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무간도> 할리우드 리메이크 <디파티드> 뉴욕 기자회견
2006-09-27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디카프리오와 스코시즈, 다시 뭉쳤다

마티(마틴 스코시즈), 리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맷 데이먼), 잭(잭 니콜슨), 비라(베라 파미가)….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한 <디파티드>(미국 10월6일 개봉, 한국 11월 중 개봉)의 감독과 배우들은 서로를 친근하게 부른다. 니콜슨이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 기자회견장에서 이들은 ‘잭’에 대한 에피소드를 서로 나누며 촬영 중 즐거웠던 일들을 회상했다.

<디파티드>는 자신에게 믿음이 없는 이들의 이야기

<디파티드>는 2002년 유위강 감독의 <무간도>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디파티드>가 “리메이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은 완벽하게 미국 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 작품은 필름누아르를 연상시키며, 스코시즈의 유명한 전작 <좋은 친구들>과 <비열한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스코시즈 감독은 “미국의 영향과 자국의 문화를 접목시킨 <첩혈쌍웅>처럼, <디파티드> 역시 원작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새로운 각도로 생각하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디파티드>의 가장 큰 영향은 시나리오를 쓴 모나한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Way of Life)과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도 믿음이 없는(faithlessness) 이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킹덤 오브 헤븐>의 극작가 윌리엄 모나한이 쓴 <디파티드>는 자신의 고향이자, 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아이리시 갱단의 세력이 강했던 보스턴을 배경으로 했다. 따라서 <무간도>의 기본적인 스토리 윤곽은 볼 수 있지만, 잔인한 보스턴의 언더월드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특히 잭 니콜슨이 연기한 갱단 보스 프랭크 코스텔로는 실존 인물인 와이티 벌거(Whitey Bulger)를 바탕으로 쓴 것. 벌거는 95년 실종됐으나, FBI는 아직도 그를 18건의 살인혐의로 수배 중이다. 작품 초반의 배경이 되는 ‘와이티 시대’라 불리는 70∼90년대는 벌거의 잔인한 갱단이 기승을 부렸던 시기다. 또 보스턴시가 속한 매사추세츠주 경찰부서 내 엘리트 특수수사대를 소재로 실제 경찰의 도움도 받았다고. 이처럼 실존 인물과 보스턴의 고유한 성향을 섞어 만든 <디파티드>는 기존 할리우드 리메이크에서 볼 수 있는 어색함이나 억지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외에도 맷 데이먼과 원작에는 없는 또 다른 경찰 역인 디그냄 역의 마크 월버그 등도 보스턴 출신이라 현실감을 더한다.

보스턴에서 찍는 마틴 스코시즈의 필름누아르

워너브러더스쪽은 이미 <갱스 오브 뉴욕>과 <에비에이터>로 팀워크를 선보인 스코시즈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디파티드>를 제안했고, <무간도>의 리메이크라는 생각보다는 모나한의 시나리오에 끌린 그들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스코시즈 감독은 “아이리시계는 이탈리안과 비슷한 면이 많다. 특히 가족구조나 문화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아이리시 문학과 시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디카프리오는 “시나리오를 받은 뒤 캐릭터에 대한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이 작품처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스토리라인이나 캐릭터, 이들 사이의 관계가 거의 완벽하게 완성된 경우는 드물다”고 밝혔다. 이후 프로듀서 중 하나인 브래드 피트의 “스코시즈가 보스턴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말에 그만 “체면이고 뭐고 달려갔다”는 데이먼이 참여하게 됐고, 이어 잭 니콜슨, 마크 월버그, 마틴 신, 레이 윈스턴, 알렉 볼드윈, 베라 파미가 등 연기파 배우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디카프리오의 역은 프랭크 코스텔로의 갱에 잠입하는 경찰 빌리 코스티갠, 데이먼은 코스텔로가 경찰에 심어놓은 콜린 설리번, 그리고 파미가는 이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신과 의사로 출연한다. 디카프리오는 빌리 역을 위해 80년대 ‘와이티 시대’에 실제로 이 같은 폭력을 경험한 ‘사우디’(Southie: 보스턴 남쪽지역 출신)들과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폭력을 직접 경험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경험담을 들으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모두 알 수 있는 보스턴만의 특이한 ‘소우주’와 같은 세계가 인상적이었다.”

경찰이 된 뒤 위험한 수사를 자청하며 급속도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콜린 역을 위해 데이먼 역시 ‘경험자’의 조언이 필요했다. “이번 작품의 테크니컬 어드바이저인 톰 더피는 30년간 매사추세츠주 경찰로 근무한 베테랑인데, 그를 통해 보스턴에서 자랐지만 알지 못했던 경찰과 갱단 사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 데이먼은 특수공격대(SWAT)가 마약 판매지를 기습하는 작전에도 동행했다고. “나 때문에 당시 필요인원보다 두배가 더 투입됐다”며 웃는 데이먼은 “스왓팀들의 모습을 보면서, 콜린 역시 성공하기 위해 이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티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실제 <디파티드>에서도 등장하는 기습작전 장면에 나오는 대원들은 모두 실제 스왓팀 멤버라고.

이외에도 마틴 신과 마크 월버그가 빌리의 잠입수사를 관장하는 경찰상사 올리버 퀸난과 디그냄으로 출연하고, <섹시 비스트>로 알려진 연기파 영국배우 레이 윈스턴이 코스텔로의 오른팔 미스터 프렌치로, 알렉 볼드윈이 특수수사대의 책임자 엘러비로 출연해 탄탄한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월버그와 윈스턴은 각각 원작에서 없었거나, 작게 다뤄졌던 캐릭터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눈길을 끈다. 월버그는 사실 어릴 적 자주 체포되던 문제아. 대부분의 이웃이 범죄자나 경찰 아니면 공사장 인부가 됐던 자신의 도시를 영화 속에서 경찰이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열정적이고 다혈질적으로 잘 표현했다. 윈스턴은 감정이 전혀 없는 기계 같은 ‘해결사’로 코스텔로 외에는 아무의 말도 듣지 않는 ‘투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이 두 캐릭터는 각각 자신의 그룹에서 배반자 혹은 밀고자(rat)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켠다.

30년지기 마틴 스코시즈와 잭 니콜슨이 처음 만난 작품

“스코시즈와 벌써 3번째 작품”이라는 기자의 말에 디카프리오는 “<디스 보이스 라이프>에서 로버트 드 니로와 출연하며, 그의 작품을 보면서 자연히 마티의 필름을 보게 됐다”며 “16살이었지만 그때 어떤 감독과 일하고 싶냐고 물어봤어도 마티라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0년 <갱스 오브 뉴욕>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뒤 마티로부터 시네마의 역사와 가치를 배울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새롭게 배우로 태어날 수 있었다”며 스코시즈를 자신의 스승(mentor)이라고 표현했다. “마티와의 작업은 늘 즐겁고, 좋은 경험을 얻을 수 있어, 언제나 새롭다.”

빌리는 갱단의 영향이 큰 보스턴 남쪽지역 출신으로 다른 가족들과 달리 경찰에 지원해 범죄가 아닌 정의로운 삶을 찾고 싶어하지만, 출신지역 때문에 ‘언더커버’ 수사에 투입돼 탈출하려던 바로 그 세계에 다시 던져진다. 콜린은 코스텔로로부터 잘못된 가치관을 배우고 자란 인물. 경찰이 된 뒤 보스턴 ‘스테이트 하우스’의 둥근 금색 지붕을 보며 신분상승을 꿈꾸지만 가치관의 상실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 같은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데 니콜슨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맷은 “잭의 캐릭터의 성적이며 폭력적인 성향 때문에, 내 캐릭터가 성적이나 가치관 측면에서 정반대로 갈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잭과 마티의 만남은 영화팬들이 기다렸던 것”이라고 말한 디카프리오는 “잭과의 작업은 예측불허라는 말이 적합하다.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코스텔로를 연기하며 잭은 내게 예상치 못했던 연기를 보여줘, 갱스터 사이에서 신분이 들어날까 조마조마하는 빌리를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디카프리오에 따르면 하루는 소품 담당자가 “조심해, 잭이 이번 장면을 위해서 위스키 병이랑 소화기, 성냥, 총 등을 가져갔어”라고 말해 진땀을 뺀 적도 있다고.

이번 작품은 스코시즈와 니콜슨이 처음으로 함께하는 것. 이들은 30년간 친구로 지냈지만 <디파티드> 전까지는 마땅히 함께할 작품이 없었다고 한다. 배우들에 따르면 이번 작품에서 니콜슨은 예상치보다 한참 심한(?) 과격한 연기들을 선보였다고. 매번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모두를 놀라게 한 니콜슨은 ‘스코시즈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디파티드>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 매들린 역의 파미가는 지난해 개봉된 <다운 투 더 본>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역시 그 작품을 보고 그녀를 캐스팅했다는 스코시즈 감독은 “베라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여자친구 역을 깊고 풍족하게 만들어준 배우”라고 평했다.

한국과 미국이 합작한 김진아 감독의 <네버 포에버>에서 하정우와 출연한 파미가는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특집기사로 다뤄지는 등 떠오르는 스타다. <디파티드>로 스코시즈와 가까워졌다는 그녀는 “다음 작품을 한국 감독과 한다고 말했더니, 한국영화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주일에 DVD 한편씩을 ‘한국영화 공부’용으로 보내준다”며 웃었다. 이 작품에서 파미가는 성적인 문제를 가진 콜린을 택하지만, 충족되지 못한 성적 욕구와 열정 때문에 빌리에게 사랑을 느끼는 매들린 역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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