 이것을 특히 음산하면서 최면적인 영화로 만들어냈다. 영화는 15년 만에 만나게 된 두 “옛 친구”와 그들이 벌이는 죽음의 게임에 말려든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악의 문제를 흥미진진하게 파고든다.
우회 Detour, 1945년, 흑백, 67분
출연 톰 닐, 앤 새비지, 클로디아 드레이크
에드거 울머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이자 ‘B급영화’의 최고봉이며 필름 누아르의 걸작으로도 손꼽히는 영화. 뉴욕의 피아니스트 앨은 가수인 여자친구를 만나러 LA로 향한다.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하던 그는 도중에 그를 태워주던 한 남자를 만나지만 ‘실수로’ 그를 죽이고 만다. 이제 앨은 그 죽은 남자의 차를 타고 길을 떠난다. 그러고는 한 여자를 태우는데 그녀는 ‘발톱을 가진 여자’임이 드러난다. 영화는 주인공 앨이 ‘운명’이라고 부르는 힘을 따라가는 파멸의 과정을 안개가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그려간다. 주인공 앨 역을 맡은 톰 닐은 뒤에 영화와 비슷하게 실제로 자기 아내를 죽이는 일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낯선 여인 The Strange Woman, 1945년, 흑백, 100분
출연 헤디 라마, 조지 샌더스, 루이스 헤이워드
헤디 라마는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엑스터시>(구스타브 마차티, 1932)라는 체코영화에 누드로 출연해 유명해진 1940년대의 스타이다. 울머는 그녀의 요청으로 이 <낯선 여인>의 연출을 맡게 되었다. 울머의 몇 안 되는 A급영화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낯선 여인>은 눈부신 아름다움 아래 돈과 지위에 대한 요구와 수시로 불붙는 열정을 감추고 있는 여인 제니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를 단지 악녀로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다면적인 면모를 보여주려 한다는 점에서 성숙함을 드러낸다. 울머 자신은 <낯선 여인>이 “아름다운 영화”로 주인공 라마를 아카데미 후보작에 올려놓을 뻔한 작품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