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시간까지 신경전
2006-09-22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영화나 연극을 처음 상영하는 걸 일컫는 ‘프리미어’에도 몇 가지가 있다. 자국을 포함해 세계에서 처음 상영하는 건 ‘월드 프리미어’이고, 자국을 뺀 다른 나라에서 제일 먼저 상영하는 건 ‘인터내셔널 프리미어’이다. 사람마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좋은 영화일수록 먼저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영화제는 프리미어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한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가 제일 먼저 공개돼 화제가 되면 당연히 그 영화제의 위상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올해로 11회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도 마찬가지여서, 해가 가고 위상이 높아질수록 프리미어 상영 수가 늘고 있다. 10월12일부터 20일까지 열릴 올해 행사에선 월드 프리미어가 이 영화제 역사상 가장 많은 64편에 이른다. 물론 서구엔 칸, 베니스, 베를린 등등 쟁쟁한 영화제들이 많은 만큼 부산에 오는 프리미어의 상당수가 아시아 영화들이다. ‘아시아 최대의 영화제’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지도 수년 됐으니, 아시아 영화를 프리미어로 가져오는 게 그리 힘들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역시 간단치 않은 일인 듯하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제1회 로마영화제와 기간이 겹친다. 이미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로 자리잡은 베니스영화제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 안에서, 베니스와 맞장 뜨겠다는 기세를 드러내면서 영화계의 화제가 된 그 영화제다.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까지 지낸 현 로마 시장이 앞장서서 추진하면서 개막작으로 니콜 키드먼 주연의 〈퍼〉를 선정해 니콜 키드먼을 초청하고, 숀 코너리에게 공로상을 주기로 하는 등 세몰이에 주력하고 있다. 한달쯤 전 베니스영화제 쪽에서 “로마영화제는 칸과 베니스가 원하지 않는 영화들만 틀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공격했고, 그러자 로마영화제 쪽은 “베니스는 로마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 로마영화제가 경쟁작으로 초청한 아시아 영화 두편이 부산영화제 상영작과 겹친다. 일본 쓰카모토 신야 감독의 〈악몽탐정〉과 홍콩 패트릭 탐 감독의 〈아버지와 아들〉인데, 두 편 모두 지금까지 다른 데서 상영된 적이 없다. 부산과 로마는 두 편을 공동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하자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차다. 로마 쪽에선 경쟁작인 만큼 저녁에 상영하겠다는 방침을 부산에 전해왔는데, 그 시간이면 부산에선 다음날 새벽이 된다. 부산 쪽은 새벽에 영화를 틀 수는 없다는 말을 전했고, 그 결과 〈악몽탐정〉은 부산에서 14일 저녁, 로마에서 14일 낮에, 〈아버지와 아들〉은 부산에서 15일 저녁, 로마에서 15일 낮에 틀기로 합의했다.

할리우드의 예산 큰 영화들이 전세계 동시 개봉할 경우, 날짜변경선에 가까이 있어 하루가 빨리 시작하는 한국은 날짜 아닌 시간대로 볼 때 전세계 최초 개봉이 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이제 영화제의 프리미어는 그것조차도 용납을 하지 못한다. 시간대까지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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